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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Jul 03. 2022

감기와 나와 그리고 아기

노산, 초산 임신과 출산이야기



 감기에 걸려버렸습니다.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외부인과 접촉이 많은 편이 아닌데도... 개도 잘 안 걸린다는 호주 감기에 걸려버렸어요. 이곳은 맥카이라는 퀸즐랜드 바닷가 지역으로 겨울에 아무리 추워져도 영상 10도 이하로는 잘 내려가지 않아요. 게다가 아기가 혹시 추워할까 해서 온습도계로 방을 체크하고, 아는 분이 준 라디에이터도 따뜻한 오후를 제외하곤 빵빵하게 틀어놓고 있는 중이라 감기 걱정은 하지 않았어요. 

 감기라니... 며칠 전 춥게 입은 채로 밖에서 아침을 먹은 탓이었을까요? 남편이 자기희생해가며 외투도 벗어줬는데... 상대적으로 면역이 강한 남편은 피곤이 몰려와 얼마 전 얼굴이 죄다 뒤집어지고, 평생 없던 쌍꺼풀이 생겼더랍니다. 면역이 약한 저는 몸살, 감기로 고생 중이네요.


 부모의 사랑이란 얼마나 큰 건지, 제가 아픈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 치부합니다. 남편은 혹시 문제가 될까 아기가 자기 얼굴을 만지지 못하게 했고, 저는 아기 발만 만지작거리고 있어요. 코로나 때문에 마련해뒀던 마스크가 이럴 때는 유용하네요. 그나마 마스크를 낀 채로는 아기 맘마라도 먹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침대에서 편히 쉬고자 아기 짐을 죄다 안방으로 가지고 왔어요. 원래 낮 동안은 제일 긴 낮잠시간을 빼고는 거실에서 생활하는 아기가 어리둥절해합니다. 한데 문제는 기침소리네요. 기운이 없으니 잘 놀아줄 수가 없어서 종일 애를 재울 요량으로 토닥토닥해주고 눕혔는데, 제가 계속 기침을 합니다. 콧물을 훌쩍훌쩍합니다. 다른 소음에는 별 탈 없이 자는 아기도 신경이 쓰이는지 계속 잠에서 깨네요. 결국 침대는 맛만 살짝 보고 거실에 나왔습니다.

 아주 잠깐, 아파도 쉬지 못하는 부모의 삶이 조금은 서글픕디다. 



 아기는 이제 120일, 네 달째가 되었어요. 외마디 소리를 내며 뱃속에서 나와 꼬물거리던 아기는 비만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로 몸무게도 퍽 늘었습니다. 8킬로그램이라니 무겁습니다. 엄마 뱃속이 너무 작았던지 아기가 나왔을 때 발목이 안쪽으로 휘어 있어 무척이나 걱정을 했었는데, 지난주 정기검진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스트레칭도 열심히 시키고 마사지도 자주 해 준 보람이 있더군요. 대신 눕혀 놓고 스트레칭에 매진하는 동안 아기 뒤통수가 납작이가 되어 버렸어요. 저도 남편도 뒷머리가 짱구이기 때문에, 게다가 두상은 유전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고 해서 걱정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머리 모양을 판단하는 데에 두 가지 증상이 있는데, 두상이 비틀어져 안면 기형도 초래할 수 있는 사두증과 뒤통수가 납작한 단두증이 그것입니다. 다행인지 사두 증세는 없는 듯하고, 다만 단두증에 옆짱구가 추가되었습니다. 본인 뒤통수가 남부럽지 않게 납작하다는 친구가, 사는데 전혀 문제없다 했으니 교정용 헬멧을 씌우는 번거로움은 아기가 피해 갈 수 있도록 할 겁니다. 그래도 잘 때도 열심히 돌려주고 깨어 있을 때는 엎어주고 노력해야겠지요. 물론 옆으로 돌려놓는다고 가만히 있을 만큼, 그 정도로 순한 맛 아기는 아니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봐 주려 합니다. 


