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해외 학위도 없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지만

[영국취업도전기 #2]

by SY

조언과 낙담 사이 그 어딘가

영국으로 오기 전에도, 이곳에 와서도 정말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다.

"한국인이라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영국에서 학위가 없어서 취직하기 어려울 거야. 면접 기회를 얻는 것조차 아마 어려울걸. 경력을 인정받기는커녕, 인턴 자리도 구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이는 내가 영국에 오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으로 가지 않은 이유

사실 처음에는 미국을 가려했었다. 미국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한국에서 미국식 커리큘럼을 따르는 고등학교를 다니기도 했고, 친구들도 있는 데다가, 정서적으로 훨씬 가까웠기 때문이다. 작년 10월에 휴가 겸 미팅으로 뉴욕에 갔던 것도, 사실 내가 이곳에서 살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신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2023년도 이야기인데, 아마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 달라질 수도 있다. 특히 대학에 학비를 지불하는 청년들에게 영주권을 주려는 움직임이 있는 듯해 보였다.) 나는 분명 내게 일자리를 준다면, 잘할 자신이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자리 잡으려면, 일할 권리가 보장된 신분의 문제가 너무 큰 걸림돌이었다.

바로 미국으로 이직하려면, J-1 Trainee Visa로 시작했다가, 스폰서십을 받고 장기 체류해야 영주권을 얻을 수 있었는데, 보통 한인 회사에서 한국어로 일하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훨씬 더 일하는 문화와 복지가 좋은 한국 내 스타트업에 남는 게 더 낫지, 굳이 뉴욕까지 가서 그렇게 일하는 것은 좋은 선택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남은 선택은 대학원이었는데,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배고픔을 이길 수 있는 정신을 가지고 다시 학생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안정된 직장 생활이 주는 여유로움을 느껴보지 못했던 20대 초중반이라면 대학원을 갔겠지만, 그때는 학비가 없었다.) 게다가 H1B Visa가 나오는 전공 중 내가 택할 수 있는 건 프로덕트 디자인이었는데, 이렇게 큰돈을 주고 배워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 때 서비스 디자인으로 졸업작품까지 만들었던 터라, UX를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실무 경력이 없기 때문에, 심화 과정을 들을 수 있는 대학원은 문턱이 높았다.) 결국 네트워킹과 취업을 위해 대학원을 가야 하는 건데, 이건 영주권을 얻기 위한 투자 비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으로 오게 된 이유

어떻게 해야 할지 치열한 고민을 하다가, 영국 학교 학위 없이 마케터로 취직한 분들의 글을 만나게 되었다. (오후세시, 런던마케터, 그리고 이다혜 작가님까지 정말 감사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기회를 얻은 분들의 이야기에 많은 용기를 얻었다.

내 머릿속에 불현듯 지나간 생각은 "우선 런던에서 바로 다국적 기업에 취직한 다음에, 미국 지사로 발령시켜 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면 대학원 학비도 안 들고, 미국에서 낮은 연봉으로 고생할 필요도 없잖아. 그리고 미국으로 가지 못하게 되더라도, 해외 시장을 보고 싶다는 꿈을 영국에서 이룰 수 있네!"였다.

(더불어 10년 전의 내게는 디자인의 상징과도 같았던 런던에 방문하고 싶어 했다. 영국식 영어를 동경하기도 했었고. 다만 상황이 안 돼서 결국 오지 못했지만.)


요약하면,

1. 서울과 비슷한데 (운전면허가 없기 때문에 대중교통이 발달해야 함), 영어로 일할 수 있는 곳

2. 영어를 사용하는 고객이 있는 해외 시장을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는 곳

3. 대학원 졸업장 없이도 취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

을 찾았고 거기에 들어맞는 곳이 바로 '런던'이었다.



한국인에, 영국 학위도 없으면 서류 합격은 불가능할까?

답은 "가능하다."

게다가 개발자나 디자이너 직군이 아니어도 면접 제안이 온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오늘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여전히 나도 구직 시장에서 고군분투 중이지만, 누군가에게 나의 글이 도움과 격려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흐릿한 기억이 되기 전에, 뚜렷한 글자로 남겨본다.)


나는 영업, 마케팅 위주로 넣다가 너무 거절 메일만 받다 보니 낙담이 되어 이번주부터는 디자이너 직군에도 이력서를 넣고 있다. 그러다가 오늘 저녁에 1곳에서 전화 면접을 보자는 제안을 받아서, 너무 감사했다! 물론 최선을 다하여 면접에 임하겠지만, 최종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기회가 왔다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했다.


약 두 달 반 동안 35개 정도 지원서를 냈는데, 이 중 2군데에서 면접 제안이 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모두 영업/사업개발 분야이다. 무조건 닥치는 대로 영혼 없이 많은 지원서를 제출하는 것보다, 전략적으로 자신과 맞는 기업을 찾은 다음, 직무에 맞게 영혼을 담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Quality is over quantity.) 그리고, 개발자나 디자이너, 게다가 마케팅 직군이 아니어도 충분히 면접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도 발견했다.


한 군데는 10월 말 출국 직전에 화상 면접이 잡혔었는데, 사실 대형 출판사의 영업팀 이사 (Head of Sales) 자리였다. 그리고 오늘 연락을 준 회사는 예술가들과 협력하며 온라인 환경에서 미술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내가 지원한 직무는 사업개발 & 아티스트 관리자다. (567명이 지원했던 포지션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면접을 보려 한다.



