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 초산 임신과 출산이야기
인간을 길러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나는 모두에게 이 모든 힘든 것은 가치가 있는 일이라 말할테지만, 나라는 개인의 개성을 얼마나 포기하고 단념해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여긴 두렵고 고통스러운 천국이다.
나는 갑자기 새로운 행성에 떨어졌고, 아이는 나와 같이 착륙했다.
오늘로 태어난지 70일째가 된 작은 생명체. 기특하게도 저녁 맘마를 먹고 나면 대여섯시간을 내리잔다. 아기가 잘때 엄마도 자야한다는데 나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어쨌든 생활하면 설거지가 나오고, 빨래도 해야하고, 성격 탓도 있지만 아기가 있는 집에 어쩐지 빨래던 설거지던 쌓아놓아서는 안되는 것 같아서.
아기는 배냇짓이 부쩍 줄었다. 그대신 가끔 내 얼굴을 샅샅이 뜯어보며 눈썹을 들썩거리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눈웃음을 친다. 물론 아직 표정을 따라하거나 하지는 못하고 본능적인 욕구를 채우려는 의지가 더 강해서 어떤 사인을 주었을 때 엄마가 알아채지 못하면 짜증을 내는 일이 더 잦지만, 분명히 저 녀석은 성장하고 있다.
소리내어 웃는 것은 아직은 연중행사다. 아기가 별 의미 없는 배냇짓을 할때는 가끔이라도 내가 제대로 해내고 있는 것 같아 위안이 되었는데, 그나마도 드물고 깨어있는 시간에 대부분 밥 달라고 울고 기저귀 갈라고 짜증내는 일이 대부분이니 내가 뭔가 잘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내게 남편이 말한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아기는 두달만에 키가 부쩍 컸다. 출산 전 초음파를 보고 나를 닮아 키가 작은 건 아닌지, 팔이 짧은 건 아닌지 무척 걱정했었는데 기우였다. 수유할 때 공중에 동동 떠있던 두 다리가 이제는 바닥에 닿는다. 기저귀 높이 때문에 편평한 곳에 누워서는 편안히 다리를 뻗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곧 옆으로도 누워 잘 수 있을 것 같다.
위장이 건강해지려면 오른쪽으로 기울여 재워야 한다는 글을 읽었다. 아직도 좀 의문이다. 내 기준에서 오른쪽인가? 아기 기준에서 오른쪽인가? 너무 반대인데? 일단 오늘밤은 바로누워 자자. --아무리 리서치를 해봐도 결론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기준으로 오른쪽인지 아시는 분?
얼마 전 손톱을 깎다가 아기가 다쳤다. 손톱도 부드럽고 살도 말랑말랑해서. 어쩐지 손톱 정리하는데 협조적이었기 때문에. 9개 손톱을 다듬고 가장 수월한 엄지 하나만을 남긴 상태라 나는 조금 자만했었는지 모른다. 손톱 대신 살이 집혀 작은 손의 더 작은 손가락에서 피가 한방울 났다. 미안해 어쩔 줄 모르며 약을 발라준다. 어른도 손에 까스레기를 잘못 뜯다가 외마디 비명이 나는 법인데 작은 녀석은 얼마나 아팠을까 싶어 마음이 동요했다. 남편은 내 염려가 전염된다며 평정심을 유지해보라고 얘기했다. 태연한 척을 해본다. 이후에도 아기는 배가고프다고 울었고, 기저귀가 불편하다고 울었고, 안아달라고 울었다. 그때마다 나는 혹시 상처가 아파 우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아기는 빨리 크는만큼 낫기도 빨리 나았다. 지금은 조금 빨갛게 되었지만 내일쯤이면 다시 뽀얀 살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트라우마 따위는 없다. 얼굴이 긁히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오늘도 손톱 정리를 해야한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지 세달이 되어간다. 그동안은 생각해 둔 아이디어도 있었고, 쟁여놓은 글들도 있어서 완벽하진 않을지라도 잘 다듬어 올려낼 수 있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세이브들은 아직 초고이기도 하고 조심스러운 이야기들도 포함되어 있어 업로드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아기가 태어나고나니 신랑이 출근하면 고작 화장실도 마음편히 못 가는게 현실이다. 식사는 매번 간장계란밥이었었는데, 요즘은 참치비빔밥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그렇지만 잠깐 더 틈이나면 나도 자야한다. 나도 인간이다.
