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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끼며 살아가는 '어느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2018)' 리뷰

by belle

일본 영화계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2018)'이 진짜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제도권 밖의 삶은 비참하지만, 제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도 불편하기 그지없다.


'어느 가족'은 지난 2018년 7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국내에서도 호평을 받았음은 물론, 고레에다 감독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로 사랑받으며 마니아들을 거느렸다. 영화에선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모종의 이유로 가족처럼 모여 산다. 이 가족이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할머니의 연금, 막노동, 성매매, 도둑질이다. 때때로 범법행위를 서슴지 않지만, 이 가족은 서로를 끌어안고 산다는 점에서, 정말로 가족 같다.

[사진=티캐스트]

◆ 상처를 알아보는 사람들…가르쳐 줄 것이라곤 '도둑질'이 전부


영화의 첫 장면부터 이 기묘한 가족의 아버지(?)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남자아이 쇼타(죠 카이리)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둘은 밖에 나와있는 여자 아이 유리(사사키 미유)를 만나고 집안에서 들려오는 부부싸움 소음에 그를 데려온다. 훔쳐온 물건들은 가족의 끼니를 책임진다. 전 남편의 연금으로 살아가는 할머니의 비좁은 집에서 함께 지내는 이들은, 모두 제도권 밖에 놓여있다.


아무렇지 않게 도둑질을 해서 생계를 이어가는 형편에, 아이를 데려온 오사무. 그의 아내인 노부요(안도 사쿠라)는 학대의 흔적을 발견하고 유괴 혐의를 무릅쓰고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할머니도, 아키(마츠오카 미유)도 유리를 따뜻이 받아준다. 이들은 유리의 이름을 린으로 바꾸고,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쇼타는 그를 낯설어하지만, 이내 함께 지내며 추억을 쌓는다.

[사진=티캐스트]

막노동을 해서 일당을 버는 오사무는 다리를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할머니와 노부요는 산재 처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기대한다. 노부요는 세탁공장에서 일하다 잘린다. 동료와 함께 해고 대상에 오른 그는 린과 함께 살고 있다는 걸 약점으로 잡힌다. 아키는 유사 성행위를 통해 돈을 번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도둑질을 배운 쇼타는, 린에게 이 일을 가르치는 오사무를 못마땅해한다. 자라는 소년의 시선이 차츰, 정상(正常)을 향한다.


◆ 악의와 선의가 뒤엉킨 관계…불편해도, 바로잡을 용기


이 가족의 일상은 다소 비참하고 불쾌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평화롭다. 당장에 누구든 무슨 일을 해서든 돈을 벌어오면 반긴다. 아무렇지 않게 훔친 물건을 손에 얻었음에 기뻐하고, 유사 성행위를 팔아 돈을 버는 아키를 대견하게도 여긴다. 할머니는 버림받은 전 남편의 아들 내외를 찾아가 용돈을 챙기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돈을 쓰지도 않는다. 꼬박꼬박 나오는 할머니의 연금이 중요한 가족에게, 그의 죽음이 찾아오면서 균열이 생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조금은 수상쩍은 부분도 눈에 띈다. 할머니가 전 남편의 손녀인 아키를 데리고 살게 된 사연, 오사무와 노부요가 쇼타와 린의 부모를 자처하는 이유는 지극히 이기적인 의도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함께 지내면서, 진심으로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하는 과정을 통해 희석된다. 악의와 선의가 뒤엉킨 가운데 남는 것은, 함께 끼니를 걱정하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현실적 가족 관계다.

[사진=티캐스트]

비뚤어진 세상에서, 딱 그만큼 비뚤어진 채로 살아가는 가족은 서로에게 진심을 내보이지 않는다. 할머니는 떠나기 전, 모두의 뒷모습을 보며 혼자 '고마웠다'고 읊조린다. 아버지 소릴 듣고 싶어 했던 오사무에게, 쇼타는 마지막 만남을 뒤로하고 '아빠'라고 홀로 중얼거린다. 모든 속내와 진실을 털어놓지 못했어도 이들은 서로를 끌어안아준, 행복한 가족이었다.


쇼타의 사고로 이 가족의 정체가 발각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이조차도 어른들은 할 수 없었던 용기였다. 누구도 들추지 않는 현실과 진실을 담담히 들여다보는 감독의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여전히 왓챠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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