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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Feb 14. 2018

[퇴사 후 세계여행]갔다와서 뭐 해먹고 살래?

프롤로그, 욜로하다 골로가지 않기 위해

우리 세계여행 갈래?


만난 지 무려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그가 건넨 한 마디. 

연애시절, 만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구 남친, 현재의 남편은 말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세계여행이 꿈이었어. 그런데 가게된다면 최대한 젊었을 때 가고 싶어"

"세계여행...?! 좋지! 그런데 뭐 한 50대쯤 가는게 세계여행아니야? 젊었을 땐 돈도 없고 벌어야 하는데 어떻게 세계여행을 가?"



물론 '세계여행'은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 한 켠에 자리잡은 꿈이고 나 역시 막연하게 언젠가 꼭 가고 싶었지만, 그게 지금이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성공을 하고 아이들을 다 키워놓은 다음 빨라야 50대나 되서야 갈 수 있는 거 아니었나? 그것도 돈이 많다는 가정하에? 그런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고 싶다고?'


그때부터 남자친구가 남편이 될 때까지 나는 끊임없이 머릿 속으로 젊은 날의 세계여행에 대해 계산을 했다.

 a²+b²=c

방정식에서 a는 퇴사를 하고 떠난 세계여행에서 느끼는 행복과 유희라면,

b는 세계여행을 다녀와서의 달라진 삶이 더해져 지금과는 다른 c라는 답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 행복과 터닝포인트는 제곱이 되어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방정식을 풀기 위해 세계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책을 한국 작가 뿐만 아니라 일본, 독일 작가까지 닥치는 대로 탐닉하기 시작했다. 세계여행 이후의 삶이 너무 불안했기 때문에 궁금했다. 용감하게 회사를 나가서 세계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과연 잘 살고 있는지.

용기있게 세계여행을 떠난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거나 살고 있던 집의 전세금을 빼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애써 찾지 않아도 서점에만 가도 세계여행을 다녀온 책이 얼마나 많은지. 게다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무라카미 하루키조차도 마흔을 목전에 앞두고 불안함을 타계하고자 유럽으로 떠났을 정도였다. 그들의 용기를 활자로 읽으며 '세계여행을 가도 괜찮을까'에 대한 계산은 얼추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여행을 다녀와서 한국에서 뭐 해먹고 사는지에 대한 계산은 아무리 해도 끝나지 않았다. 세계여행을 다녀와서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는 도통 알 방법이 없었다. 모든 이야기들은 여행이 끝남과 동시에 맺어버려 '그래서 여행 이후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늘 궁금했다. 

하지만 여행서는 서점이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은데 도대체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쓴 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인터넷에도 세계여행 여행기는 그렇게 열심히 올리면서 '그래서 그 다음에 한국에 와서는 어떻게 살고 있다'는 내용은 도통 나오지 않았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학교다닐 때도 수학을 못해 손가락, 발가락을 동원해 셈을 했던 나는 세계여행 후 펼쳐질 인생계산을 마저 하기 위해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기 시작했다. 책에서는 나오지 않는, 손에 쥐고 있던 카드들을 버리고 용기있는 선택을 한 그들을.




젊은 날의 퇴사


몇 천만원을 들여 가는 세계여행인데 한 살이라도 젊고 건강할 때 가야 더 예쁜 모습을 남길 수 있다. 지금 나이에 느끼는 자극은 몇 십년 후 그것과는 천지차이일 것이다. 날이 갈수록 취업준비생이 많아지는 요즘 같은 지옥에서 못 들어가 안달이었던 좋은 회사를 제 발로 걸어나오면 여행이 주는 편익은 훨씬 더 커야 한다.


5시 칼퇴, 저녁이 있는 삶, 유연한 근무환경, 중상위 정도 되는 나쁘지 않은 급여와 복지, 무난한 직장 동료들, 가만히 있으면 어느정도 승진은 할 수 있고 서울 중심에 있어 편리한 업무환경 등...


여의도에서 함께 일하며 남부럽지 않은 월급과 복지를 누리며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세계여행을 위해 그만 둔다. 남들은 들어오고 싶어 안달인 회사에 다니면서 감사한 줄 모르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려하다니 복에 겨웠다고 할 수 밖에.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승진도하고, 월급을 모아 더 크고 좋은 집으로 이사갈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학군 좋은데서 키우기 위해 좋은 동네로 이사하고, 좋다는 학원은 다 보내줘야 하고. 나쁘지 않은 미래다. 오히려 이런 평범한 삶을 안위하는 것이 쉽지 않음도 안다.

