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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May 22. 2022

대자연의 섭리

노산, 초산 임신과 출산이야기


 엄마가 말했다. 아기를 낳으면 생리통이 많이 없어진다하더라고. 20년 전인 40대 초반에 이른 폐경을 맞았던 엄마는 매달 찾아오는 손님이 사라진 후 약간 터프해진 것 같다. 그때 엄마는 서글퍼 보였지만 20대의 나는 부럽기까지도 했다. 내가 지니고 태어난, 어디 써먹을데도 없었던, 이 지긋지긋한 자연의 섭리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또래들보다 조금 늦은 2차 성징을 맞았다. 운동을 꽤나 잘하던 친구 하나는 6학년이 되었을때 이미 초경을 지난지 오래인데다가 발육이 남달라 고등학생으로 보이기도 했다. 키도 크고 예쁘장한 친구였다. 그에 반해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그야말로 보통 어린이의 몸을 하고 있는데다가 2차성징의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아기때도 말도 빠르고 걷기도 빨리 걸었는데 키가 크질 않아 동네 사람들이 애가 바닥에 붙어 자박자박 잘도 걷는다며 신기해했다는데.

 85년생인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이른바 성교육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가정시간을 빌어 낙태의 잔인성에 대해 설파하는 동영상을 틀어주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나마도 남학생과 여학생을 분반시킨 채였다. 이미 성인의 모습을 한 우리는 학교에서 체계적인 척하는 성교육을 받기 이전에 다양한 매체들에 노출되었고, 우리는 친구들과 음담패설--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했던 농담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을 하기도 했고, 서로 잘못된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항간의 소문에는 이미 처녀총각딱지를 진작에 뗀 친구들도 있는 것 같았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초경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자가 생리를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고 한편으로 두려운 일인지 알지 못했기에 내심 부러웠다. 한번은 마르고 키가 작았던 친구와 둘이 목욕탕에 간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의 알몸을 보고 놀랬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는 없는 것들이 눈에 띄었다. 조심스레 생리를 하는지 물었었는데 너무 당연하게 그렇다해서 조금은 위축되었었다. 작은 녀석들 중에서도 아직까지 초경을 치르지 않은 건 나뿐인 것 같아서. 

 나는 초경을 중학교 2학년이 끝날 때쯤에야 시작했다. 외동딸을 무척 아꼈던 아빠가 엄마에게 소식을 전해듣고 매우 기뻐하며 장미꽃 한송이를 선물해줬던 생각이 난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부쩍 아빠와는 거리를 뒀던 시기라, 나는 그걸 떠들고 다닌 엄마에게도 볼멘소리를 했었다. 한번은 별생각 없이 팔을 포개 뒤통수에 얹고 누워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내 겨드랑이에 난 음모가 너무 신기했던 아빠가 큰소리로 웃었을 때는 방문을 닫고 들어가 울기도 했었다. 딸을 낳은 지금, 나는 그때 아빠가 내 성장을 얼마나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서 했던 행동인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때 나는 열다섯이었다. 


 나의 첫 생리에 대한 기억은 적어도 나에게는 무척 강렬했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면서 이사 온 경기도의 집은 방 두개에 작은 거실이 딸려있는 집다운 집이었고, 바로 옆에는 이성계가 다녀가며 이곳을 수도로 정하면 좋겠구나 했다던 기념비에 후투티인가 하는 새가 살고 있었다. 여름이면 녀석이 여기저기에 구멍을 내는 소리가 따악따악 들리곤 했었다. 거긴 시골이라 화장실만은 건물 외부에 있었다. 서울에선 빨간 불빛 때문에 야밤에 소변을 누기가 꺼려졌었는데. 현관을 나가 두어개 있는 계단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단층에 잠긴 문을 열어야 하는 화장실. 치매로 말년을 고생했던 외할머니의 고관절을 부러지게 만들었던 잔인한 구조의 화장실이었다. 

 나는 거기서 초경을 맞았다. 

