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보이지 않는 손’ 리뷰
연극 '보이지 않는 손'이 눈에 보이지 않게 작동되는 힘에 이끌려 가는 이들의 운명을 그린다. 개인의 사적 이윤 추구의 결과로 발생하는 걷잡을 수 없는 결말에 자본주의를 향한 풍자가 짙게 녹아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 중이다. 김주헌, 성태준, 김동원, 장인섭, 김용준, 이종무, 유원준 등이 출연하는 이 연극은 파키스탄계 미국인 작가 에이야드 약타가 원작을 집필했다. 파키스탄의 한 벙커에 납치된 미국 투자 전문가 닉을 통해 작가는 모든 특권을 타고 난 계층의 시혜적 태도와 미국의 경제 패권 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낯설고도 익숙한 경제 원리 속 배우들의 힘 있는 앙상블
미국인 투자전문가 닉(김주헌)은 파키스탄 현지에서 일하던 중 은행장을 대신해 무장단체에 납치된다. 누구도 내지 않을 자신의 몸값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닉은 투자 능력을 통해 1000만 달러를 벌어주겠다고 제안한다. 명석하지만 폭력적인 행동대원 바시르(김동원)과 함께 파키스탄 주식 거래를 통해 500만 달러를 벌지만, 단체의 우두머리 이맘(김용준)이 다른 마음을 먹으면서 모두가 파국을 향해 간다.
김주헌이 연기한 닉은 전형적인 미국인 같다. 목숨이 걸린 위험한 상황에서도 어느 순간엔 여유롭게 딜을 친다. 수십 년 간 돈을 벌어온 그의 투자원칙은 확고하고 자신감도 있다. 하지만 트레이딩 계좌에서 돈이 자꾸만 빠져나가자 패닉에 빠진다. 지상 최대의 특권 국, 미국인의 여유와 때때로 세상 물정 모르는 듯 자만심이 가득한 캐릭터가 그의 얼굴로 완성된다.
바시르 역의 김동원은 충동적이지만 똑똑하다. 벌컥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다가도 자신의 이익 앞에 얌전해지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줄 안다. 늘 충성하던 이맘이 딴생각을 하게 된 순간, 그의 캐릭터도 변곡점을 맞는다. 이맘을 연기한 김용준은 너그럽지만 잔혹하고 어리석은 본성을 숨긴 이중적인 기성세대를 그려냈다. 종교와 문화가 달라도, 타성에 젖은 지도자란 서구권이든 중동이든 으레 비슷한 법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초래하는 위험한 결말, 자본주의 민낯을 들추다
극 초반 닉과 바시르의 대화에서 관객은 그간 외면해왔던 전 세계 패권주의의 실체 혹은 그 단면과 마주한다. 바시르는 영국에서 자랐음에도 파키스탄인으로 당했던 극심한 차별, 그로 인한 피해의식에 젖어있다. 닉은 태생부터 누렸던 미국 국적인의 특혜, 최대 부국에 대한 환상, 빈국에 대한 시혜적인 시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바시르가 사사건건 열이 뻗쳐 길길이 날뛰는 지점에 모두는 어렴풋이나마 공감 가능하다.
닉이 줄줄 읊어대는 기본적인 경제 상식이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작동되는 시장 원리도 우리에겐 익숙한 얘기다. 이들이 풋옵션 거래를 하며 '숏치는' 장면에서는 주식 투자 경험이 있는 이들의 현실 웃음이 빵빵 터져 나온다. 하지만 그렇게 벌어들인 돈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극 후반에 가서는 누구도 도무지 웃을 수가 없다. 끝을 알 수 없는 절망에 빠진 닉의 심리상태는 손전등 하나에 의지한 조명으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숨 죽인 채 긴장감이 가득한 객석에 한줄기 빛에 비추이는 손 그림자는 닉에게 가장 필요한,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닌 '보이는 손'이다.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작동하는 시장 원리처럼, 극 중 인물들의 운명도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걷잡을 수 없는 곳을 향해 간다. 인간의 합리적인 선택, 각자가 이익을 추구하려는 행위를 곧 보이지 않는 손이라 부르는 이들은 바로 그 원리로 인해 파멸을 향해 간다.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 속성으로 배웠음에도 제대로 자본주에 사로잡힌 신봉자는 '혁명'이란 결과를 불러온다. 이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언했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입장과 정확히 일치하며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오는 30일까지 아트원씨어터에서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