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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May 04. 2022

아들의 유치원 생활

THE KISSING HAND
너의 손등 위 엄마의 따뜻한 입맞춤은
항상 너와 함께 할 거야
손을 씻어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단다.


큰 아이는 프라이머리 스쿨 1학년, 둘째 아이는 프리스쿨로 입학을 하게 되어 준비물을 챙기러 마트에 들렀다. 준비물이라고 해봐야 더운 나라답게 물통이 전부였다. 처음이라 물통도 새것으로 준비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학교에 갔더니 현지 아이들은 빈 페트병을 가져온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내일 새로운 학교에 간다는 설렘과 새로 산 물통 하나에 신난 아이들을 뒤로 나는 그동안 하지 않았던 아이들의 적응이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일 아이들이 잘할 수 있을까? 영어도 하나도 못 알아듣는데 어쩌지?라는 걱정이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그제야 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처럼 나 또한 마냥 설레기만 했었나보다.


 좋게도 4 어린 아들의  번째 유치원은 현지에서 보육교사 자격증을  유치원을 운영하시는 한국인 부부셨고 태권도 사법님이셨으며 따님도 유치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침마다 영어 친구들만 있는 유치원은  가겠다고 우는 아이를 떼어놓기가 힘들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처음인 우리에게 한국인이 계시다는 것은  힘이 되었다.  낯가림이 있는 아들은 선생님과 친구들과 활동하는 것은 물론이고 밥을 먹는 것도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국인 선생님이 살살  달래어 겨우 밥만 먹였고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아이들이 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저  시간을 견뎌내 주는 아들이 고마웠다. 유치원이 끝나고 집에 오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그렇게 나의 손을  잡고 피곤한듯 낮잠을 청했다.


이후 나에게 현지인 친구가 생겼고 숙소의 위치로 인하여 현지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사립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아들의 PRE-SCHOOL 역시 한국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겨우 아이를 달래어 떼어놓고 내 일정을 위해 이동을 하는 택시 안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엄마를 찾으러 간다고 울고 발버둥을 치며 유치원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는 다급한 전화를 받고 택시를 돌리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어떤 날에는 뉴질랜드 선생님과 울면서 서 있는 아이를 보고 너무 화가 나서 낮은 목소리로 아이를 다그친 적이 있다.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지만 화내는 것은 짐작할 수 있을 터. 뉴질랜드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진지하게 아이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으니 당분간 학교를 보내지 말고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하루라도 결석을 허용하면 갖가지 핑계를 대며 내일도 또 내일도 안 가겠다고 할까 봐 매일 아침저녁으로 아이 눈치를 살피며 달래고 달래서 열심히 보내고 있었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게다가 나의 일정도 계획해서 왔는데 다 취소해야 하나 예약해 놓은 것은 다 환불이 될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피지에서의 일정은 피지 학교의 한 학기인 10주로 처음 한달살이 때보다 기간이 길어졌다. 짐도 많아져 책은 E-BOOK 리더기를 구입해서 온라인 서점에서 그때그때 읽고 싶은 책을 구입하여 읽는 여유가 여기서는 가능했다. 아이들에게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는 습관은 잘 유지를 하고 있었기에 좋은 책 몇 권은 아무리 짐이 많아도 꼭 챙겨서 다녔다. 그중에서 "THE KISSING HAND"는 학교 가기 싫은 아이를 위해 꼭 챙기는 일순위 책이었다. 밤마다 이 책을 읽어주며 아이와 손가락을 걸며 내일은 학교 안 가겠다고 하지 않고 잘 가자고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다. 아이를 데리러 갈 때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살금살금 걸어서 바깥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를 찾는다. 껌을 씹으며 흙을 파고 있는 날도 있고, 잘 나가지 않는 세발자전거를 낑낑거리며 끌고 가는 날도 있는데 아이는 늘 가방을 메고 있었다.


"더운데 왜 가방을 메고 있어. 벗어놓고 놀지 그래."

"엄마가 사준 가방이라서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서 항상 매고 있는 거야."


이 뜨거운 여름나라를 즐기고 싶어 내 일정을 양보하지 못하고 아이를 밀어 넣듯 유치원에 보내는데 나는 너무 나만 생각하는 못된 엄마인가 라는 생각에 아이의 대답을 듣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한국은 어린이집에서부터 소속 반과 담임 선생님이 정해져 원에 들어가면 입구에서부터 바로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반으로 들어간다. 담임 선생님의 리드 아래 자신의 교실 안에서 주로 활동을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담임 선생님이 계시지만 확실히 구분이 가지 않고 전체적으로 아이들을 봐주시는 분위기이다. 아이가 원에 들어가면 실내든 야외 마당이든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하며 논다. 가방을 벗어던지고 자전거를 타든 실내로 들어가서 그림부터 그리든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은데로 한다. 한쪽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선생님께서 책을 읽어주시는데 그것 또한 듣고 싶은 아이는 선생님 주변에 앉아 들으면 된다. 한국 유치원과 다른 분위기에 낯가림까지 있는 아들은 더욱 어색해하고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항상 유치원 입구에서부터 쭈볏쭈볏 들어가기를 힘들어했다.  


프리스쿨(어린이집)에서 킨더가든(유치원)으로 옮기고 나니 가기 싫다는 말도 조금씩 줄어들고 오늘 루카스랑 놀았어. 오늘 조슈아랑 놀았어 라며 이야기해주는 날에는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프리스쿨에서부터 같이 다니던 몇몇 아이들과 프라이머리 스쿨(초등학교) YEAR 1을 다니게 되었다. 누나와 둘이 똑같은 교복을 입고 등원하는 모습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고 그때까지 피지에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는데 드디어 그날이 왔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열심히 찍어댔다. 아들도 프라이머리 스쿨에 들어가니 글자나 노래와 율동을 배우는 시간이 늘어나서인지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불러주며 나를 가르치느라 바빴다. 그리고 체육복을 입고 등교한 어느 날 아들이 건넨 말은 아직도 내 귓가에 남아있다.



엄마 이제 가도 돼

엄마 가도 돼 라며 인사해 주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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