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는 작가분이 쓴 와인 칼럼이었는데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와인을 마시지 않는 프랑스 사람들이 대폭 증가했다."이다.
칼럼의 내용을 조금 더 소개하면, 보르도에 있는 4000여개의 포도 농장의 1/3이 포도 재배 자체를 이어가질 말지를 고민해야 할 만큼 경영난이 심각하며, 팔리지 않는 빈티지 와인들을 하수도에 버리거나 재고로 쌓여만 가는 레드 와인을 화장품 제조용 알코올로 바꾸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와인 매니아로서는 아까울 뿐이다).
소위 와인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고급 와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프랑스 와인업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자국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이 높은 프랑스 국민들이 그 오랜 세월동안 그들의 식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던 와인에게 등을 돌렸다니! 선뜻 믿어지지 않는 내용이었고 와인을 공부할 때 교재에서 프랑스가 차지했던 방대한 양(프랑스는 각 지역을 큰 챕터로 나누어 공부하는 몇 안 되는 와인 산지이다)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어리둥절해지는 기사였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프랑스 와인이 위기를 맞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프랑스 국민의 와인 소비량 자체가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핵가족이 늘어서 가족끼리 모여 와인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나누는 경우도 많지 않고, 젊은층이 와인보다 저렴한 맥주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프랑스의 와인값은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프랑스 와인들의 가격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데일리 테이블 와인으로 많이 마시는 '뱅 드 프랑스' 등급의 와인들은 당연히 가격이 참 착하고, 보다 상위의 등급들, 혹은 유명 생산자의 와인들도 (현지이므로) 입 딱 벌어지는 국내 판매가보다는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대이다. 최근에 프랑스 고급 백화점내 와인 매장에서 판매하는 와인들의 가격에 대한 영상을 보았는데, 우리나라 바틀샵에서는 40-50만원대에 팔리는 고급 샴페인이 스트리트 샵도 아닌 백화점에서, 그것도 '고급' 백화점에서 2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었으니 그런 와인을 눈으로만 마시는 나같은 서민의 입장에서는 참 부러울 뿐이다.
이처럼 와인의 나라이며, 와인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임에도 와인이 외면당하고 있다. 프랑스 주 소비층의 지갑 사정이 팍팍해질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듯 싶은데 이는 코로나 때 우리나라 MZ세대 사이에서 불었던 와인 열풍과는 사뭇 다른 현상이다.
외출을 자제하고 비대면으로 일상이 이어지던 그 때, 홈술+혼술이 새로운 술문화로 확산되었는데, 이왕이면 고급스럽고 SNS 사진용으로 좋으며, '있어 보이는' 술인 와인이 주인공으로 급부상했던 것이다. 이는 금액보다 개인의 취향을 더욱 중시하는 MZ세대의 특성이 고급 술인 와인과 잘 맞아 떨어져 일어난 현상이라는 경제 연구소의 분석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이런 경향이 위스키 열풍으로 옮겨갔는데, 그 이유는 위스키는 소주, 맥주, 와인과 달리 그 자리에서 한 병을 다 마실 필요가 없고, 취할 때까지 마시지 않아도 되며, 한 잔으로 향과 맛을 딱 기분좋은 정도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의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데, 사실 와인은 오픈하고 그 자리에서 불과 몇 시간 안에 다 마셔야만 하는 것을 고려하면 그리 저렴한 술이 아니다. 그런데 위스키는 병당 가격은 소주나 맥주보다는 비싸지만 생각날 때만 한 잔씩 따라 마시며 오래 오래 보관하며 즐길 수 있기에 와인보다는 가성비가 좋다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 글을 쓰다 보니 이러다가 와인이 여기저기에서 '비싼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게 되려나?'라는 불길한 생각을 불쑥 떠오른다. 전세계적인 불황이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의 지갑에도 영향을 미쳤고 그 중 작은 불똥이 와인으로 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와인은 자신있게 가격경쟁력이 좋다고 자랑할 수 있는 술은 아니다. 아주 아주 저렴한 와인도 한 명이 만 원에 육박하니까. 하지만 그 술을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만든 이들의 정성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향과 풍미, 나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잔잔한 행복까지 떠올리면, 즉, '와인만이 줄 수 있는 그 시간의 힘'을 생각하면 나를 위한 선물로 여전히 꽤 좋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싶다.
또한 뉴질랜드, 칠레, 호주,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품질과 가성비를 모두 만족시키는 와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감히 '와인=고급술'이라는 생각과 헤어질 것을 제안한다.
와인은 고급술이기도 하지만 '고급'이라는 말 안에 '비싸다'라는 개념이 녹아들어 있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와인을 고르는 우선 순위가 결코 가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와인을 고르는 가장 좋은 기준은 '내 취향'이다.
와인에 대한 지식은 하나도 몰라도 상관없다.
내가 레드와 화이트 와인 중 무엇을 선호하는지, 스파클링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중, 달콤한 것과 당도가 적당한 것, 당도가 없는 드라이한 와인 중 어떤 것이 가장 맛있게 느껴지는지를 알아간다면 충분히 더욱 즐거운 와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