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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xperiencer Nov 04. 2020

개같이 살고 싶다

올 겨울에도 사모예드를 키우긴 글렀다.



여행을 하며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우리 부부가 생각보다 강아지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둘 다 한 번도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이 없었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동네 단골 카페의 사모예드인 목동이 덕분에 사모예드에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퇴사를 하고서는 목동이를 보러 거의 매일 카페에 출근 도장을 찍다시피 했다. 그때 처음 알게 된 사모예드와 사랑에 빠졌고 시카고에서는 무려 열흘간 사모예드의 펫시터가 됐다. 여행하며 만났던 강아지들 덕분에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면 마당이 넓은 집에서 사모예드를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덕분에 시카고에서의 펫 시팅(pet sitting)은 여행경비를 줄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우리에게 있었다. 말하자면 사전 모의고사랄까.

"석민&새미, 조조와 테오 펫 시팅을 지원해줘서 고마워. 혹시 이번 주말에 스카이프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데 가능할까?"

시카고에 있는 아만다에게서 위와 같은 메시지가 왔을 때 우리는 브루클린의 숙소 거실에서 방방 뛰며 기뻐했다. 실제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올 거라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 만났던 선배 세계 여행자인 제제 미미 부부와 인터뷰할 때의 일이다. 여러 가지 재밌는 에피소드 중에서 우리의 귀를 사로잡았던 건 그들이 호주에서 강아지를 돌봐주며 한 달 동안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무료로 지냈다는 이야기였다. 집이 너무 커서 차를 타고 정문을 지나야 집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거다 싶었다. 여행경비를 아낄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늘 키워보고 싶던 강아지와 짧게나마 같이 살아보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알려준 사이트의 이름은 Trusted House Sitter(굳이 한글로 번역하자면 '믿을 수 있는 집 돌보미' 정도 되겠다). 자신의 집과 사랑하는 애완동물을 두고 여행을 가야 하는 집주인과 애완동물과 집을 돌봐주는 대신 집에서 무료로 지낼 기회가 필요한 여행자들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이었다. 돌보미를 구하는 지역은 대부분 미국, 호주, 유럽 일부 국가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를 시작으로 여행을 출발하는 우리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지원해보기로 하고 이 존재 자체를 잊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고 미국에 와서 비싼 미국 물가에 숨통이 턱 막힐 때 즈음, 잊고 있었던 그 서비스가 생각이 났다. 사이트에 가입하기 위해선 한화로 십만 원가량을 내야 하고 마치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듯이 상세하게 프로필을 작성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돈 백만 원을 아끼게 생겼는데 그쯤이야. (시카고 숙박비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개인실도 하루에 15만 원에 육박했다) 취준생이 기업을 분석하고 자기소개서를 쓰듯이 다른 지원자들의 프로필을 분석하고 우리를 증명해 보일 에어비앤비 후기와 SNS 모든 페이지를 긁어와 뚝딱뚝딱 하루 만에 프로필을 완성했다. 그러고선 우리와 일정과 잘 맞는 시카고에서 열흘 동안 귀여운 사모예드와 폼스키(포메라니안과 허스키의 교배종)를 돌볼 수 있는 기회에 지원했던 것이다. 물론 사모예드 주인의 눈길을 사로잡도록 프로필 사진은 목동이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올렸다.

