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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Oct 02. 2022

기록 3



 오늘로 아기는 210일째를 맞았다. 

 100일엔 풍선이니 뭐니 잔뜩 사서 옷을 서너 번 갈아입히며 사진 수백장을 찍었다가 결국엔 낮잠시간을 놓친 딸을 울렸었다. 200일에는 그저 예쁘게 입혀서 공원에 나가 둘이 시간을 보냈다. 아빠는 출근을 해야 했기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고작 100일 만에 아이는 참 많이도 컸다. 


100일의 아가 - 다른 아기들 뉴본 사진이 부러웠던 나는 최대한 수건을 싸매 보았다. 내 딸은 힘이 좋아 금방 풀고 나왔다. 
100일의 아가 - 이제 자고 싶다고 한다. 아직 두벌 더 남았다. 
100일의 아가 - 아니 그만 하라고오 했잖아아앙
100일의 아가 - 마지막 착장을 하고 지쳐 잠든 내 딸


 백일 사진을 찍을 때는 혼자 앉지 못해 지지할만한 것들이 필요했고 포즈 하나를 잡는 데만도 수십 분이 걸릴 정도였는데, 200일이 되니 바닥이 동그란 그네에도 혼자 척척 앉아 웃어 보인다. 표정이 부쩍 다양해진 아가는 얼굴에 침독이 잔뜩 올라 울그락 불그락 한데도 불구하고 빛이 난다. 


200일의 아가 - 기념으로 사진이나 찍자고 꼬까옷 입혔더니 기분이가 좋아요
잡아주지 않아도 혼자 잘 앉는다. 손가락을 야무지게 빨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200일의 위엄.






 고작 200일 정도라니.. 뱃속에서 보낸 280보다도 작은 숫자다. 아기는 그만큼, 아직도 세상에 열심히 적응 중이다.

 난 벌써 내일모레 마흔인데, 아기는 고작 한 살도 채 되지 않았다니 참으로 하찮다. 그리고 그 하찮은 시간동안 키는 벌써 출생 시 보다 20센티나 더 자랐고, 몸무게는...--말모-- 쪼만한것이 크느라 얼마나 아플꼬... 그렇다 보니 요 며칠 밤에 칭얼대는 아기를 안아주는 일을 고생스럽게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잇몸을 보아하니 아랫니 두 개가 곧 올라올 것 같다. 내 딸은 이앓이를 심하게 하는 중은 아니다. 엄청난 양의 침을 흘리며, 종종 제 아랫입술을 앙앙하며 씹는다. 식후에 거즈로 잇몸을 닦아주면 내 손가락도 잘근잘근 물면서 왠지 모를 후련한 표정을 짓는다. 아이를 먼저 낳아 키운 지인의 팁대로 각종 치발기와 장난감을 죄다 냉장고에 넣어놨다. 냉장해 두었던 치발기를 제공하면 이가 올라오면서 생기는 미열이나 욱신거림을 완화시켜 줄 수 있다고 한다. 만약 심하게 울고 보채며 열이 나는 경우 약을 조금 먹여도 좋단다. 


 작은 몸 안의 연약한 뼈가 스스로 자라는 동안 말 못 하는 아기는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엄마 왜 그런지 몰라요. 다리가 너무 아파요.', '엄마 지난주까지는 다리가 너무 아팠는데, 오늘은 입안이 이상해요. 이건 뭐예요?'라고 한다. 혹자는 잠버릇을 들이려면 밤에 칭얼거리는 아기에게 반응해주면 안 된다고도 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조용한 밤이 오면 더 저릿해서 서러웠던 내 밤들을 생각하며 두세 번에 한 번은 꼭 안아준다. 그렇게 안아주고나면 다리 대신에 마음이 편안해진 아이는 몇 시간을 더 푹 잘자더라. 내 아이는 그렇더라. 손이 좀 타면 어떠려나 아이가 내 품 안을 파고들고, 밤에 나를 찾는 일이 수십년 갈까. 






 집을 알아보는 중이다. 아이를 갖기 전에는 상상도 안 했던 삶이다. 내 집이 있는 삶을 꿈꿨던 적이 나는 없었다. 나는 싫증을 잘 내는 편이라 안정적인 공간도 좋지만 가끔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사는 이러한 내게 생활을 변화시키기에 가장 드라마틱한 방법이었고, 더불어 눈치 없이 늘어나는 불필요한 짐을 처분할 가장 좋은 구실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가 생겼다. 가구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이사가 번거롭지 않았던 집은 물건을 내 맘대로 버릴 수 없으니 아이에게 위험천만해 보인다. 더불어 아기 짐은 점점 늘어나는데 세간 살림은 정리가 안되니 집안이 정신이 없다. 

 아직 시기가 이르지만, 학교니 유치원이니 자꾸 옮겨 다니게 하지 않으려면 정착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까지 남 좋은 월세를 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집을 알아보는 중이다.


 놀랄 노자다. 내가 결혼을 하더니, 아이를 낳아, 역마살을 뚫고 집을 사려고 한다. 그렇다.






