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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만으로 슬퍼지는 마음

by 이진리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해 보았다. 현재 시각은 오전 일곱 시. 매일 이 시간에 일어나는 버릇을 들여서 그런지 이제는 휴대폰 알람을 설정해 두지 늘 이 시간에 눈이 뜨인다. 어제 조금 늦게 잤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몸이 가볍다. 자, 그러면 이제 일을 시작해 볼까.


노트북 화면과 한참 씨름을 하다 보니 슬슬 허기가 진다. 아침 겸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나는 혼자 사는 자취생이지만 나름대로 푸짐한 한 상을 차려 먹는 편이다. 밥 남기면 안 된다고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혼나며 배워서 그런지 내가 차린 1인분의 식사를 깨끗이 비운다.


그리고 다시 노트북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아뿔싸,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부족한 잠은 언젠가 빚처럼 밀려오기 마련이다. 어젯밤 조금 늦게 잔 게 문제였다. 딱 한 시간만 자고 일어날까. 그래, 시에스타라는 게 괜히 있겠어. 이런 생각을 하며 침대에 눕는다. 식곤증과 함께 몰려온 잠기운은 금세 온몸을 뒤덮었고 나는 눈을 감자마자 잠에 들었다.




위의 이야기는 프리랜서로서 출퇴근을 하지 않는, 집에서 일상의 대부분을 해결하는 내 삶의 일부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내 이야기가 아니다. 우선, 나는 개운한 몸으로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날 수 없다. 어젯밤 먹고 잔 불면증 약의 여파로 인해 다시 몽롱하게 남아 있는 잠기운, 약기운과 싸우는 게 나의 아침 일상이다.


저 이야기가 소설인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나는 낮잠을 잘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며칠 내내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거나, 수면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거나, 중간에 깬다거나. 이런 일들이 누적되어 쌓이면(나에게는 굉장히 흔한 일이다.) 낮 시간이 내내 괴로워진다.


딱 한 시간, 아니 삼십 분이라도 눈 붙이고 일어나면 훨씬 나아질 걸 알고 있지만 낮잠에 들 수는 없다. 여유 시간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할 수 있는 말은 내가 불면증 환자라서 그렇다는 것뿐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잠의 형태. 쪽잠, 낮잠 등을 포함한 모든 잠이 나에게는 어렵다.


요즘따라 나는 자주 깨는 문제 때문에 약 하나를 더 늘린 상태다. 이 약은 필요시 추가 복용을 해야 하는 약이다. 예를 들어 수면제를 먹은 지 네 시간이 넘었는데도 잠이 안 오는 상태라든가. 중간에 깼는데 다시 못 잘 것 같은데 먹는 약이다. 그리고 나는 요즘 이틀에 한 번씩 이 약을 먹고 있다. 특히 자꾸 깨는 것 때문에 그렇다.




요즘따라 다시 유럽 여행이 가고 싶다. 소위 말해 '쿨타임'이 다 찬 것이다. 저가 비행기도 알아보고 땡처리 항공권도 열심히 검색하고 있다. 몇몇 눈길이 가는 비행기 티켓들이 있어서 정확히 정보를 찾아보면, 당연히 이코노미석 가격이다.


나는 비행 공포증도 없을뿐더러 난기류를 만나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내식 퀄리티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코노미 좌석이다. 작년 9월, 프랑스로 가던 비행기에서 느꼈던 불면의 고통. 잠을 못 잔다는 그 고통을 넘어선, 고문에 가까운 신체적 괴로움. 그때 느꼈던 괴로움은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그렇기 때문에 난기류도 별로 안 무서워하는 걸 수도 있다. 내가 당장 힘들어 죽겠는데 난기류 따위... 이런 느낌이랄까.)


물론 비즈니스라는 선택지를 해결책으로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비즈니스를 한 번도 이용해 본 적 없기에 거기서는 잘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몸을 구긴 채 있어야 하는 이코노미 좌석보다는 훨씬 낫긴 하겠지.


그렇다면 나는 여행 경비 중, 비행기에서 가장 많은 돈을 태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꼭 가야겠냐라고 묻는다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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