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하정우 주연 영화 '군도 : 민란의 시대' 리뷰
영화 '군도 : 민란의 시대'가 역대 최악의 빌런과 한국식 마카로니 웨스턴의 정수를 선보였다. 조선 후기 암울한 시대를 꽤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시원한 액션 활극을 첨가했다.
'군도'는 2014년 개봉 당시, 윤종빈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 하정우, 군 복무를 마친 강동원이 투톱 주연으로 나서며 뜨겁게 주목받은 화제작이다. 관객수는 477만 명으로 다소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유가 있다. 전면에 내세운 충격적인 비주얼의 민머리 하정우와 가장 아름다운 빌런 강동원 외에도, 윤 감독은 반복되는 좌절과 반전되는 메시지를 통해 현실에 짓눌린 모두의 판타지를 충족시킨다.
◆ '투박한 선' 하정우와 '아름다운 악' 강동원…눈을 의심케 하는 충격적 대비
'군도'는 양반들의 착취가 극심했던 조선 철종 13년을 배경으로, 백성을 돕는 도적떼 지리산 추설(秋雪)과 탐관오리들의 대립을 그린 영화다. 쇠백정으로 살던 돌무치(하정우)는 전 나주 관찰사 조원숙(송영창)의 아들 조윤(강동원)으로부터 여자를 살해하라는 명을 받는다. 그의 명을 어기게 돼 가족을 모두 잃은 돌무치는 죽음을 앞두고 추설의 선택을 받고, 도치라는 새 이름을 얻는다. 2년 후, 조윤의 도 넘은 악행으로 백성들이 죽어나가자 추설의 칼끝이 그를 향한다.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2011)'에 이어 줄곧 윤종빈 감독의 페르소나로 활약한 하정우는 추하고 투박한 비주얼로 등장한다. 초반의 더벅머리에 어수룩한 백정 돌무치부터 후반부 민머리 도적 도치의 외모는 언뜻 그가 악역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관객들은 신분이 천하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목숨을 위협받는 돌무치의 사연에 자연히 이입하게 된다. 하정우는 순박하고 억울한 눈망울부터 각성한 후 복수심에 이글거리는 감정까지, 과연 감독의 믿음만큼 탁월하게 그려낸다.
조윤 역의 강동원은 등장부터 마지막까지, 마치 판타지 만화의 주인공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악은 악이라는 사실을 잊을 만하면 칼을 휘둘러 죄 없는 백성들을 작살낸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이지만 약점은 있다. 조원숙 대감의 서자라는 출신 성분이 그의 콤플렉스다. 끊임없이 아버지에게 장자로 인정받고자 하는 몸부림은 잠시,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강동원은 그를 동정하는 마음이 일어나 때때로 죄책감이 들 정도로 완벽한, 최악의 빌런을 빚어냈다.
◆ 절묘한 리얼리티와 판타지의 경계…한국식 마카로니 웨스턴의 진수
'군도'에서는 한때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를 시작으로 한국 영화계에 유행했던 할리우드 서부영화 풍이 짙게 느껴진다. 한국식 사극에 이국적인 색감과 특유의 유쾌한 음악을 가미해 빠른 템포감과 독특한 리듬감을 부여했다. 백정 출신 도적 도치가 휘두르는 두 개의 푸주 칼, 조선 최고의 무사였던 조윤의 장검이 맞부딪히는 신들은 정통 활극을 표방한다. 감독은 다양한 색깔과 장르를 한데 섞어 윤종빈식, 한국식 마카로니 웨스턴을 보기 좋게 만들어냈다.
윤 감독이 사용한 대비는 도치와 조윤이라는 인물에서 그치지 않는다. 수탈당하는 백성의 삶과 착취하는 양반 계급의 삶이 완벽하게 대비를 이룬다. 동시에, 백성들의 삶은 탄탄한 리얼리티를 골자로 했지만 양반, 조윤의 캐릭터와 삶은 어쩐지 현실에 없는, 판타지에 기반한 듯 하다. '군도'는 이 절묘한 경계를 영화에 담아냈다. 수십 명의 칼과 대적해도 털끝 하나 상하지 않고, 나 홀로 고귀함을 뽐내는 조윤의 존재감은 이 영화의 묘한 지점이자, 지독한 아이러니다.
극 초반, 백정인 도치는 어머니에게 지리산 추설 얘기를 꺼내며 "뭉치면 도적이고 흩어지면 백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군도'의 마지막 장 제목은 '뭉치면 백성, 흩어지면 도적!'이다. 흩어진 백성들이 모여 민란을 일으키면 도적떼가 돼 양반의 표적이 된다. 하지만 뭉친 백성들이 한 가지 목표로 행하는 일은 바로 백성의 뜻일 뿐, 죄가 아니다. 묘하게 반전되는 메시지. '선은 투박해도 선이고 악은 아름다워도 악'이라는 주제의식을 넘어서는 깨달음이 찾아온다.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도 넘친다. 돌아보니, 강동원의 아름다움 하나로만 기억되기엔 참 아까운 영화다.
* 아이러니로 가득한 판타지, 조윤
'군도'가 개봉한 이래, 강동원의 조윤은 끊임없이 회자되는 매력적인 악당이다. 전 나주 관찰사와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서출인 탓에 높은 관직에 오르지 못하지만 조선 최고의 무예를 갖췄다. 백성들 입장에서는 조윤의 권력만으로도 두려워 벌벌 떨 만한데, 수십 명을 단숨에 썰어버릴 검술까지 겸비했다. 생각만 해도 온 몸에 털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그런 조윤은 과도하게 땅에 집착한다. 적자인 동생 서인이 죽고 난 뒤, 아버지에게 장자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라 한다면 참 불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이를 착취해서 얻은 결과물로 누군가의 사랑을 원하는 존재. 이만해도 아이러니한데, 아버지가 원하는 건 땅이 아니다. 태생적으로 아버지가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없는 조윤의 몸부림이 눈물겹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조윤의 판타지성이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은 단연 절벽 앞 액션신이다. 수십 명의 살수와 칼을 든 도적들을 모두 베고도 상투관 하나만 상했을 뿐, 몸에 작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그런 조윤의 얼굴에 흠을 내는 건 바로 아버지 조원숙이다. 그 누구도 조윤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지만 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건 세상에 단 하나, 아버지뿐이라는 영화적 장치. 누구나 알아챌 만한 상징적 장면이다.
조윤이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모두에게 파멸을 몰고 온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목숨을 끊은 것도 조윤이다. 서인의 자식이 세상에 나올까 봐 동생의 처를 죽이려 모의했지만, 살아남은 조카를 막상 만나서는 목숨을 끊지 못한다. 오히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조카를 품에 안은 표정은 자조적이지만 의미심장하다. 장자로서 아버지의 인정만을 바라고, 오롯이 매달리던 조윤의 삶. 그제야 새롭게 매달릴 무언가를 만났던 게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