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취업 도전기 #1] 6년의 직장 생활을 돌아보며

디자이너 - VMD - 브랜드 디렉터 - 콘텐츠 에디터 - 성공디렉터까지

by SY

인턴 포함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햇수로 6년 차이다. 그리고 나는 (윤석열 정부 전) 한국 나이 31세, 만 나이 30세가 되었다.


예전에 링크드인에 올려 두었던 나를 소개하는 글을 가지고 왔다.


✨ 누적 39억+ 전략 컨설턴트, 크라우드 펀딩 전문가

✨ 온오프라인 콘텐츠 전문가

✨ 프로젝트의 성공을 돕는 전략 기획가이자 마케터, 그리고 스토리텔러로 일하고 있어요.

✨ 좋은 콘텐츠가 적절한 마케팅을 만나 성공하는 것을 볼 때 가장 기쁩니다.

✨ 부캐는 브랜드 디렉터 겸 일러스트레이터


정말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나의 커리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단어를 꼽자면 바로 '콘텐츠 content'이다.


1. 콘텐츠융합디자인학부 (시각 & 제품 디자인 전공)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화장품 브랜드 ETUDE에서 Assistant VMD로 인턴 기회를 얻었다.


2. 이후, 크리스천 문화 예술 브랜드 예예시스터즈 (Yeyesisters)를 친언니와 함께 런칭했다. 와디즈를 통해 그림과 사진이 담긴 아름다운 성경책 <요한복음>을 세상에 선보였다.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디자인을”이라는 슬로건을 실천했던 프로젝트였다.


3. 크라우드펀딩 회사인 와디즈와 좋은 인연이 되어, 오프라인 사업팀의 초기 멤버로 참여했다. 성수동에 만들어진 오프라인 쇼룸&스토어 <공간 와디즈>의 전시 기획과 영업을 맡았다. 브루클린과 비슷한 성수동,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팝업 스토어가 열리는 그곳에서 보낸 2년. 사람들의 발걸음을 부르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공간에 어떤 콘텐츠를 담아야 하는지 배운 시간이었다. 앞서가는 감성을 지니고, 고급스럽거나 새로운 취향이 공간이라는 옷을 입는 그곳에서 나의 오감은 쉴 틈 없이 스펀지처럼 새로운 것들을 빨아들였다.


공간 와디즈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굴러가게 될 때 즈음, 운영성 업무가 주를 이루게 되자 회사 생활에 권태기가 찾아왔다. 회사에는 내가 기획력이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니, 새로운 팀으로 옮기고 싶다고 이 팀장님께 말씀을 드렸다.

나를 콘텐츠팀에 보내주는 게 회사 차원에서 이득이 될 거라고 부대표님께 말씀해 줬던 박 팀장님. 지금까지도 정말 감사한 사람이자 인생의 귀인이다.


4. 그렇게 얻게 된 포지션이 바로 콘텐츠팀의 에디터였다.

11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팔리는 콘텐츠가 무엇인지를 배우고, 카피 라이팅 기술을 익혔으며, 타깃을 철저하게 분석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과 이미지를 제작하는 훈련을 받은 시간이었다. (내가 한국어 실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업무 특성상, 창의성과 기획력을 맘껏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정해진 마감 기한에 맞추어 일을 하다 보니 새벽 퇴근이 매우 잦았다. 어떤 날은 새벽 4시에 퇴근한 적도 있는데, 오전 10시에 전사 회의가 있어서 원격근무가 불가하여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해야만 했다. 서울에서 판교까지 택시를 타고 싶었는데, 대중교통 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결국 네 번을 갈아타고 경기도 마을버스를 탔는데 눈물이 나는 걸 참을 수가 없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일과 삶의 분리(워라밸)를 외치다가는 주니어 레벨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정말 귀한 시간이었다. 내가 정말 존경하는 최 팀장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실무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명확하고 깔끔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의사소통 능력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180도 뒤집어준 분이다. 일과 삶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것. 인공지능이 언젠가 많은 직업을 대체할 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 될 거라는 이야기. 그렇게 하려면 일과 삶을 분리할 게 아니라,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대체불가한 인재가 되라는 격려까지.


