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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딸 Sep 24. 2020

파리, 가을을 맞이 하기 좋은 곳

들라크루아 미술관


    집 안 보다 집 밖에서 더 잘되는 일들이 있다. 집중을 하거나 약간의 긴장감을 요구하는 일을 할 때 그렇다. 집이란, 들어오면 너무 편안하고 아늑해서 곧바로 털썩 누워버리고 싶은 곳이다. 그래서 나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카페를 간다. 집에서 빈둥빈둥 거릴 시간을 카페에서 보내면 책도 읽고 글도 쓰기에 좀 더 알차게 흘러간다. 


   들라크루아는 그런 공간을 집 안에 두었다. 그가 거주하는 건물 뒷 문으로 나와 몇 걸음 거리에 아틀리에 건물이 있다. 꽤 큰 정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있는 작은 독채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도 집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이었기에 그림 그리는 공간을 분리해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틀리에


  나는 아틀리에가 밖에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 채 거주 공간에 전시된 작품을 둘러보고 있었다. 잠시 창 밖을 쳐다볼 때였다. 방 모퉁이에 서있던 갤러리 직원은 내 곁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질문하지도 않았는데, 정원과 아틀리에로 향하는 문을 알려주었다. 직원이 아틀리에와 정원의 열렬한 펜이거나 혹은 약간은 은밀한 그 공간을 끝내 발견하지 못하고 떠나버린 관광객들이 매우 많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후자일 것 같다. 정원으로 나가는 문은 매우 아름다워 만지면 안 될 것 같은 풍채를 하고 옆에 있는 표지판은 존재감이 사라져 있기 때문이다. 직원 덕분에 나는 그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틀리에로 가는 문을 열면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아틀리에 건물에 반쯤 가려진 정원이 나온다. 보일락 말락한 정원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를 따라다니던 무거운 가방을 벤치에 내려놓고 나도 그 옆에 앉았다. 담벼락은 어느 정도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 하지만 소통의 창구를 활짝 열어놓은 곳 같았다. 나는 옛 성벽 같은 담을 따라 한 바퀴 걸었다. 


    담벼락 너머 뒷 건물이 눈을 귀엽게 뜨고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건물 깊숙이 위치한 정원은 휘넓지는 않았지만 빼곡한 파리에서 숨통 트일 정도는 되는 틈이었다. 꽃이 없는 계절에도 상록수는 녹색 빛을 잃는 법이 없다. 반듯반듯하게 잘 정리된 나뭇가지, 가끔 떨어지는 낙엽과 여백을 머금은 노란 단풍나무는 곧 다가올 겨울의 흔적이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마치 혼자 앉아있는 나의 쓸쓸함을 달래주는 듯했다. 어느새 제법 쌀쌀해진 기운의 바람결이 나를 아틀리에로 데려다 놓았다.


      아틀리에, 완전히 다른 아우라의 따뜻한 숨결이었다.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하는 빨간 벽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처음 마주한 작품 속 여인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틀리에 안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바람의 여신 같았다. 바람이 그려낸 수 천 개의 곡선을 생에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바람은 삶이 우리에게 약속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들이 있다. 들라크루아 미술관은 산책하다 들릴 수 있는 산뜻한 공간이자, 가을의 쌀쌀한 바람과 함께 잠시 책을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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