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파리 서점

파리, 가을을 맞이 하기 좋은 곳

들라크루아 미술관

by 아빠 딸


집 안 보다 집 밖에서 더 잘되는 일들이 있다. 집중을 하거나 약간의 긴장감을 요구하는 일을 할 때 그렇다. 집이란, 들어오면 너무 편안하고 아늑해서 곧바로 털썩 누워버리고 싶은 곳이다. 그래서 나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카페를 간다. 집에서 빈둥빈둥 거릴 시간을 카페에서 보내면 책도 읽고 글도 쓰기에 좀 더 알차게 흘러간다.


들라크루아는 그런 공간을 집 안에 두었다. 그가 거주하는 건물 뒷 문으로 나와 몇 걸음 거리에 아틀리에 건물이 있다. 꽤 큰 정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있는 작은 독채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도 집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이었기에 그림 그리는 공간을 분리해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20191120_123259.jpg 아틀리에


나는 아틀리에가 밖에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 채 거주 공간에 전시된 작품을 둘러보고 있었다. 잠시 창 밖을 쳐다볼 때였다. 방 모퉁이에 서있던 갤러리 직원은 내 곁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질문하지도 않았는데, 정원과 아틀리에로 향하는 문을 알려주었다. 직원이 아틀리에와 정원의 열렬한 펜이거나 혹은 약간은 은밀한 그 공간을 끝내 발견하지 못하고 떠나버린 관광객들이 매우 많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후자일 것 같다. 정원으로 나가는 문은 매우 아름다워 만지면 안 될 것 같은 풍채를 하고 옆에 있는 표지판은 존재감이 사라져 있기 때문이다. 직원 덕분에 나는 그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갔다.

20191120_124339.jpg?type=w773
20191120_123903.jpg?type=w773

아틀리에로 가는 문을 열면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아틀리에 건물에 반쯤 가려진 정원이 나온다. 보일락 말락한 정원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를 따라다니던 무거운 가방을 벤치에 내려놓고 나도 그 옆에 앉았다. 담벼락은 어느 정도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 하지만 소통의 창구를 활짝 열어놓은 곳 같았다. 나는 옛 성벽 같은 담을 따라 한 바퀴 걸었다.


담벼락 너머 뒷 건물이 눈을 귀엽게 뜨고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건물 깊숙이 위치한 정원은 휘넓지는 않았지만 빼곡한 파리에서 숨통 트일 정도는 되는 틈이었다. 꽃이 없는 계절에도 상록수는 녹색 빛을 잃는 법이 없다. 반듯반듯하게 잘 정리된 나뭇가지, 가끔 떨어지는 낙엽과 여백을 머금은 노란 단풍나무는 곧 다가올 겨울의 흔적이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마치 혼자 앉아있는 나의 쓸쓸함을 달래주는 듯했다. 어느새 제법 쌀쌀해진 기운의 바람결이 나를 아틀리에로 데려다 놓았다.

20191120_125505.jpg?type=w773
20191120_125516.jpg?type=w773


아틀리에, 완전히 다른 아우라의 따뜻한 숨결이었다.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하는 빨간 벽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처음 마주한 작품 속 여인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틀리에 안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바람의 여신 같았다. 바람이 그려낸 수 천 개의 곡선을 생에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바람은 삶이 우리에게 약속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들이 있다. 들라크루아 미술관은 산책하다 들릴 수 있는 산뜻한 공간이자, 가을의 쌀쌀한 바람과 함께 잠시 책을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