그리고 회사에서는 아무리 하하 호호-웃더라도, 회사는 늘 내가 하는 일이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다는 냉정한 현실까지. 그분께 모두 배웠다. 일을 잘하면 내 방식이 정답이 되고, 나의 입지가 더 커진다는 것도 알려주셨다.


더 나아가, 실무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명확하고 깔끔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의사소통 능력을 아낌없이 가르쳐주셨다. 그런데, 너무 잦은 새벽 근무가 괴롭기도 했고, 삶을 갈아 넣으며 상세페이지를 제작하는 일이 나와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더불어 상세페이지 콘텐츠를 아무리 뛰어나게 잘 만들어줘도, 클라이언트 (메이커)가 부스팅을 하지 않으면 매출이 정말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매출이라는 숫자적 성과에 생각보다 동기부여를 많이 받던 내게는 꽤나 괴로운 일이었다.


콘텐츠 자체는 그 특성상, 매출 등 숫자지표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즉 내가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얼마나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내 안에 답답함으로 다가왔다.


5. 회사에서도 내가 가진 기획력과 영업력을 바탕으로 직접적인 매출에 기여할 수 있는 포지션으로 이동하길 원했다. 그래서 맡게 된 일이 성공지원팀에서의 성공디렉터(Success Director, SD)였다. 와디즈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는데, 그중 잠재력이 있는 프로젝트의 성공을 돕기 위해 페이스메이커로 전략을 컨설팅해 주는 직무였다. 와디즈에 찾아온 메이커님들이 더 성공적인 매출을 낼 수 있도록, 수수료를 받고 와디즈 스토리 (상세페이지) 피드백, 그리고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일이다.


나를 믿고 데려와주신 장 팀장님께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인 출판/문화예술 프로젝트를 내게 주로 배정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내가 맡은 프로젝트들의 월 매출을 1억, 2억, 4억, 9억까지 만들며 나는 폭풍 성장했다. (케이스 스터디) 그리고 1년 만에 담당 프로젝트의 누적 매출은 39억을 넘기게 되었다.

Screenshot 2024-11-24 at 19.08.16.png 성공디렉터로 컨설팅했던 프로젝트들


그리고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프로젝트들 (도서/전자책/클래스/문화예술 등)의 성과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전문 디렉터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나의 직무에는 영업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 회사에서 영업이 포함된 직무는 '프로젝트 디렉터 PD'라 부른다.) 성공디렉터는 와디즈에 알아서 찾아오는 메이커들에게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나는 영업력을 살려서 직접 메이커들을 와디즈로 이끌어 오기도 했다. 또한, 일부 프로젝트에 한해서는 제품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기도 하고, 장기적인 비즈니스 모델 구축을 위한 퍼널 설계 등을 통해 수수료를 업셀링하는 전략까지 실행했다. 이를 위해서 마케팅 관련 서적을 꾸준히 읽고, 거기서 배운 인사이트를 실무에 적용하고 테스트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알아보는 능력과, 고객에게 잘 팔기 위해 필요한 모든 스킬 셋을 익히는 시간들이었다.

카피라이팅, 상세페이지 기획, 마케팅 (광고 캠페인 집행, 광고 소재 제작), 데이터기반 의사결정, 퍼널 설계, 팔리는 제품을 알아보는 능력, 정교한 타겟팅, 업무 효율화 등 보물로 얻은 자산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가장 감사한 것은 바로 좋은 동료와 고객을 얻었다는 것이다.

4년 2개월 동안 몸 담았던 와디즈를 떠나며 적었던 이메일의 내용처럼, 정말 스마트하고 인품이 뛰어난 동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말 귀도 잘 못 알아듣고, 일머리도 없었던 나의 주니어 시절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던 수많은 동료들과 팀장님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그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내게 명확하고, 친절하고, 빠른 의사소통을 해주어서 너무 든든했다고 말씀 주신 고객(블레어 종원 메이커님)이 있다. 링크드인에 추천서까지 써 주신 분인데,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름 뒤에 붙던 '프로'라는 직함이 언제나 부담스러웠는데,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몫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이 들게 될 때가 되어서 감사했다.

그리고 2024년 여름, 나는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에 가지고 있던 꿈을 꺼내주기 위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의 젊은 날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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