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임신소식은 나를 당황케했다. 준비라고는 1도 되지 않은 임신이었다.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하기 직전까지도 원했다 말하기 어려운, 갖가지 확률을 뚫어버린 임신이었다. 하지만 이 소식은 비단 나만을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같이 지낸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모국에서의 결혼식은 2018년도에 올렸다. 나의 제일 친한 친구는 나보다 1년 먼저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는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항상 입버릇처럼 자녀를 낳아 키울 것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지금은 그녀와 결혼한 오랜 연인을 놀리려 그 아빠는 네가 되지는 않을 거야 하곤 했다.
임신 전에는 가장 가까운 친구인 그녀의 고민이 그리 와닿지는 않았다. 나는 될 대로 되겠지 하는 식이었다. 나이가 있으니 생기면 낳기는 하겠지만 굳이 애쓰지는 않겠다는 편이었고, 그렇다고 안 낳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내키면 피임을 안 하기도 하고, 구태여 피임약을 복용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내 기준에 위험 인자는 많지 않았다. 나의 생리주기는 정확한 편이었고 생리전증후군도 생리통도 심했다. 나는 남편과의 성생활이 한 달에 한번 될까말까였으므로 아기가 들어선다면 그야말로 몇 억만 분의 일의 확률을 뚫는 것이 되었다.--하지만, 배란기를 피하는 것은 정확한 피임법이 아닙니다. 피임약이나 기구 삽입을 고려해보시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정확한 콘돔 사용이 피임과 감염을 막는 데에 더 확실한 효과가 있으니 임신을 원치 않는다면 휘뚜루마뚜루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는 동안 내 친구는 난임 병원에 '입학'했다.
몇 가지 검사를 했다더라. 남편과 아내 모두 건강에 큰 이상이 없어서 우선적으로는 자연임신을 계속 시도할 것을 권유받았다고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잘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에 출근하는 친구와 저녁 늦게까지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의 남편은 생활하는 시간이 맞닿지 않았고, 흔히 말하는 '숙제'를 할 여유가 많지는 않았던 듯했다. 내 친구가 별다른 이유 없이 임신을 시도하고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주변의 소식을 계속 들었어야 했다고 한다. 그녀의 친구도, 그 친구의 친구도, 죄다 임신에 출산에, 분명 축하해야 할 소식인데 왜인지 씁쓸하더란다. 그리고 출산에 대해 비관적이던 나마저 초음파 사진을 보냈을 때 그녀는 대상도 없이 서운했더란다.
나의 임신은 충분히 축하받았다. 이제 200일이 지나는 내 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러운 아가다.--하지만 10키로짜리 아가를 눈에 넣으면 아프겠지요.-- 하지만 축복받았다는 사실 외에 나는 왜인지 마음의 부채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우리가 주변에 임신소식을 전했을 때, 퍼스에 있는 남편의 지인은 시험관 시술을 앞두고 있었다. 이들도 오랫동안 자연임신도 시도하고 인공수정도 시도했으나 임신이 어려웠던 듯했다. 정말 다행히도 3개월쯤 뒤 시험관 시술에 성공해 지금은 100일이 갓 지난 예쁜 아가를 키우고 있다. 나중에서야 '우린 임신 안 해,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하며 떠들고 다니던 우리 부부의 임신 소식이 너무 얄밉더라고 이야기했다.
내 친구나 남편의 지인은 '노산'에 속하기 때문에 시험관이나 인공수정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려했어야 한 듯하다.--의학적으로 여성이 만 35세 이후에 출산하는 경우를 노산으로 분류합니다. 이는 진단받은 난소 나이나 자궁나이와 무관합니다. 각자 개개인의 계획이 있을 테니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자녀계획이 있다면 하루라도 젊을 때 시작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쉬운 절차가 아니다. 여성의 몸은 매달 서로 다른 작용을 하는 호르몬이 교차하며 임신을 대비한다. 자궁 양쪽에 각각 위치한 난소에서 번갈아가며 배란이 되면 임신을 대비해 착상이 용이하도록 자궁벽이 두터워지기 시작한다. 착상이 되지 않았다면 이 벽을 유지시키는 황체 호르몬의 분비가 감소하며 두터웠던 층이 배출된다. 이게 생리다. 난임 병원에서는 호르몬 예측이 용이하도록 생리주기가 시작되었을 때 병원에 방문하게 한다고 한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해서 필요한 경우 배란이 되는 난소 쪽 통로를 넓혀주는 시술을 하기도 한다.
인공수정은 채취한 남편의 정자를 임신이 가능한 시기에 여성의 몸에 넣어주어 임신 확률을 높이는 시술이고, 시험관은 과배란을 유도한 여성의 난소에서 충분히 성장한 난자를 채취, 같은 시기 채취한 정자를 직접 주입하여 수정란을 만든 뒤, 착상이 가능한 자궁 내에 삽입하여 임신을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문장으로 서너줄이면 설명할 수 있는 이 시술은 최소한 한 싸이클, 평균 생리주기인 28일 이상이 걸리고, '과배란'을 위해 먹거나, 질에 넣거나, 주사로 놓거나 하는 호르몬 약만 해도 5~15일 이상 써야 한다. 때문에 여성의 몸에 많은 무리를 주게 된다. 임신과 출산 자체가 여성의 신체에는 큰 영향을 미치는 일임을 경험을 통해 배운 나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걸 내 친구가 겪는다 생각하니, 멀리 떨어져 소식만 기다리는 내가 죄스럽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임신초기 여러 이벤트로 마음고생을 할 때조차, 이벤트가 있더라도 임테기의 두줄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할지 모를 간절한 그들이 눈에 밟혔다.
임신을 기다리고 노력하는 일은 비단 이런 복잡한 절차를 겪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시드니의 친한 동생도, 아직 젊으니 검사는 미루고 미뤘지만 1년 가까이 노력해도 잘 되지 않으니 조금 조급해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나는 하루에도 여러번 '내새끼 너무 이쁘죠?'와 '자제 좀 해야겠다..'를 오고 갔다. 아무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여기 눈치를 보는 사람은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좋은 소식이 겹겹이 들렸다. 시드니에서도 괴롭지만 반가울 입덧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주면 성별도 알 수 있을거라고 한다. 한국의 내 친구는 오랜 기다림 끝에 자궁에 나란히 집을 지은 쌍둥이 젤리곰 사진을 보내왔다. 겹겹겹경사다. 나도 어느 정도 마음의 작은 빚을 갚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당사자들만큼은 아니겠지만 누구보다 기뻤다.
난 항상 내 딸아이보다 성장이 한걸음 늦은 것 같은, 아직도 중비 중인 엄마지만. 오래도록 기다려 새 생명을 품게 된 내 친구에게 너는 나보다 더 빨리, 더 현명한 엄마가 될 준비를 그간 했던 걸테니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자신을 닮은 새 생명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분들이 있다. 나 스스로 육아가 힘에 부치거나, 내가 너무 부족한 것 같은 때, 우연찮게 찾아온 우리 아가가 나보다 간절한 분들에게 갔다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후회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재미있고,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우연한 인연으로 소중한 아기를 품에 안은 내가 어찌 난임의 어려움을 털끝만큼이라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마는 그 기다림이 당신을 조금 더 현명하고 멋진 부모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그리고 그 기다림이 너무 길지 않도록 기도하겠다고 마음으로 빌어드리고 싶다. 그리고 또 여기저기서 기다렸던 좋은 소식이 들리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