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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Aug 07. 2022

이유식, 어려워요?

노산, 초산 임신과 출산이야기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이제 아기는 만으로 150일이 넘었어요. 뚱땅거리며 겨우겨우이긴 하지만 정말 수고했다... 나와 남편도 그리고 누구보다 아가가. 그리고 이제 갓 이유식을 시작했습니다. 짝짝짝.


 분유수유아는 4개월부터 이유식을 시작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최근 세계적으로 모유든 분유든 모두 6개월에 시작하는 것이 맞다는 글을 보았어요. 초보엄마는 늘 그렇듯이 얇은 귀를 팔락거리며 고민하다가 중간행을 택했지요. 무엇보다 제가 눈 앞에서 주스 같은 걸 들이켜거나 하면 엄청 신기해하면서 침을 질질 흘렸거든요. 혼자 맛좋은 걸 먹으려니 미안하기도 하고, 호주 시골에서는 구할 수 없는 '떡뻥'을, 한국의 막내 고모가 보내주신지 시간이 조금 흘렀고, 아기가 과자를 쫩쫩 먹는 걸 보고 싶은 욕구를 버릴 수가 없었어요. 아무래도 과자를 먹으려면 먹는 연습이 선행되어야 하겠죠??




 초기 이유식을 할 때는 물 열 배에 희석해 끓인 쌀미음을 시작으로 삼사일에 한 번 새로운 재료를 추가해 먹여보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처음 며칠은 알러지 반응이 가장 적은 쌀미음, 그다음 3일은 애호박을 더한 쌀미음, 그다음 3일은 양배추를 넣은 쌀미음 등등으로 부재료를 바꾸어가며, 아기가 선호하는 식품을 알아내고, 무엇보다 알러지가 있는 식품을 확인하기 위한 거라더군요. 새 재료를 경험하게 할 때는, 나머지 식재료는 모두 알러지 확인이 끝난 음식이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다고 해요. 


 또한, 아기는 생후 6개월 즈음해서 모체에게 받은 철분이 떨어져 빈혈이 올 수 있으므로 소고기 제공도 시작되어야 한답니다. 단백질은 아기에게 부담이 적은 소고기 안심을 시작으로 닭가슴살, 기름이 적은 돼지고기 부위의 순서가 좋고, 돼지고기 이전에 부드러운 연어나 갈치 같은 생선도 먹어보게 하래요. 

 보통 초기, 중기, 후기 이유식을 가늠하는 것은 식재료가 얼마나 잘게 제공되는 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요즘에는 아기가 섭취를 잘하는 경우 식재료의 입자를 가능하면 빠르게 굵게 만들어 주는 편이 좋다고도 합니다. 씹는 연습을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거지요. 그리고 복숭아, 계란 흰자, 견과류, 새우 등 알러지 발생이 빈번한 것은 후기 이유식으로 넘어간 뒤 12개월 이전에 경험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알러지 예방에 더 좋다더군요. 7개월 이전에 소량의 밀가루를 미음에 섞어 먹이는 걸 권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래요. 




 초보 엄마에게 지금 가장 두렵게 느껴지는 것은 중기 이유식입니다. 초기 이유식은 아기가 음식을 먹을 연습을 할 수 있도록 간식 수준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처음이라는 긴장을 풀면 오히려 재밌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중기에는 아기 열량은 채워줘야 하므로 분유는 분유대로 주면서 양을 줄이고 이유식을 늘려가야 해서 최소 하루 두 번은 먹여줘야 한대요. 점차 어른과 비슷한 음식을 하루 세끼 먹는 것임을 알려주는 본격적인 단계인거죠. 말인즉슨 아침에 눈뜨면 분유 타고, 트림시키면 이유식 준비하고, 그걸 먹이고 치운 뒤, 잠시 후엔 다시 분유 주고, 또 이유식 준비해서 먹이고, 치우고, 분유 주고. 어랏? --이유식을 시작하면 분유를 줄 때 설거지옥이라고 말했던 것이, 그 땐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군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냄비, 소분트레이, 이유식 보관 통, 숟가락, 이유식 그릇, 턱받이, 아기 옷... 더불어 먹은 곳을 닦고 치우고... 이유식을 한다해도 꾸준히 생기는 젖병은 덤. 당신은 무수리가 됩니다.-- 그래도 그 땐 제대로 앉아 받아먹을 수 있을테니 조금 더 수월해지는 면도 있는 걸까요?

