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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추리의 문제적 영화, '나이브스 아웃'

영화 '나이브스 아웃(2019)' 리뷰

by belle

영화 '나이브스 아웃(2019)'이 미스터리로 가득한 노 작가의 죽음 뒤에, 허를 찌르는 사건의 실체와 만연한 인종차별의 문제를 들춰낸다.


'나이브스 아웃'은 제작 단계부터 초호화 캐스팅, 라이언 존슨 감독의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 연출로 주목받았다. 짜임새 높은 각본과 치밀한 연출력은 물론, 다니엘 크레이그가 유능한 탐정 브누아 블랑 역을 맡으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제이미 리 커티스, 크리스 에반스, 아나 디 아르마스 등 익숙한 얼굴이 할런이 사라진 저택 안에서 끊임없는 서스펜스를 이어나간다.

movie_image (11).jpg [사진=㈜올스타엔터테인먼트]

◆ 의문의 죽음과 비범한 탐정의 등장…'누구나 거짓말한다'는 하나의 진실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 할런이 85세 생일에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의 원인을 위해 경찰과 함께 브누아 블랑이 집에 찾아오고, 가족들은 각자 형식적인 조사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각자는 혹시나 할런의 살해 동기로 오해받을 만한 진실을 숨긴 채 거짓말을 한다. 브라질 이민자 출신 간병인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는 유일하게 이 죽음의 비밀을 알고 있다. 거짓말을 하면 구역질을 하는 습관 탓에, 탐정 블랑에게 요긴하게 도움을 준다. 하지만 마르타의 자백에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는 여전히 남아있다.


극 초반,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마르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성실하고 심성이 착한 간병인이었던 그는, 실수로 약을 잘못 주사하고 할런은 추리 작가의 전공을 살려 그의 알리바이를 꾸며준다. 블랑 앞에 선 큰딸 린다, 사위 리처드, 둘째 며느리 조니, 셋째 아들 월트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술한다. 대부분의 가족은 할런과 말다툼을 하거나 갈등을 빚었던 사실을 숨긴다. 거짓말을 못하는 마르타를 제외하곤,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다. 다만, 이 모두의 동기는 그저 가벼운 것들에 불과하다.

movie_image (13).jpg [사진=㈜올스타엔터테인먼트]

하지만 할런의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상황은 180도 뒤바뀐다. 가족에겐 단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마르타에게 전재산을 남긴 할런의 뜻은 무엇일까.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랜섬(크리스 에반스)만이 마르타에게 협력한다. 마르타를 그동안 형식적으로나마 따뜻이 대해줬던 가족들은 노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낸다. 그간의 할런을 향한 의도를 의심하는가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 몫의 상속분을 되찾으려 안간힘을 쓴다.


◆ 죽은 자와 산 자의 선의, 악독한 반전…역대급 추리 속 빛나는 문제의식


이 영화에서 가장 수상쩍은 부분은, 중간부터 도드라지는 랜섬의 존재감이다. 초반에 거의 드러나지 않던 그의 캐릭터와 행적이 구체화되고, 할런이 생전에 "나와 비슷하다"고 언급한 장면도 나온다. 이 탓에 마르타에게 협력하는 랜섬의 태도에서, 추리의 거장이었던 할런이 감싸려 했던 불우한 간병인을 함정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여러 가지 추측을 하게 한다.

movie_image (12).jpg [사진=㈜올스타엔터테인먼트]

영화가 결말을 향해 갈수록, 자신의 행적을 끝끝내 덮으려는 마르타를 보며 그가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진실은 죽은 자와 산 자의 선의에 달려있다. 헌신적이었던 간병인의 실수를 덮어주려 했던 할런과,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탓에 죽음의 위기에 처한 가정부를 구하려 한 마르타. 이 모든 걸 설계한 범인은 바로 마르타의 상속 결격 사유를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마르타가 죽음에 연관됐다는 사실을 눈치챈 블랑의 흠 없는 추리에 감탄이 나올 때쯤, 마르타는 구역질을 참아가며 범인의 자백을 받아낸다.


치밀한 서스펜스 외에, 꽤 직설적인 사회 비판 의식도 담겼다. 바로 미국 내 이민자 배척과 갈등을 짚는 문제의식이다. 늘 마르타를 가족같이 여긴다던 트롬비 가 사람들은, 그를 에콰도르, 우루과이, 파라과이 출신으로 아무렇게나 부른다. 집안의 유일한 10대는 백인우월주의에 심취해있고, 결국은 어머니의 불법체류자 신분을 들먹인다. 이민자들이 이룬 것들을 잊고 소유권과 권리를 부르짖는 미국인 가족을 통해, 감독은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신랄하게 던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할런 트롬비의 '내 집, 내 규칙, 내 커피'라는 문구가 반복될 땐 묘한 통쾌함까지 찾아온다. 짜릿한 추리, 반전의 재미와 함께 시의성·시대성을 탁월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여전히 왓챠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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