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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ghtme Mar 09. 2021

계획에 없던 이직

[경증 우울증 극복기 다섯 번째] 아싸가 깨달은 인간관계의 중요성

 안정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다. 강박증약을 추가한 게 무척 도움이 많이 됐다. 의사 선생님이 내 강박 증세 관련해서 크게 걱정하던 부분이 하나 있었다. 내가 주말이나 연휴의 마지막 날이면 쉬는 동안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는 점이었다. 강박증 때문에 성취에 대한 압박이 커서 내가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면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쉬는 날도 있는 거라고 다독여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강박증약을 복용하니 이런 증상이 없어졌다. 지난 두 달 동안 성취 없는 휴일에 대해 자책한 날이 없었다. 본래의 성격이고 쉽게 고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금세 나아지니 허무하기도 하다.


 이런 차분한 생활 속에 갑자기 이직을 하게 됐다. 너무 급작스러웠다. 현 직장에 업무적으로 불만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동료들이 정말 좋았고, 실장과 팀장도 존경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직 생각은 없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정도의 권태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예전에 같이 일했던 분이 본인 회사에 추천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실력을 검증해보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면접을 봤고, 합격했다. 처우도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

 떠나기로 마음을 정하고 회사에 알리는 게 가장 힘들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했는데, 이 신뢰를 깨버리는 것만 같았다. 사실 처음 실장과 면담한 후에는 이직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번복했었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 나를 붙잡으니까 마음이 약해졌다.

 이직할 회사에는 지금 회사를 계속 다녀야겠다고 통보했다. 인사팀에서는 연봉을 더 높여 줄 테니 한 번 더 고려해달라고 했다. 좋은 조건을 제안받았지만,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금전적인 조건을 다 배제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그리고 결국 이직을 해야겠다고 다시 굳게 결심했다. 현 직장보다 상위 호환으로 이직할 수 있는 회사가 손에 꼽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은 점도 고려했다.

 결정을 또 번복하고 이 사실을 현 회사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막막했다. 왜 항상 이렇게 결정을 잘 못 하고, 쓸데없이 정이 많은지. 그래도 나는 남들보다 결정하기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한 사람일 뿐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사다난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모든 게 잘 해결됐다. 현 직장에서는 결정을 번복한 것을 이해하고 자책하지 말라며 위로해줬다. 그리고 새로운 직장에서는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높게 연봉을 올려주었다.

 이번 이직 경험으로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친하게 지냈던 동료 덕분에 좋은 회사에 면접 볼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회사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이직하는 과정에서 탈이 없었다. 사람들이 결정을 무른 나를 오히려 위로하고 응원해줄 때는 감동도 느꼈다. 독고다이를 인생 좌우명으로 삼는 내 가치관이 흔들릴 정도였다.


 의사 선생님은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과 교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이 얘기는 예전부터 책에서 읽은 내용이지만 그때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나는 혼자가 가장 편했다. 인간관계를 유지하면 스트레스만 받고,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책을 읽고, 영화 감상문을 쓰고, 운동하는 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나 가족을 자주 만나는 것도 꺼렸다.

 그런데 다 오산이었다. 강박증약을 먹고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집착이 줄어드니,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낭비로 느껴지지 않았다. 행복 일기를 쓰며 하루 중 행복했던 때를 되새길 때면 사람들과 웃고 떠들었던 시간이 생각났다. 이제는 주변 사람과 교류하는 게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싫어하는 점은 선천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병원에 다니고 여러 경험을 하다 보니 그동안 좁은 시야에 갇혀 지냈다는 걸 실감했다. 앞으로 조금은 더 유연한 자세로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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