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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Dec 02. 2022

작심


 그저 이제 모르는 척하고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음악이 좋고 노래가 좋아 무대를 누비던, 알량한 글솜씨로 짧은 소설을 만들어내던,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눈에 미쳐 다 담지 못한 것들을 필름으로 또 디지털로 남기던, 꿈 많고 재주 많던 나.


 브런치가 알려줬다. 잊지 않기로 하지 않았더냐고, 나로서 멋지게 두발 땅 위에 붙이고 당당히 살아내야 멋진 엄마도 할 수 있는 거라고, 게으름 피우지 말고 돌아오라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은지 두 달이 지났단다. 애써 모른 채 하고 있었는데 오전인가 알람이 울렸다. 60일 동안이나 글을 올리지 않은 작가님을 기다리고 있다고. 

 '작가님'이라니.




 나는 시작만 하고 끝내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나중에 아가에게 보여주려고 쓰기 시작한 육아일기는 심지어 이틀 쓰고는 열흘이나 방치했다. 이달 중순에 이사를 가야 하는데 짐도 싸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겨우 오늘 가방들과 겨울옷 -겨울이라고 해서 매우 추운 곳은 아니라 딱히 겨울옷이랄 것도 없지만...-만 정리해놓고도 무릎이며 허리며 성한 것 같지가 않고, 몸살 기운까지 있다. 

 부쩍 큰 아가는 작아져서 못 입는 옷들도 늘어났는데, 이 옷조각들로 호기롭게 애착 이불 같은 걸 만들어 보겠다고 옷을 모아두었었다. 이것도 몇 조각 이어 붙이다가 정지상태다. 손 바느질이 쉽지만은 않은데, 작심삼일인 내가 이것 때문에 전기 미싱 같은 걸 샀다간 큰 낭비지 싶어 한쪽에 모아 두고 만다. 언젠가, 언젠가는 시간이 나겠지 싶었다. 



 무엇보다 브런치가, 시작은 해놓고 이어가기 어렵게만 느껴졌다. 육아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동시에 나는 오롯이 나라는 사람의 무언가를 배설하고 싶기도 했다. 엄마인 나와 엄마가 되기 전의 나, 후자는 이제 결코 돌아갈 수 없음에도 내 안에서는 이놈들이 자꾸만 싸워대고 있다. 

 

 이유식을 하루 세끼씩 먹기 시작한 작은 인간에게는 균형 있는 식사가 중요하다. 식단 짜는 일은 보통이 아니었다. 매끼 같은 것만 먹일 수는 없으므로. 어떤 날은 계란으로 오믈렛도 해줘 보고, 같은 소고기도 삶아서 혹은 구워서, 아니면 완자처럼 빚어 쪄내어서 줘본다. 아직은 크게 알러지 반응이 없기에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 같지만, 딸아이의 식사를 다 챙겨주다보면 어른은 라면으로 때우는 일이 다반사이다. -며칠 전 딸기를 처음 먹은 딸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바람에 음식 알러지인가하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더랬습니다. 재확인이 필요하지만 아마 다른 이유였던 것으로 추정중이긴 합니다. 나중에 이유식과 음식 알러지에 대해 다루는 글을 쓸 기회가 있을겁니다. 아마도?-


 사실 몇 주 전 10월에 일어난 비극에 관해서 글을 썼다. 발행하지 않았다. 

 이태원에서 사고가 있었을 때, 나는 필연적으로 세월호에서 희생당한 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음을 가다듬고 브런치를 켜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내 글 쓰는 실력은 누군가를 위로하기엔 역시 역부족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공감한다는 그 상실은 그저 값싼 감정이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이 위로 같아 보이는 글도 누군가에겐 기만이 되지 않을까두려워 그만두었다. 





 내가 무슨 소릴 늘어놓는건가 싶으실게다. 그렇다. 나는 지금 왜 그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았는지, 최선을 다해 변명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나는 원래 작심이 삼일인 사람이니까, 그저 이것도 늘 그랬듯이 그냥 하다 말아버리려고 했는지 모른다. 

 글쓰기는 무슨 글쓰기인가 돈도 안 되는 재능낭비에 자기위안, 차라리 애 밥이나 더 정성을 쏟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절대 돌아갈 수 없는 출산 이전의 나는 과감히 져버리고 엄마 노릇이나 더 잘하자고 생각했다.

 매주 일요일 밤이 되면 괜히 쓰지도 않을 브런치를 뒤적거렸다. 이러다가 잊히겠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겠지, 아니지 내가 있었단 것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겠지, 나조차도.

 가끔은 서글펐고 딸아이 옆에서 잠자는 시간만 늘어갔다. 




 그러다가 브런치의 알람이 울렸다. 아마도 일정기간 글을 발행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뜨는 것이 분명한, '작가님 글이 보고 싶습니다.. 무려 60일 동안 못 보았네요' 하는.

 얼굴도 모르는 키다리 아저씨의 응원을 들은 것만 같았다. 그사이 야금야금 좋아요가 한두 개 늘어있었다. 역시 내가 쓴 글들은 작품이라기엔 초라했지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할까. 꾸준히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항상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었으니까. 

 작심이 삼일이면 어떠한가? 삼일에 한 번씩 계속해서 마음을 먹어볼까 생각이 들었다. 



 작아진 아기 옷으로 만들려던 애착 이불을 위한 재단을 방금 마쳤다. 바느질은 이사한 뒤에야, 이삿짐이 다 정리된 뒤에야 시작할 수 있겠지만... 다시 마음먹을 용기만 잃지 않는다면, 아직 내 삶은 끝나지 않았으므로 시작한 것들을 마무리할 기회는 남아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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