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계절의 경계
자살유가족 모임에 나가보니
부모, 자식, 연인, 지인..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상실을 안고 있었다.
여자친구가 떨어지는 순간,
끝까지 붙잡지 못해 눈앞에서 떠나는 걸 지켜본 사람.
직장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
누구의 슬픔도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자식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
마음 한 귀퉁이가 자꾸 흔들렸다.
결국, 나는 모임을 그만두었다.
처음엔 남의 비극 속에서
어쩌면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몇 번 더 참석할수록
나의 우울과 세상에 대한 분노만 짙어졌다.
연락을 끊고 조금씩 멀어지던 어느 날,
시에서 운영하는 유가족 상담사가
예고 없이 집을 찾아왔다.
한 번 도움을 요청했을 때
형식적인 위로만 반복하던 분이 떠올라
그 뒤로 방문을 모두 거절했던 터라
그날도 마음이 굳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온 분은 달랐다.
얼굴은 희미하게 잊혔는데
목소리와 분위기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분은 조용히 말했다.
“저도 아버지를 자살로 떠나보낸 지
벌써 스무 해가 넘었어요.”
놀랍게도 그의 표정은 평온했다.
대화는 가볍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편안했고,
나는 어느 순간 이렇게 묻고 있었다.
“언젠가는… 정말 괜찮아지는 게 맞나요?”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지금 아빠를 생각하면 슬프지 않아요.
그저… 그리운 한 사람일 뿐이죠.”
그 말에서 처음으로 ‘진짜 괜찮음’을 보았다.
누군가의 경험에서 나온 ‘괜찮아’만이
비로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날 알았다.
그분의 웃음에 나도 따라 미소가 지어졌다.
오랜만에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나마
내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조용히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