 생후 6개월까지 아기들은 엄마 몸에서 받아 나온 면역력이 있기에 감기도 잘 안 걸리고, 다른 잔병치레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걱정은 되네요. 과연 아기에게 나눠줄 면역이 있기는 했었던건지..

 대체로 늘 잘먹고 잘싸고 잘놀며 잘자는 아기지만, 어쩌다 한 번 먹은 걸 게워내고 토하는 날이면 초보 엄마는 종일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혹시 나의 건강치 않은 위장을 닮은 건 아닌가 해서. 아기토가 잔뜩 묻은 빨래더미를 보면서 스트레스도 받지만 죄가 없는 작은 생명체에게는 화가 나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앞서요. 

 오늘도 빌고 또 빕니다. 나는 좀 아파도 좋으니 너는 건강하고 기분좋은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구나 하고요. 그리고 한 편으로는 강한 마음도 먹어 봅니다. 혹시라도 감기가 옮으면 콧물도 빼주고, 약도 먹여주마. 감기는 고작해야 일주일이란다라면서요. 결국 아기는 저녁에 재채기도 하고 기침 비스무리한 것도 하기에 감기약을 조금, 아주 조금 먹였습니다. 안전하니 생후 한 달 이후부터는 먹여도 된다고 나와있을건데도 초보 겁쟁이 엄마는 흔치 않다는 부작용부터 점검합니다. 



 저 때문에 다른 직원들보다 하루 덜 일하는 남편에게, 오늘 염치없게도 하루 더 쉴 수는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남편은 아마 상황이 되지 않아 누구도 잘못이 없는 걸 텐데도 제게 미안하다 합니다. 알면서도 투정 부리는 저에게 약도 챙겨주고, 밥도 챙겨주네요. 누가 남편은 남의편이라 했을까요. 아무래도 저 사람은 내편인가 봅니다. 괜히 화내지 말아야겠어요. 남들이 뭐라든 우린 한 팀이니까요. 몸이 조금 무겁지만 카레를 끓여봅니다. 퇴근을 기다려 데워줄 수 있을까요? 



 우리 부부는 출산 후 반 강제 각방 신세예요. 둘 중 하나가 아기와 자며 밤새 아기를 돌보면 다른 한 사람이라도 푹 잘 수 있으니 최선이에요. 오늘처럼 아파지기 전, 전조증상이 있었습니다. 이틀 전인가 가위에 눌렸어요. 꿈결에 '깨워줘, 깨워줘. 도와줘, 도와줘.' 하며 웅얼웅얼했나 봅니다. 제가 끙끙대는 소리에 아기가 울었지만 덕분에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잠깐 동안 우리의 최선이 원망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친구들은 죄다 시드니니 한국이니 먼 곳에 있고, 부모님도 한국에 계시니 가끔은 우울한 마음이 치솟을 때가 있어요. 바쁜 아침을 보낸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아기와 저뿐입니다. 이 순간이 외롭다고 한다면 아기가 서운할까요? 애써 웃음지어 보이는 엄마의 얼굴 뒤에 그늘이 있다는 걸 아기는 모르게 해보려 안간힘을 씁니다. 


 오후엔 친구와 통화를 합니다.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나를 염려해주며 내 우울을 나누어 가져가 주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아직, 아무도 가두지 않은 넓고 조용한 감옥에 갇힌 나를 가끔은 들여다봐야만 하지만, 오늘도 웃으며 아기 저녁을 먹인 후 따스한 말로 단잠에 들게 해 줄 거예요. 그리고 성공. 



 저장본도 있고, 조금만 손보면 되지만 오늘은 주저리주저리 하소연하고 싶었습니다. 저처럼 감기나 기타 등등 잔병 따위로 고생하시는 분들, 그래도 아프기만 할 수는 없는 부모의 삶을 사시는 분들, 아픈 배우자와 아기를 두고 일을 나가 마음 한켠이 무거워지신 분들. 오늘 모두 힘내세요.

 우리 모두 내일은 더 건강해지기로 약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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