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너무 싫어서 급하게 휴가 낸 후기
월요일에 팀장에게 면담을 신청해서 힘든 점과 개선이 필요한 점을 얘기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화요일에 내가 힘들다고 한 상황이 반복됐다. 지난주부터 급격하게 스트레스가 쌓여서 분노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면담까지 했는데 이러는 걸 보니 숨이 막혀서 퇴근 직전에 급하게 팀장에게 말했다. "저 내일부터 3일 동안 휴가 좀 쓸게요."라고.
회사가 당일에 휴가를 써도 될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다행이다. 이대로 일하다가는 충동적으로 퇴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하게 결정했다.
휴가를 내도 코로나 때문에 아무 데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정말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는 휴가를 계획했다.
밤늦게까지 맥주 마시면서 영화 보고, 다음날 12시에 가까스로 일어나서 밥을 엄청 푸짐하게 차려 먹었다. 첫째 날에는 삼겹살을 구워 먹고, 둘째 날은 곱창을 구워 먹고, 셋째 날에는 중식 요리를 해서 먹었다.
밥 먹고 나서는 유튜브 보면서 소화 좀 시키다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다시 늦게까지 영화를 봤다. 이런 게 바로 직장인의 방학인가 싶을 정도로 좋았고, 화나는 마음이 좀 진정됐다.
회사에서 우리 조직은 연구 조직이다. 연구 조직 특성상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일이 많은데, 어쩌다 보니 전혀 다른 조직에서 온, 전혀 다른 직무의 사람이 팀장이 되었다. 업무 스타일도 다르고, 업무 방향에 대한 생각도 아주 다르고, 생각하는 조직 문화도 달랐다. 5년 동안 담배를 끊은 팀원이 담배를 다시 피울 정도로 팀원들은 고통받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실장한테 지금 상황에 대해서 말하는 거고, 두 번째는 팀장에게 정면돌파를 하는 것이다.
실장에게 말하는 것은 일이 잘 풀린다면 팀장이 바뀌거나, 실장이 팀장에게 말해서 팀장이 각성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경우에는 내가 별것도 아닌 일로 이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장이 팀장에게 얘기하더라도, 팀장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실장에게 먼저 말을 하는 게 뒤에서 고자질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는 않다.
그래서 두 번째 방법인 정면 돌파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러다가 정말 퇴사할 지경인데, 그만두기 전에 한번 막 나가도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건 틀렸다고 하고, 업무를 명확하게 지시하지 않아서 혼선이 생길 때는 제대로 짚어줄 거다.
그동안은 회사 일에 치어서 이런 생각을 할 기회가 없었고, 그저 주어진 상황에 맞춰서 지냈는데, 쉬다 보니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이대로는 도저히 못 지내겠다고 판단했고, 행동할 용기를 얻게 됐다. 이래서 사람은 힘들 때 휴식이 필요하다고 하나 보다. 정말 아무것도 안 했지만, 그 어떤 휴가보다도 가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