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슬픔 너머에 남아 있던 자리
아이와 그림책을 읽으며
나는 아주 잠깐, 예전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
웃을 수 있었고, 위로를 받았고
‘그래,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겉으로는 일상을 회복하는 것처럼 보여도
어딘가 한쪽의 자존감은 이미 깊게 무너진 뒤였다.
나는 내가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때서야 처음 알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는 내가 그 일을 정말 싫어한다고 믿고 있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책육아’를 주제로 몇 년간 SNS를 운영했다.
집에서도 수익을 만들 수 있는 일,
SNS를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어 할 만한 일을
나는 이미 하고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날도
유명한 책의 공동구매가 예정돼 있었다.
그 사실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지만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빠의 죽음을 알게 된 뒤
장례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에도
나는 피드 문구를 수정해 올렸다.
이미 몇 달치 공동구매 일정이 잡혀 있었기에
출판사 담당자들에게 급히 부고를 전했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난했다.
‘이 와중에 무슨 책임감이야.’
‘너무 불효녀 아니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싫다는 말은 핑계였을 뿐,
나는 그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 혼란스러운 순간에도
놓치고 싶지 않아 긴장하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보이스피싱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충동적으로 국민청원 글을 올렸다.
법을 바꿔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주절주절 써 내려간 글은
결과적으로 내 아버지의 부고를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 되고 말았다.
팔로워가 있었으니
도움이 될 거라 믿었다.
그게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내가 사랑하던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보이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슬픈 일을 겪고도
저렇게 웃고, 저렇게 일하네.’
그런 시선을 받을까 봐 두려웠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다시 일상을 재건하며 살아가는 걸
좋아해 주는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SNS를 시작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렇게 웃어도 될까.’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살아도 될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네 병원에서 팔로워를 마주친 적이 있다.
나를 보자마자
그 사람이 입을 막으며
불쌍하다는 눈빛을 보냈을 때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자살유가족이 겪는 현실은
사회와 분리된 느낌이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조차
지켜내지 못했다는 시선,
잠깐의 대화만 나눠도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너무 선명하게 느껴진다.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때의 선택,
온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현실은
지금도 후회로 되돌아온다.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그 생각은 몇 년이 지나도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려 할 때마다
용기를 내는 일이 여전히 너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