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비행을 쉰 지 2주 만에 하는 비행으로써 14시간의 필라델피아 여정은 꽤나 부담스러웠다.
이미 이곳 중동이나, 올해가 끝남으로 총 2년 동안 내가 몸 담고 있는 아비 에이션 업계에 기대하는 바가 없어진 나는 뭐 같은 회사가 뭐 같은 비행 주는구나 하며 비행길에 나섰다.
친구들에게 들은 대로 사람 탈을 쓰고 멍멍이 소리를 짓어댈 승객들을 예상했지만 나의 기대가 너무 낮아서였을까 승객들은 얌전했다. 또 이 세상에서 제일 지루할 것이라 예상한 크루들은 생각보다 훨씬 착하고 재미있었다.
14시간의 여정이 끝난 뒤 밟은 필라델피아는 이미 해가 다 저물어 어둑한 풍경이었고 크루들과 어스름한 눈으로 찾아 들어간 펍에서 나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22년의 마지막, 그리고 2023의 처음이 코 앞으로 찾아왔다.
올 한 해 내가 다시 중동으로 돌아오고 비행을 시작하며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무엇일까.
올해 나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면 '혐오'의 대상이 달라졌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 이야기에 대해선 다음에 하는 걸로.
오늘은 어제의 필라델피아 비행에서 새롭게 깨닫게 된 오류에 대해 쓰고 싶다.
필라델피아를 가는 길에 꽤나 고생스러운 포지션을 맡아 힘들게 일한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게을렀다.
그 수법 중 하나로 본래 승객들과 잘 말을 섞지 않는 나는 점싯에 앉아 인도 아저씨 승객 한 명과 대화를 시작했다.
아저씨에게 필라델피아에 사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필라델피아에 산 지 5년이 되었고 미국에 산 지는 25년이 됐다고 했다.
아저씨는 IT회사에서 일하는데 자기 동료들 중에도 한국인이 많다며 나를 반가워했다.
미국 비행을 할 때마다 인도 승객을 참 많이 본다. 베이스로 인한 지리적 요인도 작용하겠지만 그만큼 인디언들이 미국에 많이 가는 구나를 새삼 느낀다.
그동안 인디언들을 보며 대체 뭘 하러 갈까 궁금했던 나는 그 질문을 아저씨에게 했다.
아저씨는 처음에 인도의 IT회사에서 일하던 중 미국으로 해외로 나갈 기회를 찾다가 미국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미국에 온 지 5년이 되던 해에 그만 인도로 돌아갔어야 했어요. 그때 돌아갔으면 이렇게 오래 있지 않았을 텐데."
나는 그 말을 듣고 의아했다.
나는 아저씨가 인도에서 살기가 힘들어서, 가난이 지겨워서 처음부터 미국에 눌러앉을 작정으로 떠난 것인 줄 알았다.
"그럼 미국에 간 걸 후회하세요?"
'그건 아니지.'라는 대답을 기대하며 내가 물었다.
그래도 가난하고 개발되지 않은 나라에 사는 것보단 미국에 사는 게 훨씬 낫잖아요.라는 속마음이었다.
"후회해요."
내가 놀라 다시 똑같은 질문을 되물어도 아저씨의 대답은 같았다.
내가 왜냐고 묻자 가족이 그립다고 했다.
"부모님이랑 형제자매들과 함께 살고 싶어요. 그런데 이젠 내 부인과 여기서 낳은 내 자식들이 미국을 떠나고 싶지 않아 해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어요. 나는 미국에서도, 인도에서도 이방인이에요."
그 말을 들고 나는 눈물이 왈칵했다.
나의 오만과 편견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이 전에 배우 정우성이 어떤 티브이 쇼에서 난민에 대하여 얘기한 것이 생각났다.
"사람들이 난민에 대해 갖는 가장 큰 오해는 그들이 자신의 나라를 영원히 떠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에요.
제가 만난 난민들의 목표는 늘 자기 나라로 다시 돌아가 작은 자리에서라도 돈을 벌며 자기 자식들과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었어요."
경제적 부양 능력이 없는 뿌리는 버려도 되고 사라져도 된다는 생각, 그러니 그들은 다시 그 보잘것없는 뿌리로 돌아가야 할 것을 두려워할 것이라는 나의 사고는 식민주의적 개념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건 심각하게 틀린 생각이었다.
내가 이 오류를 생각하게 됨으로 나의 고질적 병인 오만과 편견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그 어떤 것 이상의 선물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