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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혁 Jan 07. 2022

이분(二分)

dichotomization

사람은 슬픔을 포용하는 자와 회피하는 자로 나눠진다.


포용하며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과,

포용하며 비관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회피하며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과,

회피하며 비관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복잡한 현상이나 상태의 분류 시, 이분법은 편리하다. 이야기는 가장 단순한 primitive causality로 시작된다. detail은 recursive 한 binary branch들로 드러난다. 랜덤 한 관찰들이 자신만의 이야기 흐름이 되어간다. 이런 생리 작용은 호기심의 일시적 해소와, 미지(未知)가 자극하는 unpredictability의 공포를 제어할 수 있게 해 준다.


공포를 생존 본능의 과다한 히스타민 반응이라 전제해보자. 공포에 떠밀린 체 애매한 모순을 앉고 시작하는 blinded 이분은 망각의 각성(覺醒)이며, 또한 가장 본능적인 방어체계 일지도 모른다.


완성을 향한 여정은 용감한 미완의 첫 발걸음이다. 그 여백의 에러들은 또한 미완의 미학이 된다.


나누는 과정에서 간과되는 미완의 속성들을 염려한다면, 흡수해주는 것들을 생각해보자.


hypothetical 한 양극단 흑백 bipolar의 요소들의 지속적 이분(further recursive branching)은 불확실성의 체계적 감쇄를 보장한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이런 이분적 생각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구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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