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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May 04. 2022

윤아의 첫 번째 친구, 엠마

엠마야, 한국 갔다 온다고 했잖아.
기다려, 꼭 갈게.




등교 하루 전날 방문한 첫째 윤아의 학교는 우리나라 70~80년대보다 못해 보이는 시골 학교 분위기였다. 다 까진 시멘트 바닥에 책상, 의자도 딱 그쯤의 모습이었다. 운동장이라기보다는 무성히 자유롭게 자란 잔디밭에 망고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것은 2층짜리 낮은 건물에 담벼락 없이 뻥 뚫린 자연친화적인 환경 덕분일까.


한 달 동안 다닐 공립학교지만 간단한 서류 작성이 필요해 사무실에 들렀다. 홈스테이 주인 분과 그분의 직원이 함께 해주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온 것 같은 이 낯섦이 무섭진 않았다. 단기간 지내는 거라 교복을 빌릴 수 있는지 물었다. 머리가 엉덩이 아래로 내려오는 인디아 여직원은 시종일관 퉁명스러웠지만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앉은자리의 바로 옆 바닥에 있는 종이 상자에 손을 넣어 휘휘 돌려 무언가를 찾더니 구깃구깃한 원피스 교복을 하나 꺼내어 탁탁 털며 건네준다. 조금 떨어져 서 있었는데 옷에서 나는 땀 냄새인지 쉰 냄새인지 모를 쾌쾌한 냄새가 코끝까지 닿는다.


한국보다 30분 이른 등교를 준비하고 교복을 입고 점심 도시락 가방을 들고 나온 아이는 학교에 도착하도록 담담해 보였다. 아이가 이 낯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학교에 도착하는 내내 마음을 졸인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영어를 알아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한국인은 한 명도 없는 현지 인디아 공립학교에 아이를 덩그러니 떨어뜨려 놓으려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오전에 나의 일정도 있었기에 잠시 잊을 수 있었지만 이내 아이가 걱정되어 점심시간에 학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시간 동안 엄마한테 전화하고 싶은데 하지도 못하고 혼자 울고 있는 건 아닌지, 핸드폰을 하나 사줄걸 그랬나 별 생각을 다 하며 학교로 걸음을 재촉했다. 교실이 외부로 연결되어 있어 창문 너머로 아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창문 넘어 만난 딸아이는 양 볼이 복숭아처럼 발그레 달아올랐을 뿐 듬성한 앞니 두 개를 환하게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니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고 그제야 아휴 하고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엄마 쟤들 좀 봐 하하"

"윤아야 괜찮아?"


다행히도 내가 무작정 찾아간 시간은 쉬는 시간이었고 아이들은 그 나이에 맞게 장난을 치며 몸으로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윤아는 친구들을 보며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마음을 다독이고 사진을 찍느라 바쁜 외국인 엄마에게 담임 선생님은 쿨하게 다 같이 나가서 사진 찍고 오라고 하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대부분 인디아, 피지언이었다.  틈에 둘째 키만 하고  단발을  아시아 아이가 눈에 띄었다.  혹시나 한국인 일까 싶어 선생님께 살짝 물어보니 가족의 사업차 오게  중국 아이였다.   영어를 못해서 인지 생김새가 비슷해서 인지 점심시간마다 싸간 것도 나누어 먹고 동전  개를 가져가는 날이면 주전부리 파는 인도 아저씨의 매대에서 둘이 불량식품이며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누어 먹으며 친해졌나 보다. 조금 픽업 시간이 늦어진 어느  교실 안을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고 가방도 없었다.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며 둘러보니 잔디밭  끝쪽에 뜨겁고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햇살을 그대로 받고 있는 망고 나무 아래에 가방을 모두 내려놓고 종례를 하고 있었다. 망고 나무 아래에서 종례라니! 멀리서 보고 있자니 어느 시골 배경의 옛날 영화 같아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아이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려 할 즈음 두리번거리며 아이를 찾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한 여자 아기가 옆구르기를 하며 나를 향해 굴러오고 있었다. 몇 번을 굴렀는지 똑 단발은 엉클어지고 교복 원피스 속 꼬질꼬질한 속바지는 엉망이 되어 있고 손톱은 까무잡잡한 흙 때가 깊숙이 자리 잡은 엠마가 아닌가!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공간만 보이면 옆구르기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눈부신 햇살 아래에 반갑게 나를 보며 굴러오는 그때 엠마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써니 꼬우" (윤아야, 가자!)

"써니 컬러" (윤아야 크레파스 빌려줘!)

"써니 아이스크림 꼬우" (윤아야,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가자!)


영어를 못하는 둘은 이 정도의 단어만으로도 서로를 많이 의지했나 보다. 엠마가 아파서 결석한 어느 날 아이는 엠마가 위층에 있는 친언니 반에 간 줄 알고 쉬는 시간마다, 점심시간에는 밥도 먹지 않고 엠마를 찾아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하교 후 나를 보자마자 엠마가 안 왔다고 들려주는 아이의 하루 이야기를 들으니 영어를 못해서 선생님께 물어보지도 못하고 찾아만 다녔구나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해 주고 있는 아이가 무척 고마웠다.  


한국으로 돌아와 다음 피지 여행을 계획하고 있을 때 아이는 엠마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부탁하듯 이야기했다. 영어 스펠링을 물어가며 정성스럽게 엠마에게 편지를 쓰고 늦게 들어온 아빠를 졸라 엠마의 선물로 연필깎이를 사야 한다고 당장 사러 가자고 때를 쓰기도 했다. 한국의 초등학교 1학년이 되고 아이는 수업시간에 자주 엠마 생각이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이전에 첫 학교 생활에 정을 주고 의지한 첫 번째 친구여서 더 애틋한 기억으로 남아 있나 보다. 언젠가 어린 시절 친한 친구와의 이별을 겪었던 기억이 아련히 살아나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울컥한 마음이 올라왔다.



우리가 한국으로 떠난 후 엠마 역시 써니를 찾아 학교 이곳저곳을 다니며 친언니에게 써니는 어디에 있냐며 울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엠마야, 한국 갔다 온다고 했잖아. 기다려. 꼭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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