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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Dec 30. 2020

출간계약서 두 통

백수부부에서 작가부부가 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0년도 이틀이 채 남지 않았다. 올해를 돌이켜보면 가장 기뻤던 순간은 출간 계약서를 쓰던 날이다. 7월 말에 계약서에 사인을 했으니 벌써 다섯 달이나 지난 이야기다. 연말연초를 예상했던 출간 일정은 내년 상반기로 미뤄졌지만 여전히 나를 들뜨게 한다.

해가 바뀌기 이틀 전 남편도 본인의 이름으로 된 출간 계약서를 썼다. 여행을 다니며 함께 '일간 백수부부'를 연재했던 백수 부부가 작가 부부가 되었다. 내가 계약서를 쓰고 네 달쯤 지났을 때 남편은 출간 제의를 받았다. 한 달가량 원고와 출간 방향을 논의하고 드디어 사인을 했다.



https://brunch.co.kr/@bellakwak/201



여행을 마치고 두어달 후 그가 평소 주식 투자를 하며 공부하는 자료가 혼자 보기에 아까워 유튜브에 새 채널을 개설해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동학개미운동에 힘입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호응을 얻었다. 여행을 하며 만든 채널에서는 일 년 넘게 겨우 모은 천 명의 구독자를 몇 달만에 쉽게 모았다. 그 후 열 배가 늘어 만 칠천여명이 구독해주고 있다. 그 중 몇 명은 출판사 관계자였다. 구독자이자 편집자인 몇 분에게 출간 제의를 받았고 그 중 한 군데와 계약을 맺었다. 내가 원했던 경로인 먼저 출간 제안을 받아 책을 내게 된 것이다.

나는 반대로 열심히 제안서를 만들고 투고했다. 여행을 하기 전부터 늘 출판사의 연락을 기다렸다. 막연하게 유명해져 출간 제의를 받길 희망한 것이다. 책을 내고 부자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이 힘들 때 글에 기대고 위로받은 것처럼 나같은 누군가에게 닿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출판사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다. 회사 사람들이 보는 게 싫어 비공개였던 SNS 계정을 공개로 바꿨지만 나와 남편을 아는 사람이 아주 조금 많아졌을 뿐이었다. 셀프로 작가가 되어 ‘일간 백수부부’를 일 년동안 연재했지만 포털사이트에서 인터뷰 제안을 받은 게 전부였다. 출간 제의는 못 받았지만 그간 쌓인 글 덕에 원고를 청탁 받아 돈을 받고 글도 쓰기도했다. 생각보다 많은 원고료가 입금된 날 남편의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 돈은 한 달 생활비로 야금야금 다 썼지만 한국에 돌아와 통장 잔고를 보며 잔뜩 움츠러들었던 마음을 펴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게 다였다. 매 달 연재가 아닌 일회성으로 끝난 청탁에 취준생의 마음으로 돌아가 출판사에 적극적으로 나를 알리기 시작했다. 회사 다닐 때 연간계획 발표 자료를 만들 듯 정성을 들여 출간기획서를 만들고 원고도 독립출판 모양으로 만들었다. 남이 먼저 알아봐 주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감사하게도 평소 흠모하던 출판사와 연이 닿아 책을 낼 수 있게 됐다.



회사를 나온지 이 년이 훌쩍 지났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쉽사리 돌아가기도 어렵다. 세계여행이 끝나고 바로 재취업의 문을 두드리기 싫어 여러 일에 기웃거렸다. 일 년가량 각자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고 안되면 그때 다시 이력서를 내보기로했다. 어느덧 약속된 일 년이 몇 달밖에 남지 않았다. 슬슬 마음이 쫄린다. 삼분기가 지나도록 월급만큼 수입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 년동안 제주에서 살게 되면서 재취업은 일 년 더 뒤로 밀린 셈이다.


와중에 출판계약서 두 장으로 마음이 넉넉하다. 제주에 가서도 확실하게 할 일이 있어서 재취업의 보루를 걷어내도 불안하지 않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표를 예매해두고 기다리는 마음같다. 돈벌이와 별개로 그저 아끼는 마음을 담은 실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겁다. 내가 꾹꾹 눌러담아 쓴 문장이 모여 지금 당신에게 읽힐 미래를 상상만해도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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