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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유통기한

by 루시

슬픔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되는 걸까요?

얼마 전 블루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7년 된 날을 맞이했습니다.

블루는 1999년부터 함께 한 반려견이었습니다.

블루와 함께 한 시간들은 먼 과거이지만, 아직도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사진들을 되돌아보며 그때의 냄새와 감촉이 생각나 흐느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곧 눈물은 멈추었고, 이제 곁에 없는 것에 익숙해져 버려선지 울컥했던 감정도 금방 휘발되는 것 같았습니다.

올해 블루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날을 잊지 않으려고 메모해 놓은 것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는 휴대폰 화면이 꺼지면서 또 한 번 내년의 오늘을 알림 해두어야겠다는 잠깐의 생각도 곧 꺼졌습니다.

블루에 관한 저의 감정은 슬픔의 기억만 남아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에 관한 모든 감정이 페이드 아웃하며 나중엔 결국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요.


얼마 전 인공지능에 관한 책을 읽으며 사람대신 AI에게 심리상담을 하는 인간, AI와 감정의 교류를 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접하고 착잡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 감정과 오감, 그리고 경험을 떠올렸는데요.

그 생각의 끝엔 곁에 있는 누군가였어요. 사람이요.

그러면서 아무 생각 없이 티브이 리모컨을 주무르다 우연히 본 영화 ‘패신저스(2017, 모튼 틸덤 감독, 제니퍼 로렌스, 크리스 프랫 주연)’가 퍼뜩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영화는 썩 훌륭한 SF영화는 아니었지만, 고독감과 외로움 그리고, 동반자에 대한 생각을 조금 깊게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120년 후의 개척 행성으로 떠나는 초호화 우주선 아발론 호.

여기엔 새로운 삶을 꿈꾸는 5,258명의 승객이 타고 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짐 프레스턴과 오로라 레인은 90년이나 일찍 동면 상태에서 깨어나게 된다.

서서히 서로를 의지하게 되는 두 사람은 우주선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마침내 그들이 남들보다 먼저 깨어난 이유를 깨닫게 되는데…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의 내용은 대강 이러한데, 동면 중인 여자주인공을 억지로 깨워버린 남자주인공을 보며 경악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남성 바텐더의 모습으로 나오는데, 남자 주인공은 그에게는 애정의 감정이 들지는 않았나 봅니다.

어쨌든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부쩍 외로워졌습니다.

근 이십 년을 함께한 반려견도 없고, 청춘의 불안을 나누었던 이성도 이젠 추억 속에만 존재합니다.

친구들은 각자의 가정에 충실하느라 저의 외로움을 쉽사리 나누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전 집요하게도 아무 말 없이 자기 존재감을 보여주는 식물을 꾸역꾸역 집으로 들이나 봅니다.

공허함을 꽉 채운 공간감으로 대신하려고요.

일할 때 누군가와 같이 있거나 항상 대화하시나요?

전 대부분의 업무시간을 혼자 지냅니다.

누군가의 방문으로 인사를 할 때 목소리가 쩍쩍 갈라져 멋쩍은 적이 여러 번 있죠.

갑작스레 느껴지는 사무실의 적막감에 몸서리치다가도

누군가가 와서 내 공간을 비집고 들어와 온 정신을 산란시킬 때면 어서 빨리 가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걸 깨닫고는 쓴웃음이 지어집니다.

한 공간에 같이 머무르는 것이 이렇게 불편할 때가 많네요.

역시 아무도 없는 우리 집이 최고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저는 또다시 누군가를 곁에 둘 수 있을까요?

저도 인공지능과 가까운 사이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외로움엔 유통기한이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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