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한효주·정우성 주연 영화 '인랑' 리뷰
영화 '인랑'을 다시 봤다. 남북통일이 가시화된 시대, 격해지는 내부 싸움과 그 안의 이야기들을 담은 영화. 늑대로 불린 인간병기 '인랑'을 통해 어느 때보다 고도화된 비인간성에 대해 논한다.
지난 2018년 개봉 당시 '인랑'에는 유난히 싸늘한 반응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극 전체를 관통하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다. 남북통일이 다가올 때, 외부의 반대에 부딪히고 내부에선 극심한 갈등이 벌어질 거란 설정이 꽤 그럴싸하다. '인랑'은 그 대립이 폭력으로 극대화된 상황을 그렸다. 다만 김지운 감독은 무엇하나 놓치지 않으려 애쓴 탓에 전부 잃어버린 느낌이다.
◆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시종일관 무겁고 진지한 이유
남북한 정부가 통일준비 5개년 계획을 선포한 후, 강대국의 경제 제재가 이어지고 민생이 악화되면서 대한민국의 2029년은 혼돈의 시기다. 통일에 반대하는 무장테러단체 섹트가 활개를 치자,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창설된 특기대가 나서고, 정보기관 공안부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혼란한 정국 속 권력기관의 다툼이 벌어지는 가운데, 개인들은 무력하게 조직을 위해 희생될 뿐이다.
개봉 전부터 강철 슈트 비주얼로 화제를 모았던 강동원은 가장 대표적인 '갈등하는 개인'이다. 특기대 소속 군인 임중경(강동원)은 조직의 명령에 따랐지만 민간인 학살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또 한 차례 섹트의 일원인 소녀 재희(신은수)의 자살폭탄테러로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누군가는 '시종일관 화가 나 있다'고 표현하는 그의 얼굴은 무겁고 진지하지만 상처 받은 표정이다. 특기대의 목적이 정당할지언정, 그 과정에 따르는 비인간적인 명령들과 내면의 인간성을 지키려는 욕구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한다.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럼에도 뜻대로 되지 않고, 단 한 가지로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시달리는 임중경은 그야말로 인간성의 본질, 휴머니즘의 단면을 보여준다.
한효주가 연기한 이윤희는 신분을 세탁하고, 섹트의 일원으로서 임중경과 특기대를 궁지에 빠뜨리는 임무를 맡게 된다. 첫 만남부터 중경과 서로에게 끌리지만,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다. 다소 갑작스러운 로맨스 라인이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각자 다른 조직의 목적을 생각하면 납득이 된다. 곱씹어보면, 윤희 역시도 개인의 행복과 조직의 명령, 마음속의 목소리 사이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모순이 반복되는 그의 행동 사이, 크게 공감할 여지가 없다고 해도 별 수 없다. 이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은 현실의 누구나처럼, 각자의 사연을 가졌을 뿐이다.
◆ 완벽을 기한 흔적이 역력한 액션·감정묘사…과도한 집착이 독 됐나
'인랑'을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강철 슈트를 입은 특기대원, 중경이 벌이는 액션신이다. 금속성 소음과 함께 화려한 총기 액션, 격렬한 카체이싱, 스피디한 맨몸 액션까지 완벽한 볼거리를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중경의 상대가 섹트, 공안부, 한상우(김무열)를 거쳐 특기대 소장인 장진태(정우성)로 바뀌는 과정은 중경의 갈등의 실체가 무엇인지, 점차 또렷하게 가리킨다. 다만 물리적으로 과도하게 긴 액션 시퀀스는 영화의 메시지나 아이디어 자체를 흐린다.
윤희가 되뇌는 '빨간 모자' 이야기도 반복이 지나쳐 힘을 잃는다. 폭탄 운반책이었던 재희의 빨간 망토, 중경을 해치려는 음모에 가담한 윤희의 빨간 코트는 확고하고 의도된 상징이다. 죄 없이 죽은 빨간 코트의 억울한 사연을 반복하고 강조하면서, 원작자와 감독은 조직에 의해 희생되는 개인의 사정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옳고 그름으로만 재단할 수 없는 조직의 성격을 강조한다. 특기대의 목적이 정당하다 해도, 중경 역시도 조직의 명령으로 인해 희생된 개인이다. 공안부에서 중경을 향한 열등감에 몸부림치던 한상우 역시 마찬가지다.
어쨌든 감독도 배우들도 최선을 다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요소에 완벽을 기한 결과, 무엇 하나 또렷하게 남지 않아 아쉽다. 원작의 한계에 부딪힌 설정이나 장면도 다수다. 섹트를 마치 구 운동권처럼 그리고, 공안부와 손잡는 설정은 다소 모욕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일본인 특유의 나이브한 시각과 감성이 한국인들에게 깊은 감상을 남기긴 역시 무리였을까. 심지어 인간성을 되찾는 한국식 각색 결말도 원작 팬들에게는 원성을 들었다. 본연의 인간성을 모두 지우고 인랑이 되라고, 과도하게 집착하던 장진태 소장의 잔상이 남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