 사실 우리 아기는 현재 달래주는 것이 통하지 않는 가끔을 제외하면 밤중수유도 거의 하지 않고,--많으면 주에 1~2회, 그게 오늘.-- 하루에 네 번 정도만 양껏 먹고 있습니다.--네. 양껏. 매우 양껏.-- 네 알아요. 효녀죠. 그럼에도 중간에 긴 낮잠을 제외하고는 집안일에 치여 어떤 날은 애기랑 잘 놀아주지도 못해요. 혹자는 엄마가 엄마의 일을 하는 것을 아기에게 보여주는 것 역시 교육이자 육아라고 하지만, 하루를 통틀어 깨어 있는 시간은 네다섯시간 뿐인데, 못 놀아주는 게 가끔은 미안하고 죄책감이 느껴질 때도 있어요. 말씀드렸잖아요. 출산과 죄책감은 세트라구요. 




 어제, 아기 이유식 부재료로 쓸 애호박이랑 브로콜리를 조리하고 얼려두었어요. 아침엔 얼린 재료를 랩으로 하나씩 포장해서 꺼내 쓰기 쉽게 만들어뒀지요. 그러다가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전 세계인 모두, 서로 다른 문화에서 각각 아기들을 양육해 곳곳에 훌륭한 어른들로 심어두었는데, 그들은 모두 같은 이유식을 줬을까? 쌀밥이 주식이 아닌 나라에서는 어떤 음식을 가장 먼저 시작하는 걸까? 만일, 모두 다른 이유식을 먹고도 별 탈없이 자라 아무 문제없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거라면, 나는 대체 왜 초기, 중기, 후기 이유식이라는 온갖 단어에 갇혀 나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가? 왜 이 시기를 즐기지 못하는가?

 알러지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몇 가지, 글루텐이 함유된 것들, 복숭아, 계란, 견과류. 이런 건 어느 정도 대비만 해두면 되는 게 아닐까? 병원에 쉽게 갈 수 있을 때를 맞춰 줘 보면 되는걸테죠. 문제가 생길까봐 평생 못 먹게 할 것도 아니니까 만일에 대비에 평일 오전에만 준다면, 혹시 알러지를 일으키더라도 바로 병원에 가면 되는거예요. 구더기가 무서웠다면 우린 맛난 된장국을 못 먹지 않겠어요? 호주의 유명한 아기 분유 브랜드에서 나오는 4개월 아기의 첫 이유식이, 우유에 말아먹는 자잘한 씨리얼인 것을 떠올리면 더더욱 마음을 편히 먹어도 될 듯합니다. 


 그간 저는 이유식의 '주목적'이 마치 알러지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것처럼 생각했었는지도 몰라요. 알러지 여부 확인,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내 아이에게 세상에 얼마나 맛 좋은 것들이 있는지 경험하게 해주고, 잘 먹는 아기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는 것. 그게 더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는 걸 자꾸 잊습니다. 그리고 넙죽넙죽 받아먹는 이유식 초보인 우리딸이, 엄마가 걱정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주네요.

 아이를 기르는 것은 위대한 선생님 한 분을 모시는 일 일 겁니다. 단언컨대, 제가 40년 가까이 배운 것보다, 아기와 함께한 지난 150일 동안 배운 게 더 가치 있을 때가 있어요. 


 육아는 노동입니다. 스트레스를 표출해선 안 되는 작은 회장님을 모시고 사는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물론, 몸이 고달프고 지치는 일이에요. 그리고 끝나지 않는 일이죠. 그러나, 아이를 양육하는 분들, 그리고 아기를 기다리시는 분들 모두 기억하세요.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위대한 가치를 일러 줄 작은 선생님에게 배우는 대가로는, 그 노동은 그리 크지 않은 것일지 모릅니다.

  저도 잊지 않을게요. 오늘도 잘 데운 이유식을 온갖 애교를 동원해서 먹일 겁니다. 




 



 덧,

 호기롭게 시작한 두 번째 이유식 '애호박 쌀미음'은 알러지 반응은 없으나 매우 불호인 것으로 추정. 실패의 쓴맛을 봤습니다. 냄새는 정말 좋았는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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