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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으로 Apr 05. 2023

와인에 대한 단상3

나의 와인 공부 스토리-1

지금으로부터 딱 1년전쯤이다.


겁없이 시작한 와인전문가 고급 과정, 즉 WSET Lvele3를 늦가을과 겨울에 걸쳐 들은 후 덜컥 4월 시험을 신청해 버렸다.

공부할 시간도 얼마 없는데 무엇을 믿고 서둘러 날짜를 정해버린 것이었을까?

아마도 D-DAY가 정해지지 않으면 공부를 더욱 하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그나마 강의에 대한 기억이 조금이라도 더 남아있을 때 이왕 맞을 매 미리 맞아버리자는 마음으로 그랬던 것 같다. 


'아, 공부해야 하는데.' , '진짜 해야 하는데', '이제 정말 시작해야 하는데.' 방대한 공부량에 미리 질려서 차마 책을 펼치지도 못하고 이런 생각만으로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다가 2월 중순을 넘어가자 정말 발등에 불 떨어진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더이상 시간을 끌 명분도, 여유도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뿐. 오직 정면돌파!


시험 과목은 크게 이론과 와인 테이스팅인데, 두 과목 모두에서 각각 55%이상 득점해야 합격이다. 하나라도 55%에 미달이면 나머지 과목에서 최고점을 받아도 불합격인 것이다. 또한 이론은 객관식과 서술형 주관식으로 나누어지는데, 서술형 주관식은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사실 범위가 교재 전체이기 때문에 모든 부분을 다 샅샅이 봐야 하므로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와인을 좋아하는 마음은 충만하나 많이 마셔보지는 못해서 테이스팅에는 자신이 없었다(테이스팅 수업에서도 아로마와 숙성잠재력 부분이 항상 어려웠다). 남은 시간 동안 시음해본다고 갑자기 후각과 미각이 탁월해지는 것도 아닐터이니 수업 시간에 훈련 받았던 것을 믿고 턱걸이라도 합격하기를 바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이론. 이것만큼은 내가 노력으로 성적을 올릴 수 있으므로 이왕 도전 하는 것, 이론만큼은 최고 등급을 받자는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공부'라는 것을 해 본 것이 언제인지. 진짜 책에 파묻혀 지내며 머리를 쥐어짰던 것이 2007년 석사 학위 논문을 쓸 때가 마지막이었으니 15년만에 다시 '시험'이라는 것을 대비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머리가 너무 굳지는 않았기를 바라며 공부 플랜을 짜고, 아카데미에서 제공하는 모의고사 문제와 이론 관련 학습 자료를 출력하며 하나 하나 사전 준비를 했다. 그리고 교재를 3-5회는 반복하는 것을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다. 


WSET L3는 포도의 재배 조건과 환경, 지리적 조건에 따른 포도의 재배 방식, 각 포도 원산지의 지형적 특성과 대표 품종, 그 품종의 특징, 다양한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스파클링 와인, 주정강화 와인 등의 특징과 생산 방법 등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하는데, 특히 각 포도 원산지의 지도 또한 파악하고 있어야 해서 지도 교재를 펼치고 이론책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진행했다. 각각의 지역별 특성을 암기한 후 포스트잇에 적어 지도에 붙이고 연습장에 지도를 그리고 그 특성을 쓰는 것을 반복했는데 개인적으로 이 방법이 지도를 외우는데 매우 유용하였다.  


  


  

언제 다시 할까 싶어 남긴 공부의 기록들. 


시작은 2월에 했지만 3월과 4월 초 정말 나름 치열하게 공부했다.이때 마침 하던 일을 쉬던 중이라 오직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어서 더욱 집중해서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하려 했는데 책을 좀 읽다보면 여러 집안일이 신경 쓰여 자꾸 공부가 끊겨서 아예 나가서 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아침에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가 학교에 가면 나도 바로 가방을 둘러매고 동네 카페로 향했다. 1인석에 앉아서 2시간에서 2시간 30분쯤 공부한 후 카페를 떠나 근처 샌드위치 가게로 가서 간단히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공부하기 좋은 다른 카페로 이동하여 몇 시간 교재를 보다가 장보고 집에 와서 다시 공부하고, 아이가 오면 저녁 챙겨주고 밀린 집안일을 한 후 다시 밤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자는 생활을 무한 반복하였다. 


주말도 비슷하게 지냈다. 이르게 일어나서 가족들 아침상을 챙겨준 후 나는 집을 나서서 카페로 가서 공부를 하면 느즈막이 남편이 합류하여 옆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점심 때쯤 나가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제 2의 카페로 가서 공부를 하는 루틴이었다. 


이동중에도 머릿속으로 키워드를 던지고 관련된 내용을 떠올렸고 침대에 누워서도 눈을 감고 오늘 공부한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지도를 머리에 그리며 복습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처음 풀었을 때에는 맞은 것이 거의 없었던 모의고사 문제가 점점 수월하게 풀렸고 이에 비례하여 자신감은 차츰차츰 올라갔다. 


 '이러다가 정말 합격하는거 아니야?' 라는 섣부른 생각까지 슬슬 하기 시작할 무렵, 시험을 10여일 앞둔 어느날, 지금까지 우리 가족이 용케 피해왔던 코로나가 찾아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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