 이유식은 초기 2단계를 지나 중기로 넘어왔다. 150일째는 이유식을 시작하기에 조금 일렀던게 아닌가 싶다. 지금 돌이켜보면 150일의 아기는 혀 내밀기 반사도 그대로 갖고 있었고, 음식을 먹을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것 같다. 만일 아기 이유식을 먹일 준비를 하시는 분이라면, 170일경쯤 시도해 볼 것을 제안드린다. 그리고 쌀미음으로 시작한다면, 다른 재료를 추가하기 전에 쌀미음만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먹여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먹는 일에 있어서 엄마도 아기도 성공하는 경험을 쌓아야 점점 더 다양한 식재료를 용기 있게 도전해 볼 수 있다. --물론 늘 말씀드리듯이 애바애, 사바사, 케바케라서 아기와 엄마가 준비되었다면 날짜에 너무 연연하지 마시고 시작하시면 됩니다. 1. 의자에 20분 정도 혼자 앉기 가능한지, 2. 출생 시보다 체중이 2배 이상 되었는지, 3. 혀 내밀기 반사가 소실되었는지, 4. 엄마 아빠 식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지를 확인해보시고 내 아이가 네 가지 모두 해당된다면, 그리고 양육자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시작합시다.  


 우리 딸은 한 번 온몸에 두드러기 비슷한 게 올라왔다. 아마도 이른 소고기 섭취가 위에 부담이 된 게 아닐까 추측만 해본다. 어쩔 수 없이 혹시나 부족할지도 모르는 철분은 오트밀 죽으로 대신해주고, 한국식 이유식은 쌀미음으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차근차근 밟았다. 호기롭게 준비했던 재료들을 버려야 했지만 재도전은 성공이었다. 이제 아기는 20종가량의 야채를 먹을 수 있게 되었고, 하루 한 번은 소고기나 닭고기를 먹는다. 또 과일즙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새콤달콤한 과일을 먹는 아기 표정을 보는 기쁨은 덤. 

 알러지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식재료 중에 밀가루와 오이도 성공적으로 패스했다. 다음은 계란이다. 그리고 땅콩까지. 


 심장소리 듣기, 목투명대 검사, 하모니테스트, 모폴로지 스캔, 산모의 당뇨나 고혈압 같은 합병증, 출산.

 임신기간에도 수많은 과정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탄생 후에도 온갖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것만 같은 아기의 삶. 생각보다 녹록지 않을 수도 있겠다싶다. 





 바로 아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조금 더러울 수 있습니다.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읽지 마세요. 




 얼마 전 충격적인 글을 읽었다. 대변이 마려울 때, 건강한 장을 가진 사람은 '어? 대변이 마렵네?' 생각하고, 화장실에 가서 큰일을 본 뒤 개운하게 물 내리고 나온다는 거였다. 나는 서른 살 이후로는 항상 고통스러워하며 화장실에서 몇십 분씩 앉아있어야 소득을 봤는데? 굳이 변비가 아닐때도 대변을 보는 일은 고통이 수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후 더 충격적인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들은 생후 6개월쯤 되면 모체에서 받은 철분이 전부 소진되어 새롭게 섭취해야 한다. 그래서 매일 정량의 소고기를 먹게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유식 자체도 7~10배 죽이긴 하지만 조리시 수분이 많이 증발하기도 하고 소화를 시키는데 체내의 수분이 많이 쓰인다. 철분 자체가 때때로 변비를 유발하기도 하는데, 소고기를 섭취하며 얻게 된 철분을 몸에서 다루는 연습 중인 아가들은 더더욱 변비가 오기 쉽다고 한다. 



 요새 우리 딸은 오전 중에 이유식을 170g 정도, 오후에 120g 정도를 먹는다. 아직은 분유가 주식이기 때문에 분유도 틈틈이 총 700ml 정도 먹는다. 그리고 이유식을 먹으면서 물을 30ml 정도 마시는데 아무래도 수분이 부족한 것 같다. 변비가 왔다. 

 하루에 두어 번 정도 큰일을 보는 우리 애가 큰일을 볼 때마다 목 놓아 운다. 그게 너무너무 마음이 아프면서도 귀엽고 웃기다. 어제 고통에 울부짖는 가여운 딸애의 동영상을 남편에게 보냈다. 오늘부터 변비에 좋다는 유산균도 먹기 시작했고, 물도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과일도 먹었으니. 수일 내에 편안하게 큰일 보는 내 새끼를 기다려보려고 한다. 


 진짜 너무 귀여워서 올리고 싶은데요. 제 아이에게도 프라이버시가 있을테니 자제하겠어요.







 출산 후 호르몬에 날뛰던 나도 조금은 안정을 찾았다. 무엇보다 12월에 엄마가 호주에 오시기로 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혼자는 두려웠던 엄마는 미국 시민권자인 내 조카도 데려온단다. 북적북적해서 덥겠지만 그래서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될 예정이다. 

 아기는 정말 부지런히 자란다.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인별 그램의 '해룬'이라는 육아툰 작가님이, 나는 전혀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하니, '아마 성장하셨는데 너무 정신없어서 못 알아채는 걸 거예요.'라며 위로를 건네주셨다. 


 아마도 우리는 아기들보다 한걸음 늦게 자랄지 모르지만, 우리 아이들이 기특하게 엄마와 아빠를 이끌어줄 것을 믿어보는 게 좋겠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레벨업을 기대하며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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