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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eatriz Mar 21. 2022

선생님, 사람도 언어로 지은 집이지 않을까요?

읽-다문득(多問得): 언어로 세운 집

시는 언어로 지은 집입니다.


몇 달 전 세상과 이별을 고하신 故 이어령 교수의 말씀이다. 비록 이 문장을 시의 함축된 의미를 찾기 위해 쓴 말씀일 것이지만, 이는 사람에게도 해당되지 않을까? 사람도 언어로 지은 집이라고. 만국 공통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뜻하는 갓난아기의 웅얼거림이 비슷한 걸 보면, 우린 태어난 순간부터 언어로 집을 짓기 시작한다. 볼트와 너트부터 집의 구상도까지, 소싯적부터 경험을 통해 필수 재원을 획득한다. 일차적으로 ‘나만의 집’이 가족을 통해 완성되지만, 이는 미완의 집이다. 추세적 성장(Secular Trend) 속 완성도는 높아진다.

기실 집의 주된 목적은 공간에의 거주이다. 그 공간에 누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바로 집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집을 연상해보라 하면 대개, 그 집의 겉모양을 주로 생각하게 된다. 마치 학교를 연상하면 교실과 교탁을 떠올리는 것이 아닌, 학교의 건물을 연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집의 외면은 누구나 다 볼 수 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공간은 그 내부인데 집 안으로 들어가면 지붕이 어디가 뾰족하고, 어디에 외부 장식이 달려있고 이런 것들을 정확히 짚어 내기에는 어렵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으로 들어간 순간 밖의 어디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차리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처음 조우했을 당시에 첫인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타인에게 입증해야 하는 순간에는 자신의 기백을 압축적이고 강렬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기선제압’하듯 말이다. 하지만 첫인상은 어디까지나 ‘첫’ 느낌일 뿐이다. 우리가 집을 매매하러 둘러보러 다녀도 그 집의 모양만 보고 매매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만남도 마찬가지다. ‘나만의 집’ 속 ‘나만의 방’을 그대에게 내주고, 그대의 ‘나만의 방’에 들어가 사는 것이다. 그곳에 흠뻑 심취한 뒤 ‘나만의 집’에 시름없는 마감 질과 확장공사를 하는 것, 그게 인연(因緣)이다. 그 집이 멋지고 값비싸 보일지라도 부실 공사에 공실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외양은 허름할지라도 뉴트로 감성이 담긴 개성 넘치는 집일 수도 있다. 이처럼, 타인이 살기 좋은 방으로 가꿀수록 남을 수용할 수 있는 집의 크기와 질도 향상된다. 이는 홀로 건설할 수 없다. 임차인과 임대인이 협력해서 만들어야 한다.


 영화광이라면 내 방 중 영화관이 존재하는 것이고, 영상물을 좋아하는 이들을 쉬이 초대할 수 있을 것이다. 책벌레를 가까이한다면, 내 방에 거대한 서고가 세워진다. 유럽의 사상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 말했지만, 이는 곧 사랑이기도 하다. 아는 것은 곧 관심이요, 관심은 곧 사랑이다. 상대를 알고 이해하면 반드시 사랑하게 된다. 서로 완전하게 알지 못하기에(혹은 탐구하지 못했기에) 갈등과 불신이 일어난다.

물론 이 방을 인지하지 못하였다고 그릇되다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나 언어의 집이나 다 같이 내부 공간을 위해 지어진 것을 알면서도 외형으로 판단하는 것은 인지적 번거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마치 사적인 내부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놀이공원이나 기념관처럼 타인과 어울리기에만 충분한 공간처럼 대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럼 여러분에게 물어보겠다. 그대들의 방은 어떠한 방으로 꾸며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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