 주변 친구들이 앞서가는 탓에 나는 그리 놀라지는 않았지만 용품을 갖추고 있는것도 아니어서 엉거주춤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속옷에 이렇게 저렇게 생리대를 장착하면 된다는 엄마의 설명도 외국어처럼 들렸던 나는 때때로 속옷 뒤로 새어 나오는 새빨간 액체때문에 옷을 빨고, 속옷도 빨고 해야 했다. 요즘에는 딸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아이의 2차 성징 이전에 여러 설명을 해줄 수 있는 키트같은게 있다고 하더라. 


 초경을 했다고 해서 매달 생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초경을 치른 뒤 6개월이 지나서야 정기적인 생리를 하는 아이도 있고, 초경 자체를 한달 이상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는 전자였다. 한달에 일주일 씩 생리대가 익숙해질만하면 몇개월을 거르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다시 실수가 생기기도 했다. 



 20대가 될 때까지 나는 생리통이 심한 편은 아니었다. 다만 또래들보다 늦은 탓에 모았다가하는 건지 유독 양이 많고 기간이 길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조교로 일하던 때쯤 1년정도 심각한 식이장애를 겪었었는데, 그 이후에는 기간도 짧아지고 양도 줄었지만 통증이 점점 심해졌던 것 같다. 생리전증후군도 있고, 배란통도 함께 겪는 편이어서 나에게 이 대자연의 섭리는 고통의 사이클이었다. 한달이면 멀쩡한 날이 열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생리가 끝난시점부터 열흘 정도는 평온하다. 그럼 어김없이 배란통이 시작된다. 생리통만큼 극심하지는 않지만 불쾌한 통증이 간헐적으로 아랫배를 괴롭힌다. 배란통이 끝나면 생리전증후군 때문에 극도로 예민하고 우울감을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억지로 모임을 만들어 괴로움을 잊으려고 발버둥을 쳐도 집에 가는 길에 감정이 바닥을 치면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싶을 때도 많다. 이걸 지나면 비로소 생리가 시작된다. 

 한두시간에 한번씩 누군가 자궁을 비틀어 짜는 통증, 내 자궁에 누가 포크라도 들고 들어간 건지 사방이 쑤신다. 평소에는 기껏해야 계란정도 크기라는 자궁은 생리중에 붓기도 해서 자몽만한 사이즈가 된다. 잘 입던 옷도 답답해 입지 못한다. 만약을 대비해 흰 옷은 입지 않는다. 하루에 몇 번씩 샤워를 해도 찝찝함이 가시지 않는 게으른 나의 부지런한 자궁은 일도 참 열심히했다. 

 그래도 20대의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병가를 내지는 않았다. 젊은 나의 몸은 이 모든 과정에도 체력이 남아돌아 다른 활동을 해낼 수 있었다. 앞자리가 바뀐 다음에는 쉽지 않았다. 이 몸을 이끌고 일을 할 바에는 하루 푹 쉬고 약간의 눈총을 받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때로 친구들에게 철 모르는 소리를 지껄였다. 아 임신하면 그래도 한 열달은 안하겠네. 생리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 애를 낳을 생각이 없는데 대체 이건 무슨 섭리냐고. 자궁을 흉보고 욕하고 28일마다 돌아오는 착실한 사이클에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임신을 하면 출산을 하기까지 열달간 생리는 없다. 모유수유를 하게 되면 길게는 1년까지도 월경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유수유를 하는 여성의 몸속에는 ‘프로락틴’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젖 분비 촉진을 위해 생성되는 이 호르몬은 생리와 관련이 있는 여포자극호르몬(FSH)과 성선분비자극호르몬(GnRH)의 작용을 방해해 배란과 생리에 영향을 미친다고합니다. 출처 https://www.smlounge.co.kr/best/article/22272-- 물론 월경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임신가능성이 0%라는 의미는 아니므로 주의해야 한다. 확실히 나도 출산후 한달 정도까지 생리'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리를 제외하고는 다했다. 피가 나왔고, 피가 섞인 분비물이 나왔고, 맑은 콧물 같은게 나왔고, 어떨 땐 물 같은게 나왔다. 팬티라이너로는 커버가 되지 않는 그 전보다 더 많은 생리대가 필요했다.

