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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Mar 31. 2022

미니멀 라이프와 출세

물건을 비워내면 나쁜 마음도 함께 사라질까

주간 백수부부 2022 시즌7. 25화 글쓴이 아내(망샘)





요즘 내 관심사는 ‘비우기'. 

누굴 만나 대화를 해도 미니멀 라이프로 귀결된다. 


몇 주전 세계 여행자 선배를 만났을 때도, 며칠 전 전에 살던 집주인 부부와의 대화도 그랬다. 

다행히 세 분 다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을 해주셨다. 


‘물건들에 둘러싸여 계속 욕심이 생기는 출세하는 삶 vs. 비우고 가볍게 사는 미니멀 라이프’


나이가 들수록 둘 중에 후자로 기운다고. 

끊임없이 마음을 가다듬지만 주위의 성공 이야기들을 들으며 비교하게 될 때마다, 내가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 느끼는 그 마음이 처방전이 될 거라고. 




돈을 적게 쓰는 삶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욕구를 무작정 줄여야 한다면 그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나는 인간 욕구의 총량을 줄일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하나의 욕구를 다른 욕구로 대체할 수 있을 뿐이다. 저비용 구조로 자신의 욕구를 재편하고 싶다면 다른 장소와 다른 관계망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일상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는지, 어떤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지가 우리 욕구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일하는 마음, 제현주>

   




책의 구절대로 모든 게 손가락 터치 몇 번이면 배달되는 빠르고 편리한 도시가 아닌, 직접 몸을 움직여야 장을 보고, 물건도 몇일씩 더 늦게 오는 섬에 사는 건 미니멀 라이프에 이롭다. 

특히나 육지보다 비용이 비쌌던 제주에서 이사를 치르니 더욱 비우기 쉬워졌다. 


프리랜서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집밥을 자주 하다 보니 이젠 네이버를 찾지 않고도 얼추 맛을 낼 수 있는 음식이 생겼다. 

장을 일주일에 한 번만 보려 노력하다 보니 가진 식재료로 냉장고 파먹기를 할 때마다 창의력이 조금 느는 기분이다. 

이사를 하며 한바탕 물건을 버리다 보니 사고 싶은 물건을 만났을 때도 두 번은 더 고민한다. (‘이거 나중에 당근에서 팔릴까?’ 이렇게ㅎㅎ)


욱여넣어둔 짐들을 하나씩 꺼내보며 버리거나 잊혔던 물건은 쓰임을 되찾아주었다. 


처음 손댄 곳은 터질듯한 옷방이었다. 제주에 와서 요가복, 그것도 헐렁한 옷 위주로 입으며 스타일이 바뀌었다. 앞으로도 손이 잘 안 갈 옷들은 당근 마켓으로 많이 처분했다. 산 가격의 반의 반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누군가 필요로 해 사갔다는 사실이 고무적이었다. 


매번 매트빼낼 때마다 걸리적거려 스트레스를 유발하던 옷걸이들을 정리했다.


추억의 CD들도 정리했다. 누가 사갈까 싶었는데 아저씨가 바로 사가셨다



드레스룸 한 켠에 마구 쌓아둔 옷을 정리하고 그 자리엔 결혼액자를 올려두었다


‘이걸 산다고?’ 싶은 판매 경험을 여럿 쌓고서 추억의 물건으로 손을 댔다. 

이삿짐을 옮기다 가장 무거웠던 정체불명의 박스를 열어보니 내 추억이 거기 있었다. 초, 중, 고, 대학교 졸업앨범과 고등학교 교복까지. 애착이 있던 고등학교 교복은 아직 버리지 못한 채 리빙박스에 넣어두었다. 하지만 앨범은 과감하게 버렸다. (물론 내가 속한 반과 내가 나온 사진은 오려두었다)


‘그래도 갖고 있어 보지’라며 주위의 만류가 있었지만 버리고 난 후의 소감은 전혀 아쉽지 않다. 오히려 왜 진즉에 버리지 않고 이 무거운 걸 이삿짐센터 직원들 허리 아프게 나르게 했는지 안타까웠다. 


추억의 물건은 아직 남았다. 어제는 중고등학생 시절에 모은 CD와 비디오 20장을 당근 마켓에 올렸다. 올리면서도 ‘과연 이걸 누가 보긴 할까?’싶은 것들이었다. 누가 신화 2001년 콘서트 실황을 보며, 누가 유승준 CD를 찾는단 말인가. 그런데 올리자마자 채팅이 4개나 왔다. (중고거래는 매번 할 때마다 유레카를 외친다. 모든 물건에 주인은 있다!)


옷장에 다 걸고도 남은 옷걸이 42개와 바지걸이 7개도 누군가 가져가시겠다며 손을 드셨다. 


비우는 것도 습관이다. 

이제는 화장품도 샘플 먼저 쓴다. 늘 본품부터 쓰고 샘플은 서랍에 박아뒀다가 버리기 일쑤였던 걸 잘 알기에. 나에게 온 물건들은 모두 주인을 찾아주거나 쓰임새를 찾아주고 싶다. 


짐을 비워내며 남과 비교하는 마음도 비워내야지. 

내가 원하는 삶을 줏대 있게 꾸려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그 자리에 채우고 싶다. 


+

요즘 나의 '버리기' 고민은 결혼식 폐백 때 받은 오리 인형 2쌍과 보자기에 싸여있는 각종 종이들이다. 우린 이미 6년 넘게 잘 살고 있는데 이게 무슨 의미 인가 싶다. 심지어 한 보자기 안에는 쪼그라든 대추까지 있었다… 이거 버릴까요 말까요?



지금 타는 중고차를 받으러 가고 5개월만에 처음으로 애월에 왔다



11월에는 줄을 30분 이상 섰는데 이번엔 줄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힙한 <노티드>



게눈감추듯 먹은 비싸고 맛있는 도넛들


제주에는 겹동백과 벚꽃, 유채꽃, 개나리, 목련까지 모든 꽃이 만개하고있다



바다와 라탄 그리고 책까지. 완벽하게 멋진 공간이었다.
오랜만에 남쪽에 간 김에 궁금했던 책방 <푸근한 곰아저씨>에 들렸다.
바로 옆에는 CF에 나왔던 <모카다방>카페도 있다


책방에서 책을 살까 고민하다 참고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왔다. 책도 점점 줄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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