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했던 거짓말 하나

1부. 계절의 경계

by 벨라콩

아빠가 죽고 난 뒤,
아빠와 나눴던 대화 하나하나가 자꾸 떠올랐다.
어릴 적 말투부터 사소한 행동까지,

기억은 멈추지 않고 겹쳐 흘러갔다.


모두가 힘들게 살았겠지만
우리 집은 유독 더 가난했다.


학령기 내내 우리는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차상위계층으로 살았고,
쓰러질 듯한 집에서 지냈다.
샤워를 할 때면 밖에서 집 안이 보일까 봐
불을 끄고 물을 틀어야 했다.


아빠와 새엄마와 잠시 함께 살던 시간을 빼면
화장실은 늘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게 나의 일상이었다.

그래도 불평한 적은 없었다.
이게 내 몫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엄마가 더 무너질 것 같았고,
내가 울면 한 살 어린 동생이 더 움츠러들 것 같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친구들은 하나둘 학원으로 흩어졌다.
나는 그 흔한 단과 학원 하나 다니지 못했다.
공부에 욕심이 있던 아이라
그때의 초라함이 오래 남았다.


친구들이 수업을 마칠 때까지
나는 학원 앞을 서성였다.
갈 곳이 없어 운동장 모래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주말을 빼고 거의 매일 그랬다.


어느 날 아빠가 삼만 원을 내밀며 말했다.
“이건 학원 대신이야. 사고 싶던 문제집이라도 사.”


그 말이 얼마나 다정한 위로였는지
그땐 몰랐다.


훗날,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사는 모습을 보며
아빠는 고개를 자주 떨구고 종종 눈물도 비추었다.

아빠가 죽기 몇 달 전의 우리의 대화가 하나 생각났다.


"너는 많이 힘들었지만 바르게 컸고,
하고 싶다던 것들 못 시켜줘 미안하다고,
어릴 적 너를 붙잡고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나 괜찮아. 그런 일이 있었나? 기억 안 나"

아빠가 죽고 나서야
그 말이 왜 그렇게 슬퍼졌는지 알 것 같았다.


사실은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사춘기 시절 나에게는 큰 상처였지만
그렇게 말해주는 게
아빠 마음을 조금이나마 놓아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참 잘한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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