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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Jul 17. 2022

기록_2

노산, 초산 임신과 출산 이야기




 이제 아가는 4개월을 훌쩍 넘겼다. 월요일이 시작하자마자 태어난 아기는 주수를 헤아리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보이자 노산인 엄마는 매일 핸드폰에 입력해 둔 디데이 어플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눈 깜짝할 새 커버린 아기는 마치 오늘 돌쟁이가 된 것 마냥 굴 때도 있고, 어떤 날은 다시 태어난 첫날로 돌아간 것처럼 굴 때도 있다. 이제는 자리를 잡은 것 같이 하루 종일 잘 놀고 잘 자고 토하지도 않다가도 어느 날은 하루 종일 먹은 것을 게워낼 때도 있다.

 

 인간의 몸에는 약 50여 개의 괄약근이 있다. 이 중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엉덩이 쪽의 괄약근도 있지만 식도의 상부와 하부에도 각각 하나씩 있다. 아기들의 위는 아직 미성숙해서 이 식도의 괄약근이 완벽하게 조여지지 않는다. 음식물을 입에 넣으면 위로 넘어가고 뚜껑 역할을 해주는 괄약근이 닫혀야만 하는 것인데, 아기들은 이 괄약근을 조이는 힘이 온전하지 않다. 게다가 섭취하는 음식에 무게가 있어 위 바닥에 가라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조금이라도 몸의 위치가 바뀌거나 배가 약간만 눌려도 출렁거리던 우유를 바로 뱉어내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토한다기 보다는 게워내는것에 가깝고 열이 나는 등 다른 이상이 없다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단순히 게우는 것에 대해서는 아기를 토닥토닥 안심시키고 의연하게 닦아주면 그만이다.

 문제는 가끔 발생하는 순두부 같은 토나, 울컥하며 나오는 토는 아직도 적응하기 어렵다. 입안을, 끓인물을 적신 수건으로 닦아주고, 버려진 수건과 옷을 애벌빨래 해야한다. 애벌 세탁하지 않으면, 다른 세탁물에 묻어 온 옷과 수건에서 우유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세탁하기 전 반드시 토사물을 헹궈내야 한다.


 가끔은 잔뜩 쌓인 수건과 옷가지를 보며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잘못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더 답답한, 느닷없이 생겨나는 숙제같은.





 나는 오전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쉽기만 한 일은 아니다.

 나는 셰프로 일하던 시절에도 주로 점심, 저녁 서비스를 하였기 때문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에 몸이 배어 있다. 임신기간 중에도 근육통이 심해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하고 낮잠으로 부족한 수면을 채웠다. 아기는 이제 먹이고 안아주고 재우기만 하면 되었던 신생아기와는 다르다. 아기와 ‘놀아주는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한다. 잠이 많은 편은 아닌 나도 육아는 피로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전 시간을 좋아하게 된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기는 보통 아침 7~9시 사이 일어난다. 다른 시간에는 배가 고프면 집이 떠나가라 우는 녀석이 아침에는 공복이 길어 배가 고플텐데도 울지 않는다. 덮어준 수건을 만지작만지작거리며 블라인드 사이로 세어 들어오는 햇빛이 일렁이는 걸 바라보고 있다. 나는 아기의 시야를 피해 사랑스런 모습을 바라보다가 아침인사를 건네며 아기의 눈을 보고 활짝 웃는다. 아기의 오동통한 볼살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는 보조개가 방긋하며 웃는다. '엄마다!' 하는 듯하다. '엄마가 기저귀 갈고, 아침 줄게. 잠시만 기다려.' 하면, 내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 조용하던 아가는 기저귀를 가는 내내 뭐라 웅얼웅얼한다. 아마도 밤새 꾼 멋진 꿈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이리라.

