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고 많은 사람들의 면면에 대하여
외근 중 장거리 이동을 하며 탔던 두 대의 택시가 있었다. 둘 다 퇴근길에 탔더니 차 안에서 한시간 반 이상을 꼼짝 갇혀있었다. 하도 차가 막혀서 나중엔 택시 기사님들과 수다를 떨기에 이르렀다. (원래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함)
하루에도 수십명의 사람을 만나고 상대하는 기사님들이 들려준 이야기 사이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있었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연도 있었다.
#1. 타자마자 나를 손녀뻘로 하대하는 아저씨.
"어디서 오는 길이고?"
"할아버지는 네비 이런거 안찍고 다닌다."
피곤해죽겠는데 자꾸 말을 거셔서 귀찮아지려하던 찰나, 알고보니 79세에 부인과 사별한지 30년이 지났고 아들 5명을 혼자서 훌륭하게 키워낸 분이었다. 집에가면 말할 사람이 없으시다는 말에 가슴이 찡-
강아지 3마리를 키우신다면서 시츄 친구들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시던 할아버지. 말할 사람이 강아지들밖에 없다며, 오늘 나올 때도 "뺑순아, 할아버지가 밥값 벌어올게!" 하고 나오셨다고 한다.
그 광경이 상상되어버려 가슴이 먹먹해졌다 .
일흔아홉이라는 나이에 매일 아침 의정부에서 안양까지 막내아들을 태워주신다는 아저씨.
얼마나 운전을 잘하시던지, 원랜 기술자였고 국회의원 어쩌고도 운전해줬었다고. 택시 운전은 오래 안하셨다는데 신기하게 네비도 안찍고 1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다던 동네 길은 어찌나 잘 아시는지 참 존경스러웠다.
할아버지 오늘 하루도 화이팅입니다!
#2. 꽉 막힌 외곽순환도로 위에서 만난 아저씨.
장례식장 가는 길이라 처음으로 가보는 생소한 광명-부평 루트로 택시를 탔다. 어디 빠질데도 없는 지옥같은 퇴근길의 외곽순환도로에서 결국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때는 겨울이라그런지 상가집을 참 많이 다녔는데 아저씨 왈,
"저기 중국에서는 하루에도 몇 천명씩 죽겠지요?"
하긴 5천만명의 좁은 땅덩어리에서도 이런데, 중국의 상조는 그 스케일부터 장난이 아닐 것이다.
만약 사업 아이디어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우리나라 보람상조같은 상조회사처럼 중국에서는 상조 비즈니스가 어떻게 형성되어있는지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늘 그렇듯 난 게을러서 생각만 하고 실행은 하지 않았다.
#3. 장거리는 많이 뛰세요?
궁금했다. 몇 십만원씩 택시비를 내고 지방을 내려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지.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사람들일까?
하지만 브릴리언트한 우리 아저씨는 또 우문현답을 해주셨다.
보통 그런 사람들 중에는 '투자자'가 많다고.
빨리 가지 않으면 천금같은 투자기회를 (예를들면 땅이나 건물) 날리게 생겼는데 택시비 몇십만원쯤이야!
그리고 이 중에는 중국인 투자자들도 있는데 그렇게 카지노를 많이 간다고 한다.
이 경우에는 카지노에서 택시비를 내준다고 하는데, 하루에 이들이 날리는 돈에 비하면 택시비 몇 만원쯤이야!
중국인 투자자(?)들은 보면 참 행색이 남루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한탕주의의 씁쓸한 모습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벌어가고있는 한국 카지노들이 많다고 하니 참 세상은 넓고 돈 벌 방법은 많다.
#4. 서울역에서 마주한 평창으로 가는 외국인들, 그들 귀에는 트로트가 어떻게 들릴까?
평창올림픽이 한창이던 2월, 서울역에는 마치 인천공항을 방불케 할 만큼 많은 외국인들이 있었다.
케이팝이 외국인들에게도 사랑받지만, 케이팝 못지않게 흔하게 흘러나오는 트로트도 사랑받을 수 있을까?
트로트 특유의 구성진 가락이 외국인들 귀에는 어떻게 들릴까? 미국의 포크송처럼 트로트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외국인 친구를 만나면 꼭 한 번 들려줘야겠다.
#5. 블루칼라의 위대함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갔던 한 업체. 이 곳에서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백발의 작업자 분을 만났다.
사무실에서 의미없는 자료를 만들며 엑셀 셀 하나, 파워포인트 폰트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화이트칼라보다 훨씬 더 위대해 보였던 순간.
직업의 귀천이 어딨고 계급이 어딨냐만은 화이트칼라가 마치 정답인냥 치부하는 건 세상을 너무 편협하게 보는 사고인 것 같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