합격을 부르는 영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작성해야 할까

이 주제로 글을 쓴다면 책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내 경험을 토대로 짧게 이야기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충분히 고민하기

2. 아무 회사나 넣지 말고, 잘하는 것을 더 뾰족하게 살릴 수 있는 회사 찾아보기

- LinkedIn, Reed 활용

- ChatGPT 활용해서, 원하는 산업 분야의 직업 공고가 올라오는 커뮤니티 및 리크루팅 에이전시 사이트 찾기 (나 같은 경우는, 출판 분야 공고가 LinkedIn에 많지 않았는데, 이 방법을 통해서 빠르게 출판 산업 공고들을 접할 수 있다.)

- LinkedIn Premium을 결제한 다음, 경쟁률이 낮으면서 나와 잘 맞는 곳에 전략적으로 지원한다. (예를 들어 주니어 마케터는 3천 명 이상이 몰리기도 한다. 그런 곳은 회사가 좋아도 그냥 지원서를 넣지 않았다.. 그 시간에 30명 정도 지원한 그래픽 디자이너 포지션에 지원했다.)

3. 모집 공고에 맞게 매번 이력서 (Resume / CV)와 자기소개서 (Cover Letter) 맞춤으로 다듬어서 제출하기

- 복사 붙여 넣기는 절대 안 된다. 시간만 버리게 된다.

- ChatGPT 활용하면 시간을 아낄 수 있다. 모집 공고와 함께 ATS (Applicant Tracking System)에 합격하기 위해 주요 키워드를 모집 공고에서 뽑아달라고 요청한다. 그다음 본인의 이력서 초안을 올리고, 해당 키워드를 넣어 다듬어 달라고 한다. 이때, 꼭 인간지능으로 잘못된 내용 없는지 확인하고 본인이 다듬어서 최종본을 완성해야 한다 (꼭 이상하게 짜깁기하거나, 숫자 성과를 임의로 조정하는 경우가 있다.)

4.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한국인이라서 1차 서류에서 불합격하는 게 아님을 기억하기

- 서류에 적힌 내용이 ATS를 통과할 만큼 전략적으로 쓰이지 않았거나, 내 경력이 그 회사와 잘 맞지 않는 것일 뿐이다.

- 한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탈락하는 건 아닐까라는 미신 (myth)를 떨치는데 나도 꽤 시간이 걸렸다. 여기서 15년 간 살아온 이란계 프랑스인 집주인아주머니도 내 영어실력 (생활하는 데 불편함 없을 정도이지, 완벽하진 않다)이 서류 합격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처음엔 안 믿었다.)



광야와 같은 시간을 지혜롭게 견디는 법

이곳에서 나는 친구도 없이 1달 반 정도를 혼자서 지냈다. 그나마 마음이 따뜻한 집주인아주머니를 만나서, 말동무와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집에 함께 있었지만, 내 또래 친구를 사귀기 시작한 건 2주도 채 되지 않았다.


영국에 오기 전, 하나님께서 나에게 확신을 주신 말씀이 있다.

창세기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룰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신명기 1:29-31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그리고 "사랑한다 내 딸아. 네게 필요한 모든 것을 내가 이미 다 영국 땅에 준비해 놓았으니, 믿음으로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면 돼."라는 마음을 주셨다.


이 말씀을 붙잡고 런던에서 지낸 지 55일이 되었다. 광야와 같은 시간이지만,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내게 구직 상황을 물어볼 때마다 내가 했던 이야기가 있다.

"The job market in London is far more competitive than in Seoul. But you know what, this is a great opportunity to trust in God's timing."

"런던 취업 시장은 서울보다 정말 치열한 것 같아. 그런데 이 시간은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정말 귀한 시간이라고 생각해."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해 약속의 땅에 금방 들어갈 수 있었지만, 하나님을 불신했기 때문에 무려 40년 동안 광야를 빙글빙글 돌았다. 이곳 런던에서, 불확실의 한가운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영국 생활을 생각할 때, 지금 이 시간이 정말 많이 그리울 것 같다. 물론 나도 마음이 하루에도 왔다 갔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하며 다시 마음을 붙잡는다.


서울에 남아있었다면 절대 경험할 수 없었을 거다. 사랑하는 가족들,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 내게 달려와 줄 수 있는 친구들, 나를 무한히 지지해 주는 교회 식구들, 마음 편히 누울 수 있는 따뜻한 우리 집, 주말에 함께 캠핑까지 갈 정도로 사랑스러운 직장 동료들까지. 사실 삶에 필요한 모든 자원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이렇게 간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런던에서는 집을 구하는 것부터 (하필이면 내가 입국한 시기가 엄청난 비수기였고), 교회를 찾고, 친구를 사귀고, 직장을 구하는 것까지.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단 하나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어제밤에도 자기 전 취업 공고를 들여다보며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저 이제 진짜 일하고 싶어요.." 그리고 내 마음에 떠오른 질문이 하나가 있었다. "만약 당장 다음주부터 취직하게 되어 일을 시작하게 된다면 아쉬운게 있을까?"였는데, 답을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하기를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 박물관도 한번씩은 다녀왔고, 이제 진짜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내 작은 읖조림까지 다 듣고 계셨다. 오늘 저녁에 면접 제안을 받았으니까 말이다.



영어가 모국어도 아니고, 해외 학위도 없지만
영국에서 분명 취업할 수 있다.



나도 취업하는 그날까지, 또 이곳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충분히 완수하는 그날까지, 다시 마음을 잡고 한 걸음씩 내딛어야지!


p.s. 가족들과 친한 친구들이 제 근황을 물어볼 때가 있어 공유하기 위해 브런치를 막 시작했는데요. 막상 저를 모르는 사람들도 제 글을 읽어줄까 싶었는데, 읽어주시고 하트를 눌러주시는 모든 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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