회원가입과 지원을 하며 찾아본 네이버 블로그의 정보는 매우 한정적이었고(이 사이트를 알고 있는 한국인조차 많지 않은 듯했다) 면접 과정에 대한 정보는 더욱 찾기 어려웠다. Sitter(돌보미)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경쟁(대략 한 공고에 4~7명 정도의 지원자가 있었다)을 해야 하는데 외국인인 데다 Sitting 경험이 없어 사이트에 후기가 남아있지 않는 지원자의 경우에는 인터뷰 대상자로 선발되기는커녕 답장을 받는 일도 잘 없다고 했다. 취업을 위해선 인턴십 경험이 필요한데, 인턴을 하려면 그전에 다른 인턴십이 있어야 하는 경우랄까. 하지만 우리는 초심자의 행운 덕인지, 처음 지원한 공고에서 바로 스카이프로 면접을 보자는 답장을 받게 되었으니, 우리가 방방 뛸 수밖에. 인터뷰 날짜가 정해지자 예상 질문도 생각해보고, 답변도 정리해보았지만, 개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데다 영어로 진행되는 인터뷰라 살짝 긴장되었다. 아내에게는 어차피 안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니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이야기하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연락하기로 한 9월 첫째 주 토요일 아침 열 시 거실에 앉아 노트북을 켜 두고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가 안 올 수도 있겠다, 너무 긴장하지 말자 등 다양한 잡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그때 노트북으로 연결해둔 스카이프에 전화벨 표시가 떴다. 정말 전화가 온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통화 수락 버튼을 누르자 노트북 화면 전체에 아만다와 라이언 부부의 모습이 나타났다. 결혼한 지 2년 된 커플인데 9월 말에 열흘 동안 남미를 여행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기간 동안 자신들의 집과 강아지들을 돌봐줄 수 있는 돌보미를 찾고 있다고. 우리가 웹사이트에 올려둔 프로필 사진에 Jojo와 같은 종인 사모예드 목동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우리에게 연락하게 되었다고 했다. 인터뷰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안부 인사를 주고받듯이 캐주얼하게 진행됐다. 서로의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결되어가던 때에 Amanda가 우리에게 시카고에 언제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시카고로 향하는 비행기를 아직 사지 않았던 터라, 우리를 필요로 하는 날짜에 맞추어 들어갈 수 있다고 하자 그러면 본인들이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날 집에 와서 강아지들과 친해지는 오리엔테이션(?)을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열흘 동안 시카고에서 살 집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시카고에 머물 집이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을 돌볼 수 있다는 사실에 실감이 나질 않았지만 우리는 흥분한 티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그들과의 통화를 마쳤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자마자 나와 남편은 환호성을 지르며 숙소를 뛰어다녔다. 연락도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기회가 현실이 됨에 기뻐했다. 그때만 해도 하우스&펫 시터의 일이 이렇게 고되고 힘든 일은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강아지를 한 번도 키워본 적 없는 왕초보인 덕분에 첫날부터 고생을 많이 했는데, 결국 사모예드가 산책 중에 닭뼈를 먹는 사고가 발생했다. 내내 괜찮다 자정이 되어 잠들 때쯤부터 숨을 헐떡이고 불편해 보였던 조조. 혹여나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까 걱정돼 다음 날 아침에 바로 동물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다. 남편은 밤새 뜬 눈으로 영어로 증상을 설명할 방법을 공부하고 불편해 보이는 조조를 지켜보았다. (이 와중에 나는 잠이 들어버렸다. 미안하다 조조...) 만약 큰 수술을 해야 한다면 비용은 어떡하지. 여기는 의료 보험은커녕 의료비 비싸기로 소문난 미국인데. 조조가 잘못되면 아만다와 라이언은 우리에게 소송을 걸까? 끝도 없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생명을 돌본다는 것의 막중한 책임감의 무게는 잘 모른 채 시카고에 머물 집이 생겼다는 사실에만 좋아했던 순간을 돌이켜보며 자책했다.

그렇게 스물네 시간 동안 강아지 두 마리를 밀착 관찰하며 얻은 결론은 ‘개처럼 살자’였다. 조조와 테오를 보고 있으면 ‘개팔자 상팔자’라는 어구가 절로 떠올랐다. 충격적인 사실은 여행 중 일상을 돌이켜보면 그들과 크게 다를 게 없이 개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산책하는 것 말고 중요한 게 없던 백수의 하루는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돌아와 밥을 먹고, 미드를 보고, 다시 점심 산책을 다녀와 콕 박혀 책을 읽었다. 그러다 졸리면 낮잠도 자는 그런 일상의 반복. 강아지들과 똑같은 생활 패턴으로 개처럼 지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 정도로 퍼져있진 않지만 회사에 가지 않으니 매우 여유롭다.

사실 ‘개 같은 하루’는 굉장히 사치스럽다. 먹고 (싸고), 걷고 냄새 맡고, 다시 밥 먹고 자고 끝. 백수가 아니면 쉽게 영위할 수 없는 평온한 시간인데 왜 일진이 사납다는 뜻으로 쓰이게 됐을까. 이렇게 좋은데! 생각해보면 ‘개 같네’ 개새끼’ 등 안 좋은 욕에는 죄다 개가 붙어있다. 희한하게 최상급 표현에도 어김없이 개가 붙는다. ‘(개) 피곤해’ ‘(개) 졸려’ ‘그 옷 (개) 구려’. 여전히 습관적으로 나 역시 ‘개’를 남발하고 있지만 의식적으로 개를 덜 찾으려 한다. 이렇게 귀여운 친구들을 욕으로 쓰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언어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개 같은 여행을 마치고 시카고를 떠나는 날, 양 손 가득 가방을 들고 떠나는 우리를 보고 조조와 테오는 슬프게 짖었다. (우리만 그렇게 느낀 걸까) 아이들을 떼놓고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둘은 금세 우리를 잊고 주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겠지. 개 같은 하루를 열흘이나 보내며 돈을 주고도 못할 소중한 경험을 했던 시카고. 언젠가 강아지들을 보러 꼭 시카고에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는 ‘개’가 들어간 욕은 삼가야겠다.



출처: 모카우유 유튜브




한국에 돌아온 지금은 유튜브로 캐나다에 사는 사모예드 우유를 보며 좋아요를 날려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모예드를 키우려면 우선 우리 둘만 지내는 공간이 필요하고, 독립하려면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거처를 정하려면 회사를 돌아가게 될지의 여부가 나와야 한다. 한국에 온 지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모호하다. 원래는 올 겨울엔 사모예드를 키우는 걸 목표로 삼고 이것저것 회사 이외의 일을 모색 중인데 올 겨울은 그른 것 같다. 내년 겨울에는 꼭 우리만의 공간에서 사모예드와 함께 개 같은 하루를 영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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