 출산을 하고나니 오로--출산 이후, 태아와 함께 부속물이 빠져나온 후 자궁강 내에 잔류하여 남아있는 혈탁액들이 자궁을 통하여 배출되는 것--가 나왔다. 제왕절개를 해 바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간호사는 회복을 위해 억지로라도 화장실에 가게하려고 출산한 다음 날 소변줄을 빼버렸다. 생전 처음보는 미드와이프에게 몸을 맡겨 첫번째 샤워를 할때도, 처음으로 소변을 볼 때도, 집에 와서도, 젖을 유축할 때마다, 아기를 안을 때마다 자궁이 수축해 핏덩어리를 뽑아냈다. 일반 생리대로도 소화시킬 수 없는 양이었다.

 몇주가 지나자 오로의 색이 점점 짙어져 갈빛이 돌고 양이 줄었다. 며칠 뒤 월경이 시작되었다. 빈혈은 덤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어릴때부터 들어왔던 속설은 내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그건.

 '출산을 하고나면 생리통이 줄어든다.'였다. 진통을 줄여보려고 피임약도 먹어보고,--이름이 피임약이지만 이 작은 호르몬 약은 많은 경우에서 산부인과적 불편감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비급여약물로 보험이 안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치료적 목적으로도 많이 쓰이는 이 약이 '피임약'이란 이름 때문에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다니 아이러니입니다.-- 심각하게 미레나 시술도 고려했었던 나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생리혈과 자궁내막이 빠져나가는 자궁경부의 입구는 출산 전인 경우 2~3mm 정도로 바늘구멍만 한 크기다. 이 좁은 구멍을 빠져나가기 위해 자궁내막은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을 분비해 자궁근육의 수축을 일으키는데, 이 과정에서 복통, 요통 등 생리통이 생기는 것. 출산 후에는 자궁경부의 입구가 조금 넓어지기 때문에 생리혈과 자궁내막의 배출이 원활해져 생리통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출처. https://www.smlounge.co.kr/best/article/22272) 역시 희망이 생겼다.


 제왕절개를 했기때문인가? 아니 나는 질 출산을 하지는 않았지만 유도분만이 뜻대로 되지 않아 수술을 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내 자궁경부는 충분히 늘어났다 줄어든 것일텐데? 아마도 아기머리가 그쪽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별 효과는 없는 모양이다. 아니면 수술후에 유착이 생긴 건 아닐까? 수술하고 5일동안 직접 배에다 유착 방지 주사도 꾸준히 맞았는데? 

 결과적으로 나의 생리통은 전혀 줄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양상을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약 한달 전 출산 후 첫 생리를 하고, 며칠 전 생리전 증후군과 동반되는 통증이 계속있다. 생리는 터지지 않았는데 아랫배가 기분나쁘게 아프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아침엔 나를 걱정해 계속 밤 당번을 서준 남편에게 또 짜증을 부렸다. 지금은 천사처럼 자고있는 아가는 이런사정을 알리 없으므로 오늘도 한시간 넘게 잠투정을 부렸다. 오늘만 봐달라고 그렇게 빌었건만, 내 상태와 관계없이 아가는 지금 쉬지 않고 자라야만 하므로. 십 몇 년 뒤면 내 딸이 나와 같은 고통을 겪을거라 생각하니 아들이었다면 좋았을 걸 싶다.--절대 아들의 삶은 더 수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여기서 싸우지 마세요.--


 출산을 했다고 해서 지난 20년간 매달 꾸준히 나를 괴롭히던 대자연의 섭리가 드라마틱하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20대의 내가 중얼거리며 불만을 토로했듯, 쓸모 없는 일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도 족히 십 몇 년은 더 남았을 이 대자연의 섭리가 작은 내 아가의 뿌리였다 생각하면 견뎌낼 만도 하다. 


 오늘 내 반평생 동안 열심히 일하고 있는 증거로써의 결과물을 기다리며.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의 자궁에게 안녕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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