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계절의 경계
죽지 않을 거면, 살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나를 몰아붙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오늘을 넘기는 정도면 충분했다.
낮에는 집 근처에서 일을 하고,
아이들 하원 시간엔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듯 시간을 보냈다.
밤이면 한 시간씩 걸었다.
바람이 날카롭게 피부를 스쳤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쯤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일을 나가려던 순간
예전 직장 상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 좀 나아졌니?”
나는 짧게 답했다.
“아니요. 노력은 하고 있어요.
죄책감이 많아서 금방 괜찮아지진 않아요.”
그는 이어 말했다.
“나도 아버지 암으로 떠나보냈잖아.
투병하다 돌아가셔도 죄책감은 있어.
너만 그런 건 아니야.”
의도는 알겠지만
그 말은 이상하게 더 차갑게 들렸다.
그날의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죽음이 슬프다는 건 같지만,
투병이면 마지막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저는 그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떤 죽음엔 ‘유가족’이라는 단어가
따로 붙는 것 아닐까요.”
내 말투는 이미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잠시 머뭇하고 말했다.
“작별 인사가 있어도 슬픈 건 슬픈 거지.
너만 겪는 건 아니야.”
전화를 끊고 나니
공기가 갑자기 무겁게 내려앉았다.
숨이 크게 쉬어지지 않았다.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겨우 붙들고 있던 때라
이런 말 한마디가
냉기처럼 마음을 얼려놓았다.
그가 의도한 건 위로였겠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의 말은 위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가끔 떠오르는 걸 보면
그건 위로가 아니라
분명히 상처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