지지난주 공지를 올리고 브런치 글을 한주 스킵했다. 억지로 쓰려니 무슨 말을 하려던지 횡설수설 도저히 읽어줄 수가 없었다. 저장해 두었던 글 몇편은 예민한 주제라 확신이 필요했다. 그리고 먼저 허락을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영영 서랍속에나 저장해두고 만족해야 하는지도.
새 글을 쓰려는데 시간이 나지 않았다. 새창을 열면 아기가 운다. 달래고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면 거실은 다시 난장판이어서 치워야 한다. 그러고나니 아기 빨래가 쌓여있다. 자는 틈을 타 빨래를 하고보니 다시 밥을 먹일 시간이다. 몇시간 후에 남편이 퇴근하자 나도 시간이 났지만 드디어 어른밥을 해먹고 나니 이제 자고 싶다. 나름대로는 큰 맘을 먹고 시작한 브런치였는데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했다.
출근하는 남편이 부러웠다. 조금 어지러져 있어도 자신이 퇴근후에 하면되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그는 말했지만, 나의 욕심이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밖에서 갖은 자극을 받은 그에게 덤을 얹어주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동시에 알아서 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나는 욕심이 많은 여자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 결국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공지를 썼다. 이번주엔 글이 없다고. 내가 지금 맞닥뜨린 상황과 싸우다 져 버렸다고. 서글픈 마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앞으로도 왕왕 벌어질지 모르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로 한다. 적어도 스스로 자책하며 상처받지는 않기로 했다.
한국과는 일정이 다른지 아가는 출산 직후 몇가지 접종을 맞은 후, 두달이 지난 엊그제 처음 같은 두번째 접종을 맞았다.
로타바이러스라는 장염을 예방하는 것은 먹는 접종약이었다. 간호사인지 미드와이프인지 하는 여자가 아기 턱을 자극하며 작은 주머니를 연신 짜 입에 넣는다. 흘러내리는 약을 삼키게 하기 위해서였다. 무슨 이런 맛도 없는 걸 먹이냐는 듯한 아기의 표정이 일품이다. 침 몇 번 흘리더니 곧 평온을 찾은 아가는 다음에 무슨일이 일어날는지 알리없다.
무지한 엄마는 뭔지도 모르겠는 접종주사를 아가는 양 허벅지에 한방씩 맞는다. 아기 손톱보다도 부피가 클 듯한 주사 바늘이 뽀얀 다리에 놓인다. 태어날 때 그랬듯이 내 아가는 빼앰하고 울더니 다시 평온해졌다. 아마도 아직 다른 다리에 놓을 주사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때문인 것 같다. 약간 배신감이 들었는지 두번째에는 조금 더 길게 울었다.
내 품에 안겨 뭐라뭐라 웅얼한다. 아줌마가 다리를 아프게 했더라고 일러바치는 듯했다. 엄마 아까 그거 정말 맛이 없었어요하는 듯한 작은 소리.
태어난 후 줄곧 안방과 거실을 오가던 아기는 오늘 처음으로 바깥에 부는 바람도 맞아보았고, 직사광선이 얼마나 눈부신지도 경험했다. 집안의 형광등은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똑바로 쳐다보는 녀석이, 태양광 아래에서는 눈을 뜨지도 못했다. 낯설어 하지만 싫지 않은 얼굴에 초보 엄마는 가슴을 쓸어 내린다. 아 이제 저 녀석과 작은 산책 정도는 할수도 있겠구나. 나도 집 밖을 나가볼 수 있겠구나.
접종 후 하루동안 발열은 없었다. 시댁이니 친정이니 온갖분들께 기도좀 해달라 청탁했었는데 다행이다. 로타바이러스 접종이 심각한 장염 증세를 보이는 로타바이러스에 대한 예방을 위한 거라더니, 아기는 설사는 없지만 구토를 조금 했다. 아프지 않기위해서 조금 아프게 만드는 예방이라니 아이러니하다. 그래도 아직은 쉬이 넘어가고 있는 첫 예방접종. 수고한 아기에게도, 용감한 나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접종때문인지 며칠간 아가는 평소보다 조금 더 토했다. 지난밤에는 무슨 일이라도 난 것처럼 몸을 뒤틀며 찢어지는 소리로 울었다. 나는 빌었다. 그리고 울었다. 내 몸이 곱절로 아파도 좋으니 아기는 괜찮아지게 해달라고. 아프지 말고 좋은 꿈을 꾸고 기분좋게 일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러자 천사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야 아기도 나도 성장하는 것이니 받아들이라고. 견뎌내보라한다.
