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단위(inter-national)에서의 성문화된 제도는 기성 체제의 정당성을 강화시켜 주거나, 유사한
체제들 간 유대를 향상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나아가 경제와 안보를 목적으로도연합해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종이에 쓰인 체제와 제도는 엄연히 현실세계를 구성하는 논리체계(algorithm)를 글로 현출한 것에 가깝다.
일국의 정체(政體)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사회라는 형상을 구축하는 질료는 다양하고, 시간에 따라다변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숨 쉬듯 당연히 여겨지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라는 단어는 명확한 실체를 갖도록 전문가들이 엄격하고 정확한 합의를 거쳐 자격요건을 제시한 객관적 과학용어가 아닌, 오랜 시간을 거쳐 궂은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어 온 복잡한 ‘역사적 개념’이다.
Axis of Evil, City upon a hill
그럼에도, 대다수 논문들에서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닌 것은 마치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이라는점을 암시하고 있다. 물론 세상에 완벽한 것도 영원한 것도 없듯, 완벽하지 않고 영원하지 않다는이유로 거부할 필요 또한 없다. 그럼에도 과연 분석의 대상이 되는 국가들과, 이상적 표본으로 간주되는 각각의 국가들이 진정한 의미로서의 악의 축(Axis of Evil)과 언덕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라 평가받을 수 있을까?
스위스 생피에르 섬
설사 객관적인 지표와 과학 용어로 민주주의가 규정될 수 있을지라도, 장 자크 루소가 역설했듯,이상적으로 순수한 민주주의가 오롯이 실현될 수 있는 장소는 스위스의 변방 시골에서나 가능할것이다. (사담이지만 루소는 스위스 생피에르 섬에서의 생활을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회고했다).
데이비드 흄과 교류할 당시의 장 자크 루소
그 또한 민주주의 국가가 국제관계에서 어떠한 역학을 발생하고 대응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글을 반드시 출간하겠다는 약속만 남긴 채 작고한 점을 미뤄봤을 때, 과연 축자적 의미로서의 민주주의 국가가 오늘날 우리 곁에 있을지에 대한 의문점이 든다.
피렌체와 베네치아
공화주의도 마찬가지다. 공화주의 세계관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덕성 함양을 위해) 사치와 경제적 부의 축적을 지양해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공화주의 핵심인 견제와 균형을 조정하기위한 종신직 국가원수(가령 곤팔로니에레와 도제)는 필수적이고, 공화국은 일체의 작위적 평등에반대한다.
한편,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을 필두로 해서 20세기(와 21세기)에 공화국을 원용한 무수한 국가들이 공화국스럽다고 원용할 수 있을지 또한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라고 번역되는 “Democracy”를 내포된 저의를 적확하게 끄집어내 번역하자면, 민치주의(民治主意)라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서양 지성 체계에서 민치주의는 서양의 시대별주류 사상가들에게 각자의 이유로 경계하고 두려워했으며, 민주정이 들어서는 것을 방지하고자나름의 이론적 방파제를 구축해 왔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편,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민주주의는 프랑스혁명을 거쳐 민주주의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되고 이론으로 엮어지면서 등장했다. 그리고 민주정의 급진적 역학을 길들이고 길러내기를 희구한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의 염려를 담아내, (현대의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밀접한) "자유민주주의"로 대체되었다.
초기 자유주의(혹은 공리주의) 대표주자 제레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
그들은 전통적인 대의정부를 개량해, 자유민주주의의 외피를 씌워, 국민이 직접통치하는 민치정도 아니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정도 아닌, 그 어딘가를 취했다. 투표의 의미도 권리 행사가 아닌, 의사 표명으로 희석시켜 민주정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시민성을 훈육하는 방식을 취했다.
자유민주주의는 곧 투표자유주의를 뜻하는 것처럼 변모됐고, 민주주의는 당연하고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오늘날에는 더 많은 자유와 자율을 부여해 주는 것이 곧 민주주의 핵심 정수(soma) 중 하나인 것으로 압축되고 있다.
중러 공동선언 中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 절차상의 요건을 충족한 중국과 러시아의 공동성명에서 엿볼 수 있는 민주적 가치 수호에 대한 대외적 천명과, 미국에 대한 비민주적인 면모에 대한 공격이 마냥 어폐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려워진다.
나아가 민주주의의 성소(shrine) 임을 자처한 미국도 중국과 러시아를 비민주적이라 원용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지 정치와 프로파간다는 19세기말부터 국제관계에서 필수였지만, 이제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이미지라는 외피만 남긴 채 서로의 정당성을 원용하고 있는 것만 같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화신과 같은 역할을 자처했던 미국도 포퓰리즘에 절여져 대내적으로 그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론해 본다.
