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계절의 경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잘 모르겠다.
이게 언제쯤의 일이었는지도 선명하지 않다.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던 걸 보면
한여름쯤이었을 거라는 감각만 어렴풋이 남아 있다.
우리 집은 큰 창 하나가 언덕을 향해 열려 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산과 구름,
날아다니는 새들이 보인다.
아빠가 창밖 어딘가에서
이 풍경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정말 최소한의 일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없던 날,
사과 하나를 깎아 사진 앞에 두고 중얼거렸다.
다음 날은 물 한 잔을 올려두고 울었다.
울다가, 또 울었다.
왜 마지막까지 이런 시련을 주고 떠난 거야.
미안하다고 말해놓고
이 마음을 평생 안고 살라는 거야.
그제야 아빠가 생각보다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내가 조용히 망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세탁실에 앉아 있다가 식은땀이 났고
곧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남편에게 119를 불러달라고 말했다.
남편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게임과 술, 육아 문제로 늘 다투었고
어쩌면 형식만 남은 부부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에게서
과한 위로를 기대했던 걸까.
그때 알았다.
이 슬픔은 내 몫이라는 걸.
다음 날, 오래 다니던 병원을 찾았다.
극단으로 기울어진 우울 속에서
나는 불안과 잠을 붙잡기 위해
여러 약을 처방받았다.
의사는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다.
상담을 받고 약을 받아간 환자가
그날 점심에 생을 놓았다는 이야기,
자신의 작은아버지 역시
같은 선택을 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 말들은 위로라기보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증거처럼 들렸다.
나는 병원과 약에 기대
다음 진료일을 기다리며 지냈다.
괜찮아지겠다는 확신은 없었다.
다만,
오늘을 넘기면 내일은 올 거라는 사실만
받아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