하지만 이렇게 지내다간 더 큰 집을 위해 빚을 내고, 빚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사에 몸이 묶여버려 부조리한 일을 당해도 그냥 참고 넘거야 하는 상황이 우리 부부에게도 닥칠 것이다.

 

직장 생활을 묵묵하게 윗사람들 눈치보며 버티고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에 만족하며 그 돈을 적금에 모으거나 투자를 해서 돈을 불리는 예전 성공방식으로 지금 시대를 살아간다면 5, 10, 20년 후 지금을 돌아봤을 때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있을까? 더 많은 통장잔고? 혹은 마이너스 잔고? 경력단절없이 계속 일을 한다면 집을 살 수 있을까? 가정을 꾸릴 때보다 더 큰 빚을 지고, 그때문에 회사를 어쩔 수 없이 열심히 다녀야할 것이다.

집은 왜 사야하는건가? 시세차익을 누리기엔 우린 이미 늦은 것 같은데...

회사에 충성을 맹세하고 불의를 봐도 참으며 승진한 대가로 받은 월급, 그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집을 한 채 사고, 가만히 있어도 집 값이 쑥쑥 올라 시세차익을 본다. 하지만 이미 이런 성공공식은 늦어도 현재 40대 후반인 윗 세대에서 끝났다고 생각한다. 현재 또래 세대들에겐 윗 사람들처럼 '악착같이 모으면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진지 오래다.


오히려 반문한다. 그렇게 무리해서 집을 사면 행복할까?


"우리 집은 자가야. 너네 집은 전세라며?"


아이가 학교에서 이렇게 놀림받을 수 있는 것 빼고는 집을 살 이유가 크게는 없어 보인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되는 요즘 세상에 사실 회사 다니는 걸 안정적인 삶이 아니라고 생각은 안 해봤는가. 늘 우리는 좋은 고과를 받지 못할까봐 윗사람의 눈치를 보며 그 분들의 말한마디에 전전긍긍하고, 심지어 그분들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원치않는 회식 자리에 참석해야 하고, 맞지 않는 사람들과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감정노동을 한다. 그 감정노동의 댓가가 원치 않는 부서로의 발령 혹은 인수합병으로 인해 다른 회사로의 이직, 낮은 고과로 이어진다면 과연 이게 우리가 그렇게 추구하는 '안정적인 삶'일까?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싫어하는 상사에게 평가를 받아야하는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그럼에도 몇 천만원의 비용과 함께 안정적인 직장을 포함한 이 모든 기회비용까지 포기하기에 세계여행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편익이 클까? 세계를 여행하며 보고 느끼며 드는 생각들이 이 비용을 상쇄하고 남을 정도일까? 마음 속으로는 퇴사와 세계여행이 답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머리로는 쉽사리 계산이 되지 않았다.


우리 부부의 이런 계획을 주위에 이야기하면 '욜로하다 골로간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그래서 '욜로하고 골로 안 간' 사람들을 찾아 만나보기로 했다. 진짜 골로 가는 길인 것인지.

하지만 먼저 용기있게 퇴사를 하고 세계여행을 다녀온 멋있는 부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나야 할 이유들이 우리 안에 차곡차곡 정리되었다.


이 여행이 부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흔히 여행을 떠나 '극적으로 변화할' 나를 꿈꾸지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만난 부부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여행 후도 지금과 같은 모습인들, 그 시간에서 쌓인 내공들은 우리를 빛나게 해줄 것이다.


마음이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우울하고, 미래에 머물러 있으면 불안하고, 현재에 머물러 있으면 평온하다



우리는 여전히 불안하고 여행 후의 삶이 걱정된다. 하지만 회사에 몸이 있다고 해서 불안하지 않은가? 어디에 있든 불안은 늘 우리를 따라다니는 놈이기 때문에 크게 미래를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선배 부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수록 불안과 걱정이 반감되고 자신감이 생겼다. 그 놀라운 이야기들을 불안한 여러분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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