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바둑 대회 입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작년보다 나아졌기를.
바둑 대회. 예선전에서 1승 1패. 본선은 올라간다고 한다. 지면 바로 탈락하는 본선. 두 판만 두고 오라 했다. 본선에서 만난 첫 상대에서 져서 탈락. 작년에는 예선 포함 네 번 대결했는데, 올해는 세 번만 두고 끝이다. 성적이 안 오르는데 이유가 뭘까. 학원 외에 공부하는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걸까. 그렇다고 내가 서하랑 바둑을 둘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집에 오는 길에 풀 수 있는 바둑 문제집도 구매했다. 기초부터 확인해 보려 한다.
작년과 올해의 올림픽 공원 모습
바둑 대회 끝나니 11시 40분 정도. 작년에는 올림픽 플라자 상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공원 안에 있는 식당을 가려했으나 이미 대기 줄이 있다. 콘서트가 있어서 그런지 아침 9시에도 사람이 많았다. 현수막에 'FOREVER YOUNG'이라는 글자를 보고 누구인지 몰랐는데 찾아보니 데이식스네. 우리 데이식스 노래 한참 따라 불렀는데. 작년에는 마라톤, 올해는 콘서트로 올림픽 공원에 사람이 북적인다. 사람 구경 많이 못 하는 원주에서 온 나는 여기가 서울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나는 왜 데이트라 생각했던 걸까?
올림픽 공원 인근에서 점심을 먹긴 어려울 것 같다.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고, 식당에 앉아도 정신이 없는 분위기일 것만 같다. 메뉴로 검색해 식당을 찾아봐도 가고 싶은 곳이 딱히 없다. 청량리역에 가기로 했다. 다른 데 들러서 밥을 먹으려고 해도 아는 곳을 모른다. 기차역이 있는 청량리역은 백화점이 있고, 백화점 안에는 식당도 있다. 시간이 남으면 쇼핑을 해도 된다. 가는 길에 갈 곳을 찾았다. '홍대 개미'. 덮밥을 파는 곳인데 서하는 면보다는 밥이다. 밥 위에 고기 올려주니 서하가 좋아하는 메뉴다. 일 인분씩 시켰는데 서하는 한 그릇 다 먹었다. 장국도 두 번 더 받아오고, 김치도 두 번 더 가지고 왔다.
식당 가는 길에 카페를 봤다. 예전에 자이언트 작가님과 같이 음료를 마신 적 있다. 서하는 그걸 기억하고 여기서 주스 마시자고 했다. 밥 먹고 나오니 앉을자리가 없다. 소화를 시킬 겸 백화점에 쇼핑하러 갔다. 보라색만 보면 다 자기 옷이라 하면서 사달라고 한다. 내 옷 봐달라고 간 건데. 1층으로 가서 서하가 좋아하는 화장품도 구경하고, 다시 한 층씩 올라갔다. 6층에는 아이들 옷을 판매하는 곳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서하가 옷 사달라고 하지 않는다. 한 층 더 올라가자며 7층에 갔다. 소파, 침대를 보니 자기 방 만드는 얘기를 한다. 그릇 보고 예쁘다고 하는 딸을 보니, 다른 건 다 닮았는데 나와 다른 취향도 있나 싶었다.
잘못 올라왔다. 오락실이 보인다. 둘러보다가 농구를 했다. 한 판에 천 원이다. 서하 키가 130 정도 되니 공 던지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끝까지 넣는다. 지치지도 않는지 농구 게임만 네 번 했다. 다시 남은 곳을 둘러보는데 보글보글이 보인다. 게임 조이스틱을 중고로 팔았는데. 보글보글 보니 우리 둘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천 원 넣고 같이 게임한다. 서하는 일찍 끝났고, 나는 46판까지 갔다. 집에서 할 때는 무제한으로 했는데. 물론 오락실에서도 돈 넣으면 가능하긴 하지만 계속할 수는 없으므로 더 이상 돈을 넣지 않았다. 집에서 할 때 혼자서 50판은 넘는데 내 알이 다 죽은 걸 보니, 혼자서 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애들이 도와줘서 가능한 거였다. 서하 점수가 생각보다 높다. 17만 점 이상 나왔다. 오늘 기록 중에서 두 번째로 높다.
맛있는 밥도 먹고, 백화점 구경도 하고, 오락실도 다녀오고. 기차 시간 때문에 시간을 보낼 겸 백화점으로 들어온 건 맞는데 바둑 대회를 참가보다 데이트의 성격이 더 강한 건 내 느낌인 걸까.
다음 날 다시 곱씹으니 바뀐 어제
이 글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어제는 아쉽고 속상한 점이 더 많았다. 7시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했고, 서울까지 갔다. 일 년이 지났으나 바둑 실력은 정체된 느낌이다. 하지만 서하 꿈은 프로 바둑 기사가 아니다. 이 사실을 오늘 글을 읽으면서 알았다. 꼭 성적을 내야만 의미 있는 건 아닌데. 서하는 어제 바둑 대회를 즐겼다. 끝나고 남은 일정도 신나게 보냈다. 이렇게 보내면 충분하지 않을까. 성적보다 즐기기를. 바둑도, 인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