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4.
처음 발작이 있던 날, 병원에선 나이가 많아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다. 나는 습관처럼 봄이의 코에 나의 코를 맞대고 발바닥을 어루만졌다. 코는 여전히 촉촉했고 발바닥은 말랑말랑했다. 그저 일시적인 발작이었을 뿐이라고, 봄이는 누구보다 오래 살아 TV에도 나올 강아지가 될 거라고, 그렇게 믿어보려 했다.
2024.1.16.
세 번째 발작이 있던 날, 아무리 마사지를 해도 경련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목덜미는 돌덩이처럼 굳어갔고 다리는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져 움직이지 않았다. 딱딱 소리가 날 만큼 이빨이 부딪쳤고 거품 같은 침이 계속 흘러내렸다. 그러다 보라색으로 변한 혀가 입 밖으로 축 늘어져 나왔다. 어쩌면 오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만이라도, 그 회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봐 주길 바랐다. 몇 시간 같은 몇 분이 지나고 발작은 멈추었다. 봄이는 흥건히 묻은 분비물도 어쩌지 못한 채 가만히 누워 거친 숨만 내쉬고 있었다.
2024.2.19.
하루 세 번 발작을 일으킨 날 밤, 봄이의 남은 시간을 봄이가 좋아하는 시간들로 채워주고 싶어 산책을 나섰다. 몇 달 전만 해도 하네스만 꺼내면 줄을 물고 폴짝거리며 뛰어다녔는데, 그날 봄이는 가만히 앉아 하네스가 채워지길 기다렸다. 밤공기는 시원했고 산책길엔 은은한 풀 향기가 번졌다. 코를 풀밭에 박고 있는 강아지, 다른 강아지를 향해 왈왈 짖는 강아지, 줄이 팽팽해질 만큼 견주를 끌고 앞서 달려가는 강아지. 봄밤의 산책을 즐기는 모습들이 곳곳에 있었다. 산책하기 이토록 좋은 날, 봄이는 몇 걸음도 떼지 못하고 차가운 돌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줄을 살짝 당겨봐도, 쪼그려 앉아 이름을 불러봐도 걸음을 떼지 못했다. 나는 봄이를 품에 안고 대신 산책길을 걸었다. 민들레 홀씨만큼이나 봄이가 가볍게 느껴졌다. 온기까지 붙잡고 싶은 마음에 더욱 끌어안은 채 긴 산책을 했다.
2024.3.22.
기도가 생겼다. 봄이가 아무도 없는 때, 혼자 고통스러워하다 생을 마감하지 않기를. 봄이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꼭 그 곁을 지킬 수 있기를.
2024.4.8.
완연한 봄이다. 마른 가지에 푸른 잎이 돋고 꽃이 달렸다. 계절의 순환은 영원해서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계절도 있다.
2024.4.18.
언젠가 봄이를 먼저 보내게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늘 내일을 약속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되고 나서야, 산책을 미뤘던 날들이 떠올랐다. 오늘 밤은 넘길 수 있을까. 더 고통스러운 내일이 되지는 않을까. 웃는 얼굴로 보내주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질 않는다.
2024.4.19.
봄이의 숨결에 섞인 암모니아 냄새가 점점 짙어졌다. 낯선 냄새가 두려웠지만 얼굴을 더 가까이 붙여 숨을 나눠 쉬었다. 코를 맞대고 잠들던 날들의 평온함이 그리웠다.
2024.4.21. 3:34
다섯 번째 혈변을 했다. 경련을 일으킬 힘조차 남지 않았는지, 1분마다 잠깐씩 앞다리를 떨었다. 그리고 봄이가 떠났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늘어진 몸을 쓰다듬으며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했다. 봄이가 기억하는 나의 마지막 얼굴이 슬픔이 아니기를 바랐다. 봄이는 나의 어떤 얼굴을 보았을까. 떨어지는 눈물은 무지개다리 위에 빛나는 별이 되었기를 바란다. 이제는 아픔도 슬픔도 없는 곳에서 편안하기를.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내 모습이 많이 변해있을지라도 내게 달려와 코를 맞대어 준다면, 우린 다시 꽃내음 가득한 봄날로 돌아가 기나긴 산책을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