 배변습관이 좋은 아가는 주로 아침을 먹으면 바로 똥을 싼다. 아기의 대변은 성인보다는 묽은 것이 정상이다. 노란 황금빛을 띠면 가장 좋겠지만 약간 초록 빛을 뗘도 문제가 없다. 다만 혈변을 보거나, 태변이 아닌데도 검은색이라면 병원에 데려가 보는 것이 좋다.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겠지만 아기가 변을 보면  지은 밥냄새 같은  솔솔 올라온다. 아마도 나는 걱정이 된다고 해도 아기 대변을 찍어 먹어 보는 대신, 병원에 데려갈테지만 자식이 이쁘니 똥도 이쁘더라는 말을, 지금은 이해한다. 그리고 동의한다. 익힌 고소한 쌀냄새를 폴폴 풍기며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나를 닮은 작은 인간.


 아기와 함께 맞는 아침은 피로하다. 그리고 아기는 안다. 엄마의 피로를 안다. 그래서 말갛게 웃어보인다. 그게 이 피곤을 감싸 안아 줄 수 있다는 걸, 역시 아기는 안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에게 주변의 환경은 전부 신기한 것들 투성이다. 그리고 이 것은 모두 아기에겐 자극이 된다. 적당한 자극은 아기들의 발달과 성장에 꼭 필요하지만 자극이 너무 많으면 아기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고 한다.


 최근 아기는 지금까지 신기해하면 곧 잘 보던 움직이는 모빌을 약간 지루해 하기 시작했다. 대신 국민 육아 용품 중 하나라고 불리는 아기체육관에서 열심히 논다. 아기체육관은 피아노처럼 생긴 버튼을 발로 뻥뻥차며 연주를 할 수 있고 동시에 공중에 매달린 모빌을 만져볼 수 있게 구성된 아기들 장난감이다. 아기가 이 놀잇감으로 장난을 칠 때 '오구오구' 받아주고, '아이구 우리딸 모챠르트가 될 거예요?' 하며 맞장구를 쳐주면 더 신이나서 뚱땅뚱땅한다. 하지만 여기 오래 눕혀 놓을 수만은 없다. 아기는 아직 뒤통수가 납작이인데, 여기 누워만 있는다면 더 납작해 질 수도 있고, 다리 근육만 발달하게 둘수는 없기에 뒤집어 엎어 놓고 터미타임을 하며 책도 읽어준다.

 요즘엔 이녀석이 자꾸 일어서려는 욕심을 부린다. 아직 스스로 앉지도 못하기 때문에 혼자 일어서려는 것은 아니고, 일으키고 붙잡아 달라고 떼를 쓴다. 아기 인간의 몸은 대근육이 발달하는 순서가 있기 때문에 아직 힘이 허리까지 내려오지 않은 아기는 자주 세우는 게 좋지 않다고 한다. 매번 정보를 찾아보며 고민과 고뇌를 반복하지만 결국, '아기가 행복한게 최고가 아닌가'로 귀결되는 나는 줏대가 없는 편이다. 


 나는 아직  지역에 편하게 연락하고 만날 친구가 없다. 아기와 주양육자의 애착관계가 중요하다지만, 적절한 시기의 아기에게는 엄마 외에도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해야 한다고 한다. 때때로 아기와 시장을 보러가거나 집에 있는 것들로는 더이상 놀아주기 어려울   둘이 산책도 하지만, 한참 활발하던 아기의 옹알이가 조금 줄어든 것이  탓인 것만 같다. 나와만 시간을 보내 눈빛만으로 원하는 것들이 척척 해결되니 말수가 적어질  같다. 내가 쓰는 말만 쓰게 되는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새로운 자극을 줄까 싶어서 며칠 전 혼자 애기를 데리고 나갔다. 그래봤자 남편이 일하는 가게였지만. 세상 태연한 엄마를 가장하며 음식도 주문하고 흥얼거리며 식사를 하는 것도 잠시, 큰 노랫소리와 옆테이블의 떠드는 소리, 너무 밝은 조명 때문에 아기는 긴장한걸까. 자지러지게 우는 통에 일하던 남편도 브레이크를 걸고 애를 안아 밖으로 나갔다. 남은 음식을 먹는둥 마는둥 하던 나도 따라나섰다. 겨우 달래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기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미안해하는듯, 그 순간 너무 무서워 어쩔 수 없었다는 듯한 눈빛. 나도 마음속으로 울었다. 가엽고 착한 아기가 혹여라도 무서운 꿈을 꿀까봐. 괜찮다며 우리 둘을 달래는 남편이 아니었다면 다시는 산책따위 하지 못했을 겁쟁이 모녀는 그래도 좋은 자극을 위해 내일쯤은 용기를 내볼까한다.