물론 잘 알고 있다. 아기는 이제 세상에 나왔으니 잔병치레도 할 것이고, 행복한 일만 겪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실패도 배우고, 아픔도 이겨내고, 상처도 흉터도 생길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날개를 더 단단히 만들어 어른으로 커 갈 것이다. 나는 그것들을 피해가게 해주는 대신 함께 뚫고 지나가는 엄마가 되어야 할 게다.
그래도 오늘은 마음을 다해 빌어본다. 우리 아기 꿈결에 꽃들만 가득하게 해달라고.
아기가 잠을 잔다. 뭣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었는지 새카맣게 잊어버린다. 작은 얼굴이 가끔 찡그리고 가끔 미소 지으며 평온한 듯 하고 있다. 손가락은 쫙펴고 가끔 조물조물한다. 먹는꿈을 꾸는지 연신 오물거리는 이도 나지 않은 작은 합죽이 입. 버둥거리다 반쯤 벗겨진 양말에 자꾸 손이 가려고 한다. 뽀얀 볼살이 한입 물어보겠냐하고 자꾸 묻는다. 아기 잠을 방해하지 않기위해 겨우 유혹을 뿌리친다.
작은 녀석은 어제부터 유산균을 먹기 시작했다. 자연분만해서 모유를 먹이면 자연스레 생겨나는거라고 한다. 나는 분유를 주기로 결정한 일이 정말 잘했노라 생각했지만 가끔 죄책감에 발을 동동 구른다. 우유를 잘 먹지 못하는 엄마아빠를 닮았는지 배 아파하는 통에 소화가 더 잘 된다던 모유 생각이 가끔난다. 아는 이는 똥기저귀가 적게 나오는 분유먹는 아기를 부럽다 말하기도 했지만 나는 분유가 넘치도록 콸콸 나온다던 그이가 부러웠다.
출산과 죄책감은 아마도 세트인 모양이다.
임신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지금이 편하다'였다. 이제는 솔직히 인정하겠다.
시간이 없다. 떡볶이를 먹고 싶지만 혼자 아기를 볼 땐 할 시간이 없고, 와인도 먹을수 있지만 반병이상 먹었다가는 아기를 보기가 힘들고, 내가 사랑하는 공포물은 아기 옆에서 보기 적절치 않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대체 언제 볼 것인가. 이래서 임신중이 편하다는 소리가 나오는구나 했다. 남편도 잠이 많은 편이고, 나는 임신기간동안 잠이 너무 늘어난 편이라 세시간씩 끊어 자는 건 영 피로가 풀리지를 않는다.
둘이서 전부 해 내야 하고 도움주실 수 있는 분들은 죄다 한국에 있어 집안일도 둘이 분담해야 한다. 아이를 갖기 전에는 집에서 아기 보는 여자가 일 다녀온 남편에게 밥도 해주고 당연히 집안일도 전담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지껄이고 다녔었다. 역시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편이 좋다. 당분간 사정이 되어 남편이 일주일에 3~4일 정도만 출근하고 남은 시간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나눠해주고 있지만 어떤 날은 더 해줬음 한다. 나는 역시 욕심이 많은 여자다.
아기를 임신한 동안 내가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지금이 편하다'였다. 초기부터 안정기라 불리는 5개월차에 접어들기까지 응급실을 제 집 드나들 듯 드나들었던 나는, 아기가 나와 내 눈 앞에서 첫울음을 터뜨리기까지 불안과 함께 살아야 했다. 나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으니 무사히만 나와달라하는게 기도의 전부였다.
비록 나는 지금 먹고 싶은 걸 해 먹을 시간도 없고, 음주를 양껏 했다가는 아기 돌보기가 위험하고, 잠도 실컷 자지 못하지만 절대 애를 뱃속에 다시 넣고 싶지는 않다. 비록 애기를 달래려 손목이, 어깨가, 무릎이 아작이 난 것 같지만, 저녀석 울음소리에 살짝 이명이 오지만, 그리고 공포는 사라지지 않아 잠깐 선잠에도 악몽을 꿔버리지만 괜찮다. 아기가 내 눈앞에서 힘차게 울어대는 지금을, 나는 자유와 맞바꾸지 않겠다.
나는 가끔 아 이건 대체 언제 끝나는 것인가 생각한다.
인간을 기르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나는 모두에게 이 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 말할테지만 아무 결정도 하지 않은 채 십년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치솟는 순간도 있다.
아기가 웃는다. 마음에 품은 온갓 잡생각이 사라지는 투명한 행복이 내 앞에 웃음짓는다. 나는 내 인생에게는 조금 잔인하게도 너와 함께 길을 걷기로 마음먹어본다. 내일은 조금 더 힘들더라도 그보다 더 행복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