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이에게 친절하지 못할까? 엄마가 화나는 이유와 대

데일리 필로소피

by 벨리따

<데일리 필로소피>의 친절함이라는 무기 글을 읽으니까 두 가지가 생각난다. 하나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에 나왔던 은미테레사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내가 우리 아이에게 화를 낼 때이다. 은미테레사는 실수하고 사고 치는 후배들에게 한없이 친절하게 대하는 전공의이다. 지금 쓰는 글에서는 내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한 번쯤은 고민했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아이에게 화를 내야 하지 않는다는 점을 책에서 영상에서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 노력은 하지만 결국은 폭발하게 되는 모습. 반복되는 이 현상을 줄이고 싶을 테다. 나도 노력을 하고는 있고, 내가 왜 화를 내는지에 대해서 생각도 해봤다. 이 글로 정리를 해보려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화가 나는 이유는 무엇이며, 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나는 총 다섯 가지에 대해 생각했다. 해결 방법은 그동안 내가 읽었던 자녀 교육서와 <데일리 필로소피>의 철학, 아이를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내 생각을 바탕으로 적었다.

하나, 아이를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하면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아서이다.

오늘 아침에도 목소리가 커진 적이 있었다. 등교 준비를 해야 한다. 집에서 7시 45분에 나서니까 출발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할 일이 있다. 세수, 로션과 선크림 바르기, 옷 갈아입기, 아침밥 먹기, 양치하기, 물병 챙기기이다. 둘째는 일어나고 20분 동안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 학교 가야 하니까 옷 갈아입자고 하고 씻으러 들어갔다. 머리까지 말리고 거실로 나왔는데 잠옷 그대로다. 그동안 강아지 쏘니와 놀기도 하고, 회전의자에 앉아 있기도 하다. 이렇게 있으면 학교에 늦는다는 걸 알 텐데. 한 번 말했고, 거실로 나왔을 때도 이름을 불렀다. 여전히 옷이 그대로이면 잔소리 시작이다. 그제야 움직인다.

자녀 교육서를 보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라는 글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부모는 친절하고,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둬야 하는 것일까. 스토아 철학자들은 말한다. '아직 옷을 입지 않았구나.'하고 끝내라고. 여기에 덧붙여서 '지각하겠네.' '왜 말을 안 듣지?' '왜 알아서 안 하지?' '꼭 화를 내야만 하지.'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고. 이렇게 대해서 아이는 달라지는지가 궁금하다. 이들은, 아이를 바꾸는 일보다 내 감정을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그저 하나만 원인과 스토아학파의 해결책을 적어만 봤을 뿐인데, 솔직한 내 심정은 아이를 키우다가 성인이 될 것만 같다.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노력해야겠지.

둘, 엄마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내가 이런 점을 알려주지 않으면 우리 아이가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식당에서 조용하게 지내는 일, 밥 먹을 때의 예절, 길 건널 때나 자전거를 탈 때의 규칙 등 모든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한다. 부모가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하게 된다. 설명하고, 알려주고, 가르치는데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기억하지 않으면 화가 난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일단 아이는 바르게 자란다고 믿는다.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못 자랄까 봐 걱정하지 않는다. 생각이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긍정적인 결과도 나온다. 여기에 불안한 마음이 든다면 하나씩 적어보면 좋겠다. 그러면 꼭 부모 중에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나의 행동을 따라 하는 거라면, 나부터 먼저 바꾼다. 그래야만 아이에게 잘못을 짚어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정교육의 문제라면 단순히 잘못된 행동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밥 먹을 때, 한 번 흘린다고 부모가 화내지 않는다. 반복된 행동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면 대처 방법이 달라진다. 아이에게 친절하게 말할 수 있다.

셋, 아이들이 컸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챙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제 제법 컸다. 말도 알아듣고, 자신의 의견도 내놓을 줄도 안다. 그래서 이제 많이 컸다는 생각을 하는데, 가방 정리를 도와야 한다. 오히려 어린이집과 유치원 다닐 때 가방 정리를 더 잘했다. 내가 바구니에 준비물 담아 놓으면 가방에 넣기만 하면 됐다. 또, 집에 오면 가방에 있는 물건을 바구니에 넣으면 됐다. 좀 더 컸을 때는 물을 물병에 따랐고, 수저통에 수저도 챙겼다. 어렸을 때부터 해 온 일인데 물통, 우산, 학교 준비물 여전히 챙겨줘야 한다. 이런 거 알아서 잘 챙기라고 어렸을 때부터 바구니로 훈련을 했는데.

이럴 때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마음과 행동 하나씩 떠오른다. 마음은 여전히 아이라고 보는 것이다. 9살이라고 해서 혼자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른이라고 해서 매번 올바른 행동만 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미루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힘들고 귀찮아서 하지 않을 때가 있다. 아이도 여전히 성장 중이다. 다 컸을 때도 완벽하지 않은데 우리 아이들 역시 완벽한 존재로 여기지 않으면 된다. 행동은 칭찬하는 것이다. 가방 정리를 스스로 했을 때, 준비물을 다 챙겼을 때 칭찬한다. 부모의 칭찬은 아이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 하지 않았을 때 잔소리하지 말고 했을 때 칭찬하면, 효과가 더 크다.

넷, 부모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한 번씩 말한다. "엄마는 맨날 늦게 자는데 왜 나 보고는 일찍 자라고 그래?" "엄마는 폰 보면서 왜 나 보고는 보지 말라고 그래?" 아이의 말이 일리가 있을 때도 있다. 말대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면 엄마 아빠가 너랑 똑같냐고 말하지만, 말하면서도 논리적이지 않다는 느낌이다. 민망하고 멋쩍기도 하고 때로는 욱하기도 해서 화를 내기도 한다.

이럴 때 나는 원칙으로 대한다. "엄마는 할 일을 다 못해서 다 끝내려고 늦게 자는 거야. 너는 다 했잖아. 엄마도 다 하면 자." "엄마는 게임하고 동영상 보는 거 아니야. 폰에서 글 쓰고 있는 중이야." 여기에 아이들이 말대꾸처럼 대답하더라도 내가 가진 철학과 가치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말하면, 아이들은 이해했다. 이 과정이 바로 친절이겠지.

다섯, 내 감정을 돌볼 여유가 없어서이다. 어쩌면 화나는 게 아이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피로가 쌓이거나 스트레스받은 상태에서 아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분풀이로 화를 냈다. 아이가 같은 행동을 했을 때, 내가 받아준 적도 있을 것이다. 그건 아이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럴 때는 감정 관리, 스트레스 관리를 해야 한다. 사람마다 다르다. 걷기나 운동처럼 움직여야 하는 사람도 있고, 깔끔하게 청소하면서 푸는 사람도 있다. 조용하게 차 마시면서, 책 읽으면서, 명상하며, 노래 들으면서. 방법은 다양하다.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이라면 하나씩 해보며 나와 맞는 걸 찾아야 한다.

화를 내고, 잠자는 아이를 보며 반성하고, 다시 또 화를 내는 일을 반복한다. 글을 쓰면서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돌아보게 된다. 다행인 건 그 이유를 알아냄으로써 내 감정을 조금씩 다스릴 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매번 친절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화나는 횟수를 줄여나가고는 있다. 이제 곧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간다. 남은 하루에도 또 내 마음을 다스릴 일이 있을까. 오늘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월요일이네. 첫째와 둘째가 같이 있는 시간이 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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