다이어리
일찍 하게 되니 좋은 날.
가족이 집에서 일찍 나갔다. 7시 45분이면 등교 알람이 울린다. 남편과 아이들은 그전에 나섰다. 아이들은 요즘 기상 시간이 빨라져서 준비가 빠르다. 등교 준비가 다 되니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출발했다. 평소에 나는 운동하고 나서 바로 씻지 않는다. 아이들 아침밥을 차려주기 때문이다. 어제는 시간 여유가 있어 집에 오자마자 씻었다. 아이들도 가고 나니 이제 남은 일은 주방 정리뿐이다. 평소보다 빠르게 내 할 일을 시작한다. 수요일 오전에는 수업이 있고, 1시 40분이 되면 아이들 데리러 출발해야 한다. 마음이 급한 날이다. 연휴 지나서 틀어질 법도 한데 오히려 착착 진행되는 느낌. 출발부터 좋았다.
오후에 병원에 갔다. 시환이는 3주마다 주사를 맞는다. 원주 연세 세브란스 기독병원에 다닌다. 대학병원이라 사람이 많다. 특히 3시쯤 가면 주차할 곳이 없다. 30분만 늦게 가도 한 바퀴 돌면 생기던데 우리 일정상 사람들이 많은 시간에 가고 있다. 사람이 몰리는 날에는 몇 바퀴를 돌다가 주차를 한다. 어제는 연휴가 다 끝난 후라 사람이 많을 거라 예상했다. 건물 안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좌측에서 차 한 대가 나온다. 이쪽으로 가면 자리가 있을까 싶어서 나도 왼쪽 깜빡이를 켰다. 핸들을 돌리자마자 빈자리가 보인다. 어제같이 이렇게 복잡할 거라 예상되는 날에 이런 행운이. 주차에서 힘 들이지 않아서 좋다.
진료를 매번 보지 않는다. 주기마다 변동 사항을 확인해 가고 있다. 주사만 맞는 날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바로 다음 일정 예약하고, 주사 맞았다. 병원 입구에 들어갔을 때부터 나올 때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병원에 다녀오는 날은 진이 빠지던데 빨리 끝나니 좋다.
내가 살아가는 날 중 어느 하루였다. 착착 진행되는 날. 뭔가에 힘쓰지 않은 날. 빨리 끝난 날.
내가 쓰는 날 중 어떤 하루일 뿐이다. 술술 써지는 날, 고민 많이 하지 않고도 주제, 메시지, 구성이 생각나는 날, 글 한 편 쓰는 데 평소보다 시간 덜 걸린 날.
대부분은 뭐 때문에 안 되고, 걸리고, 막힌다.
애를 써야 하고, 궁리해야 하고, 조언을 구해야 한다.
조급하고, 시간 확인하고, 남은 일정 조정해야 한다.
이런 벅찬 날들을 보내야만 착착과 술술 되는 날이 있다.
글쓰기도 그렇다.
분량을 채운다고 해도 부족해서, 메시지 도출해 내다가 머리카락이 새치로 변할 것 같아서, 쓴 글이 맥락도 없고 주제도 없고 뭐 때문에 쓴지도 몰라서 포기해 버린다. 지금의 나도 여전히 부족하지만 나아진 점이 있다. A4용지로 1.5매 분량은 좀 더 수월하게 채운다. 내 경험에서 메시지 도출, 머리 쥐어뜯지 않고도 한다. 주제, 맥락, 목적 뚜렷하려고 템플릿 활용해서 연습한다. 3년 전 초고 한 꼭지 쓰는 데 여섯 시간 걸렸다면 지금 두 시간 이내로 쓴다. 그만두고 싶은 시간을 견뎌내니까, 습관으로 만들어버리니까 가능해진 일이다.
잘 써지는 날이 있고, 생각보다 글이 안 풀려서 제자리를 맴돌 때도 있다. 어제처럼 순조롭게 풀리는 날이 있고, 답답한 날도 있다. 좋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그냥 그런 날이구나 하고 넘어가면 된다. 특히 하기 싫은 날, 잘 안 되는 날을 버텨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오늘 잘 된 날은 내가 안 되는 날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