 나와 내 남편은 이곳 호주 영주권자다. 호주는 영주권자의 아기가 호주 내에서 출생하면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한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국적을 선택해야 하지만, 이변이 없는 한 아기는 만 22세가 될 때까지는 이중국적자이다. 여러가지 번거로운 일로 아기는 호주에서만 출생신고가 되어 있고, 한국에는 아직이다.--영사관이 없어 모든 서류를 우편으로 접수하고 있는데, 서류 하나가 실수가 나면 다시보내고, 여긴 우편이 그리 빠르지도 않고, 그렇다보니 벌써 한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기를 데리고 한국에 여행을 가려면 우선, 호주 여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것도 간단치는 않은게, 출산 당시 엄마 아빠가 시민권자가 아닌 경우, 여권을 신청하려면 시민권 증서라는 것을 받아야만 한다. 비용도 만만찮고, 아마도 아기가 출생했을 때부터 잘 알고 있고 동거인이 아닌 시민권자의 보증도 있어야 되는 듯 했다. 어마무시하게 비싼 종잇조각을 발부받은 뒤에는 여권용사진을 찍어야 한다. 호주 여권은 한국여권과 여권 규격 사이즈가 다르고 조금 더 까다로운 듯했다. 내가 지난번 내 여권을 신청할 때, 실수로 호주 규격대로 인화된 사진을 받았었는데, 얼굴의 비율이 훨씬 크고 몸통이 거의 나오지 않아 옷을 잘못입으면 벗은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직 아기 여권 사진은 촬영 전이지만, 가만히 있는걸 어려워하는 아기 사진은 어떻게 찍는건가? 도통 모르겠다. 

 이외에도 여권신청서등을 작성하고 우체국에 방문하면 약 6주 정도 후에 우편으로 여권을 받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글로는 열댓줄 남짓한 이 과정을 우리 부부는 아직 한 줄도 못했다고 한다. 





 출산을 한 뒤 깨달은 바가 있다. 나의 삶은 임신과 출산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친구들이나 사촌들과 나중에 한국에 방문하면 같이 하고 싶은 일들을 리스트로 잔뜩 만들어 두었고, 나름 나도 기대하는 중이지만. 나는 사실 자신이 없다.


 우리집에는 세상에서 애를 제일 잘보는 엄마와 아빠가 계시지만,--절대 못 믿는거 아닙니다.-- 아기를 맡기고 뭔가 다른걸 할 자신이 없다. 아기가 낯을 가릴까, 오랫동안 울까하는 걱정을 하는게 아니다. 놀랍게도 나는 내 걱정을 하는거다. 과연 나는 아기없이 하룻밤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분리불안은 애나 개한테만 생기는게 아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가 하는 웃자고 던진 질문에 나는 '대신 모든 기억을 지워줘야 할 겁니다'라고 했다.


  너를 품은, 너를 안은, 너의 보드라운 이마를 쓰다듬는 나는 너보다 훨씬 더 많은 연습을 해야 너와 떨어질 수 있겠구나 싶다. 오늘도 잠들기 전 아기 목덜미에서 나는 고소한 아기 냄새로 행복을 충전하고, 내일 아침 갓 지은 밥냄새로 하루를 열테다. 그걸 열심히 쌓아 세상에 나갈 너의 길을 단단하게 만들어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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