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늘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간절히 원했던 나의 20대 꿈이었다. 본격적으로 여행을 하게 된 계기는 대학시절 친구 덕분이었다. 친구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님의 잦은 해외 출장을 따라다니며 다양한 나라를 경험한 탓에 또래에 비해 성숙하고 멋스러운 아이였다. 그런 친구와 나는 어느새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고 내 삶을 바꾸는데 모티브가 되었다.
'꼬모 마을을 가다'
꿈에 그리던 두 번째 여행 이탈리아 밀라노 공항에 도착했다. 도시 야경의 설렘을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나는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황급히 와인가게로 달려갔다. 도시의 화려함 속에 스며드는 와인 축제의 밤은 현실이 아닌 꿈나라였다. 이른 아침 버스는 밀라노 도시를 벗어나 북쪽으로 한참을 달렸다. 붉은 태양이 고속도로 휴게소 유리창을 뚫고 비추는 강열한 일출과 마주하며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 그리고 바삭한 빵으로 아침의 공복을 달랬다.
알프스 산맥이 보이는 스위스 국경과 맞닿은 꼬모 마을은 유럽의 부호가 들과 할리우드 스타들의 별장지가 있는 곳이며 한 때 로마황제가 사랑했던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푸른 호수를 끼고 주위에 높은 산으로 둘러 쌓인 호수 앞에는 요트 선박장과 형형색색 건물들이 나란히 뽐내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우리는 서둘러 마을 구경에 나섰다. 스카프 공장과 프리미엄 가구점을 방문했는데 공장 안에는 화려한 스카프가 천정까지 쌓여 한눈에 봐도 명품임을 알 수 있었다. 한편 가구 공장에는 금장으로 장식된 화려한 가구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마치 베르사체 명품과 유사했다. 친구와 나는 이런 작은 마을에 왜 이렇게 화려한 명품과 가구들이 있을까! 수수께끼 투성인 마을을 걷고 또 걸었다.
한참 동안 마을을 서성거리다 작은 상점에서 발길이 멈추었다. 작은 시골 마을에 왠 샤넬 매장이람. 간판을 보고 또 보았다. 삐그덕 소리가 나는 나무 문을 열고 매장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매장 규모는 약 10평 남짓으로 보였다. 매장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 등만 보아도 꽤 역사가 깊은 샤넬 매장임을 알 수 있었다. 매장 중앙에는 나무로 만든 낡은 진열장이 있었다. 진열장 안에는 화장품, 향수, 헤어 용품까지 종류가 참 다양했다. 당시 동양인에게 샤넬 명품은 근접할 수 없는 브랜드였기에 긴장하며 제품을 구경하다 나는 헤어제품에 눈이 멈췄다. 만족스러운 가격에 헤어제품을 구입해서 그런가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작은 샤넬 종이 가방을 달랑달랑 들고 길을 활보하던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온통 거리를 활보하는 중 장년층 사람들이 머리부터 발까지 펜디, 페라가모, 구찌 등 명품으로 휘감은 것이 아닌가! 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두 패셔니스트들이었다.
작은 포구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고 약 한 시간 정도 호숫가 중앙에 멈추었다. 안내원은 방문객을 위한 별장 설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박에 무려 100만 원 이상 지불해야만 숙박을 할 수 있다는 고급 호텔과 유명 스타들의 호화스러운 별장 이야기가 뒤를 이었다. 베르사체, 페라가모, 축구선수 베컴, 무솔리니, 마릴린몬느 등이 소유한다는 별장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이야기에 나는 흥미로웠다. 화려한 별장지 투어가 끝나고 우리는 산 꼭대기마을로 올라가기 위해 푸니쿨라 열차를 탔다. 이탈리아에서 푸니쿨라 열차는 주로 산을 올라가는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푸니쿨라 열차를 타고 약 30분쯤 가파른 길을 올라 정상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은빛 가루가 반짝이는 영화에서 나올법한 호수 풍경은 이루 말할 수없이 황홀했다. 새벽부터 달려 잠시 쉴 세도 없었던 우리는 몸이 나른했다. 정상에서 가장 뷰가 좋다는 한 카페에서 우리는 잠시 쉬기로 했다. 카페 건물은 온통 나무와 돌로 완성되어 그런지 오래된 역사가 묻어 있는 듯했다. 내부 벽에는 카페의 역사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진이 걸려있었다. 벽 한가운데 부모님의 사진과 통통한 한 아이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마침 사진 속 주인공이 우리 앞에 메뉴판을 들고 나타났는데 순간 나는 사진을 가리키며 손 짓을 했다. 배가 남산 만한 주인아저씨는 챠오! 하며 본인 사진이 맞는 듯 윙크를 건넸다. 꽤나 유머스럽고 친근해 보이는 아저씨와 나는 한 참을 손짓 발짓하며 안내원의 도움을 받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 부부는 이곳에서 태어나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으며 평생 한 번도 꼬모 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 시간이나 늘어놓았다. 참 이탈리아 사람들은 미워할 수 없는 수다쟁이다.
당시 쉽게 먹어볼 수 없었던 마르게리타 피자와 거품이 풍성한 카푸치노의 맛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추억 속에 사라졌지만 나는 당시 여행이 주는 맛, 멋의 매력에 푹 빠졌던 시간들이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첫 느낌. 삶을 더 낳아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힘을 얻으며 이탈리아 나라가 점점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친구와 나는 이탈리아 북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한층 더 무르익어가는 인생관을 스케치하며 각자의 꿈의 데자뷔를 만나기 위한 준비를 서서히 시작했다.
[에필로그]
2015년 강열한 햇살이 뜨거웠던 6월 초여름 나는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마침 밀라노 여행 일정이 있는 가운데 꼬모 마을을 꼭 한 번 다시 가고 싶었다. 나의 20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던 장소를 다시 찾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뭉클했다. 어렵게 꼬모 마을에 도착해 푸니쿨라 열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빨갛게 상기된 나의 얼굴을 보고 남편은 빙그레 웃으며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다행히 카페를 찾을 수 있었고 우리는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 도구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늘 친절한 웃음으로 환대해 주셨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습은 벽에 걸린 한 장의 사진으로 인사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쉬움을 달래려 1990년대 맛보았던 피자와 카푸치노 커피를 주문하며 호수 풍경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와 똑 닮은 아드님은 씩씩하게 커다란 쟁반 위에 피자와 시원한 맥주 그리고 거품이 풍성한 카푸치노를 한 아름 않고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푸짐하고 맛있어 보이는 한 상을 앞에 두고 나는 눈물이 앞을 가려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던 남편은 내 이름을 부르며 맥주를 들고 건배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