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비극 앞에서

1부. 계절의 경계

by 벨라콩

그러다 상담이 어느 정도 이어졌을 무렵
의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왜 계속 죽음을 파헤치려고 하느냐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이제는 사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이렇게 슬픈데
내 감정이 부정당하는 것 같았고
동시에 내가 현실을 붙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 한편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옳은 말인 것 같아서
그래서 더 아팠다.


그날 이후 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상담에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
자살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내 일상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 있으려 애쓴 건
아빠 앞에서 늘 하던 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잡초잖아.”
웃으며 넘기던 그 말처럼
진짜 잡초처럼 살아남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그러다 이리저리 찾아보다
시에서 운영하는 자살 유가족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 이야기를 의사 말고, 사람들에게
그것도 아빠를 미화하지 않은 채
처음으로 꺼내는 자리였다.

첫 문장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한 문장을 겨우 꺼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울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애도 모임은 끝이 났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그래서 함께 울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이후 세 번 정도 나는 그 모임에 꾸준히 나갔다.
어쩌면 그곳에 내 남은 희망을 전부 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자살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여럿 참석했다.
그 앞에서 나는
그저 듣는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부모이기에.


그중 한 사람은
TV에도 나올 만큼 알려진 사건의 당사자였다.
초등학생 아이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그분은 말을 잇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그날, 남의 비극이 나에게 희망이 되는
이상하고 불편한 순간을 처음으로 겪었다.

그렇게 느낀 내가 부끄러워
저녁에 그 아이와 부모를 위해
창에 비친 달을 향해 기도했다.


부디, 조금씩은 나아지기를.


내가 이런 생각을 해도 되는 사람인지
희망이라는 말을 붙여도 되는 건지
스스로에게 계속 묻게 되었다.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과 함께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동안 대충 흘려보냈던 시간들,
아이들을 방치하듯 지나온 날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날은 아빠의 죽음 이후
아이들에게 가장 환하게 웃어 보인 날이었다.


“엄마!” 하며 뛰어오는 아이들이 보였다.
아빠의 죽음 이후
웃어주지 못했던 날들이 아쉬워
나를 보며 웃는 그 얼굴 앞에서
불현듯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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