첫 대선 토론에서의 JFK와 닉슨. 유능한 닉슨은 젊고 쾌활한 이미지의 JFK에서 무너진다.
분명 짧게는 레이건 시절부터 길게는 JFK시절부터 이미지의 중요성이 본격적으로 원용되기 시작했지만, 20세기의 미국에 모순성을 짚어내는 전략이 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과도한 개입주의와 정치현실주의적 대외정책의 모습도 존재했지만, 그러하지 않은 모습 또한 충분히 많았기 때문이다.
FDR의 민주주의 병기창을 위시해, 트루먼 아이젠하워의 미디어 보급으로 이뤄낸 메카시즘 종식, JFK의 황혼투쟁, RFK, 닉슨을 자진 사임하게 한 워터게이트, 조지 맥거번, 카터의 인권외교까지 그 역사와 기조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또한 같은 맥락에서, 과연 안와르 사다트와 같은 인물을 무소불위의 비협조적 권위주의 독재자로 일갈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론해 본다. 사다트가 집권할 당시의 이집트는 아랍권의 수장 격의 위상을 지니고 있었지만,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받는 안보 취약상태에 노출돼 있었다. 또한, 미국 국무부를 비롯한 대다수의 이집트 엘리트층은 그의 집권기간을 길어봐야 6개월 정도일 것이라 판단했고, 일부는 쿠데타를 도모하고 있었다.
<39계단> 中 주인공은 쫓기는 범죄자로 전락했지만 투표 독려 연설자 오인돼 연단에 올라 그의 심정을 토로하듯 투표를 독려하듯 발언한다.
그렇기에 사다트는 일차적으로 내부를 규합하기 위해 미국에 대한 호전적인 언사를 펼쳤음에도, 그는 이스라엘과의 점진적인 평화를 위해서는 이스라엘과 호의적 관계를 유지하는 미국과의 협업이 필수적일 것이라 판단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그리고 본인이 친미성향임을 드러내기 위해) 사다트는 소련 측 인사들을 추방한다.) 또한, 1973년 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기 전 미국의 국무장관 키신저와 이집트의 국가안보보좌관 이스마일의 대담에서 키신저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주권 인정 기준을 상호 안보에 관한 협상에서 분리하는 것을 제언했고, 이러한 대안은 결국 사다트도 받아들이게 된다.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전쟁 - 허버트 조지 웰스
이스라엘을 배척하자는 아랍권 내부의 협정 때문에 국가로 인정받고 싶은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포괄적 접근방식만이 가능했고, 역설적이게도 단계별 접근이 가능해지기 위해서 (나아가 외교적 선택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이집트는 이스라엘과의 ‘마지막 전쟁’이 필요악으로 요구됐기 때문이다.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와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이러한 점을 미뤄봤을 때, 전후 이집트의 협조적인 행동이 독재자의 어떠한 호전성과 더 큰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집트의 외교적 판단과 미국과의 물밑접촉과 사전협의, 그리고 키신저의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와의 각별한 친분, 그리고 완전한 자주성을 가장한다는 것은 일종의 향수병이라는 점에 대한 인지가 만들어낸 역학이 ‘독재자’가 전쟁을 ‘발발’했음에도 (사다트의 죽음으로 끝나지만) 중동에서 평화가 찾아올 수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미흡한 장문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생각할 거리와 상상할 거리가 되기를 바라며.
Fine
<읽은 문헌>
- Anna Lührmann & Staffan I. Lindberg (2019) A third wave of autocratization is here: what is new about it?, Democratization, 26:7, 1095-1113
- Bak, D. (2020). Autocratic political cycle and international conflict. Conflict Management and Peace Science, 37(3), 259-279.
- Draper, Matthew, and Stephan Haggard. “The Authoritarian Challenge: Liberal Thinking on Autocracy and International Relations, 1930–45.” International theory 15.2 (2023): 208–233.
- Keren Yarhi-Milo and Laura Resnick Samotin. 2023. The Unpredictable Dictators: Why It’s So Hard to Forecast Authoritarian Aggression. Foreign Affairs. August 4, 2023
- Oisín Tansey (2016) The problem with autocracy promotion, Democratization, 23:1, 141-163 - Oriana Skylar Mastro. 2024. The Next Tripartite Pact?: China, Russia, and North Korea’s New Team Is Not Built to Last. Foreign Affairs. February 19,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