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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딸 Jul 22. 2019

전국에 불꽃을 수놓는 프랑스 축제

시간의 점으로 기억되다.

  몇몇 장면들은 일상에서 문득 떠오를 만큼 선명한 재생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장면은 나에게 큰 부를 안겨준다. 내 삶이 충만하다고 느꼈던 찰나의 순간을 상기시켜보자.


1789년 7월 14일, 파리의 민중이 바스티유를 습격했다.  
바스티유 습격 사건을 시작으로 자유는 전 세계를 향해 한 걸음씩 지평을 넓혀갔다.

   

"Paris"

    7월 14일은 프랑스혁명기념일이다. 이런 특별한 기념일엔 프랑스 전국에서 불꽃 축제를 하는데 그 이유는 눈으로 보아야 실감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단연 수도이자 바스티유 습격 사건의 무대였던 파리다. 에펠탑 옆에서 터지는 불꽃은 파리지엥에게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관광객들에게는 평생에 한 번이 될 수 있는 축제다. 7월 14일 즈음엔 일부러라도 파리에 있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호텔 주인도 덩달아 신이 난다.

7월 14일 파리


2014년 7월 14일
스트라스부르 불꽃축제

"Strasbourg"

     2014년 7월 14일, 나는 운이 좋게도  센과 치히로의 배경이 되었던 아기자기한 도시 스트라스부르에 있었다. 그 날 나는 불꽃으로 형상화된 혁명기념일을 보았다. 그 당시엔 내가 또다시 프랑스에 오게 될 거라 예상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 순간을 잘 간직해두고 싶었다. 나는 그 이후로 종종 스트라스부르를 기억 속에서 불러냈다. 


  이것이 바로 선명한 재생의 힘을 가진 시간의 점(spot)이다. 스트라스부르라는 시간의 점은 아마 평생 나와 함께 지속될 것이다.




2019년 7월 14일, 일요일
툴루즈 불꽃축제

"Toulouse" 

나는 올해 6월 다시 프랑스에 왔다. 식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옮겨심기라는 것이 있을까.

 

   군악대

     프랑스 일요일은 대부분의 상점이 쉬기 때문에 유독 조용하다. 하지만 7월 14일 툴루즈의 일요일은 각종 퍼레이드로 오전부터 활기찼다. 


    아침 장을 보고 나서 실내 시장에서 나왔을 때, 군악대가 연주를 시작했다. 내 바로 앞에 있는 연주자들은 금색으로 빛나는 트럼펫의 관을 한 방향으로 밀었다 당겼다 했는데 그 움직임은 한결같이 가지런했다. 몇 개의 트럼펫이 같은 길이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질서 정연함에 나는 자연스레 '웅장하다', '장엄하다'와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다. 


   사람의 움직임이라기보다는 기계의 움직임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은 절제 미와 역동성을 보았다. 청각보다 시각에, 음악보다 트럼펫의 움직임에, 연주보다는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홀렸다. 프랑스의 분위기를 풍기는 건물을 배경 삼아 서양악기로 연주하는 프랑스 애국가라니. 


음악에 맞춰 행진하는 말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경찰이 올라타고 있던 말이었다. 유럽에서는 경찰들이 말을 타고 도시를 정찰한다. 말을 탄 경찰이 도시를 누비고 다니는 장면은 늘 내 눈길을 끌어왔지만 말을 자세히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말들은 음악에 맞춰서 행진하고 있었다.


위풍당당한 프랑스 군인들


    나는 퍼레이드를 더 잘 보기 위해 설치되어 있던 바리케이드에 몸을 바짝 붙이고서 고개를 최대한 앞으로 내밀었다. 내 맞은편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힘이 들어간 군인들은  repos (열중 셔)라는 명령에도 쉬지 않는 태세였다. 이 군인들의 풍채로인해, 프랑스 사람들의 표정에는 든든함, 안전함과 자랑스러움이 차올랐다.



불꽃축제를 기다리며

  

시간이 흐르는 가론 강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


      7월 14일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은 불꽃축제다. 나는 해 질 녘, 가론 강가에 앉아 불꽃축제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내가 보았던 툴루즈는 한적하기만 했는데,  가론 강에 모인 사람들은 툴루즈가 프랑스에서 4번째로 큰 도시라는 것을 실감시켜준다.  


     유유히 흐르는 갸론 강에서, 나는 비치는 노을과 더불어 흘러가는 시간을 보았다. 고요한 일렁임 위로 분주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다 보니 한 시간 가량이 우습게 흘렀다. 




가론 강에서 불꽃이 터지다.


선명한 달과 수천 개의 별똥별이 된 불꽃 


   퐁 네프 위의 불꽃으로 말하자면 화려하진 않다. 매년 부산 불꽃축제를 봐온 나에게 툴루즈는 '수수한 매력'을 발산했다.  솔직히 부산 불꽃축제는 압도적이다. 광안대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건물들은 환한 빛을 내뿜어 불꽃을 조명한다. 


   툴루즈는 도시에 높은 건물도 휘황찬란한 불빛도 없다. 덕분에 하늘은 더욱 검고 달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주인공이랄 것 없이 모두가 조화를 이룬다. 터지는 불꽃은 하늘의 별처럼 자연스럽다가 흘러내릴 때는 하늘을 수놓는 수천 개의 별똥별이 된다.


그렇게 흘러내린 불꽃이 시간의 점을 찍었다. "시간의 점들이 나에게 얼마나 큰 부를 안겨주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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