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모래시계’ 리뷰
뮤지컬 '모래시계'가 어두웠던 시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우정 앞에 머리를 조아렸던 세 사람의 여정을 따라간다. 가혹한 운명에 맞서 모두를 살게 한 힘은 사랑, 우정이었다.
'모래시계'가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지난 2017년 초연에 이어 5년 만에 돌아온 이 작품은 작곡가와 연출이 바뀌면서 완전히 새 옷을 입었다. 이번 시즌엔 민우혁, 온주완, 조형균, 최재웅, 송원근, 남우현, 박혜나, 유리아, 나하나, 이율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해 선 굵은 서사를 무대에 펼쳐낸다.
시대의 아픔이 담긴 이야기…놀라운 캐릭터 씽크로율
뮤지컬 '모래시계'는 1995년 SBS에서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다. 입대한 우석(최재웅)은 1980년 어느 날, 폭도라고 명명된 시민들을 때려잡는 임무에 투입된다. 그 안에서 시민군으로 총을 집어 든 친한 친구 태수(온주완)와 맞닥뜨린다. 학창 시절 절친했던 태수는 간첩으로 몰리고 깡패짓을 하게 된다. 혜린(박혜나)은 대학생이 돼 학생운동에 투신하지만 어려운 집에서 자란 우석과 달리 카지노 랜드의 상속녀다. 세 친구는 각자 떳떳하지 못한 면을 부끄러워하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을 접지 못한다.
온주완은 태수 역으로 대중에게 최민수로 각인된 캐릭터를 보다 개구지면서도 정감 가는 인물로 그려냈다. 태수는 공부를 해 육사에 진학하려 하지만 아버지가 빨갱이라며 쫓겨나고, 어두운 길을 걷게 된다. 우석은 그런 태수를 계속해서 밝은 길로 인도하려 하지만 이미 힘의 논리를 알게 된 태수는 자신에게 허락된 길을 가길 주저하지 않는다.
최재웅이 연기한 우석은 심지가 굳고 단단한, 원칙이 바로 선 사람이다. 그런 그도 태수와 혜린 앞에선 약해진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정도를 걸으려 하지만 80년 광주에선 혼란스러워한다. 자신이 아는 정의와 현실의 지독한 괴리감 속에 갈등하지만 그만의 해답을 찾아가려 한다. 혜린 역의 박혜나는 당차고 매력적인 데다 올바른 사상을 지녔다. 아버지에게 카지노를 물려받은 후에도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를 끊고 독자 경영을 하려 한다.
사랑과 우정 앞에 겸허한 인간…가슴이 뜨거워지는 노래
'모래시계'에서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경계가 모호하다. 주인공인 태수는 빨갱이로 몰린 아버지로 인한 시대의 피해자지만 결국 주먹질로 남을 괴롭히며 먹고 산다. 혜린은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지만 부잣집 딸이라 손가락질당하고 홀로 구속을 면한다. 우석은 명석한 두뇌로 검사가 되지만 80년 광주를, 숱한 사회의 부조리를 눈감아왔다. 이들은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 앞에서, 사랑과 우정이란 감정 앞에서 가장 부끄러운 점을 마주한다.
바꿀 수 없는 운명과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세 사람은 각자의 '해답'을 찾기 위해 나아간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힘을 얻고자 했던 태수는 결국 함정에 걸려들고 혜린을 위한 마지막 선택을 한다.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막막함의 연속인 인생을 살면서 인간이 가장 겸허해지는 귀중한 순간을, 우리 모두는 무대 위에서 목도한다. 오는 8월 14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