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방문기

자매님께 쓰는 편지

by 베리
(아래의 편지는 실제 저의 지인에게 보냈던 편지로 종교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음을 미리 밝히는 바입니다.)


자매님 안녕하세요. 메일 주소를 물어본 지가 여러 날이 지났는데, 이제야 메일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어떻게 저의 느낌을 전할 수 있을까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며 고민을 했습니다. 일기처럼 저만 보는 글이 아닌 타인에게 글이 보인다고 생각하니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딱딱하게 기행문을 쓰기보다는 제가 느낀 것들을 편지처럼 가볍게 쓰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서 편지로 저의 바티칸 방문기를 대신하려고 합니다.

몇 번의 위기 끝에 가족들의 이탈리아 여행이 결정되었습니다. 네 명의 일정을 맞추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탈리아, 스위스를 방문하는 것으로 처음에 생각했을 때, 저는 바티칸을 꼭 가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바티칸은 뭔가 항상 저에게 꿈처럼, 먼 이상처럼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우연히 로마를 가면 바티칸을 꼭 가야 한다는 지인의 조언에 저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내가 드디어 그곳에 간다니! 여행 몇 주 전부터 미사 시간에 괜히 웃음이 나기도 하고, 주변 자매님들께 자랑하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바티칸에 다 가보네요!”

바티칸 방문은 개별 투어를 신청해두었고, 이탈리아에 도착한 지 삼 일째 되던 날 가게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투어가 시작하여 평소보다 이른 기상을 해야 해서 긴장한 탓도 있었지만, 설레는 마음에 자꾸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로마에 도착한 이래로 흐린 날만 보여주던 하늘이 밝아졌습니다. 아마 하느님도 제가 바티칸에 온 것을 아시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바티칸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사무실에 걸려있는 십자가와 성지 가지를 보니 출근길 9호선 같이 관광객으로 꽉꽉 찬 내부에서의 불쾌함과 항상 저를 옭아매고 있던 소매치기에 대한 걱정은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가이드의 열정적인 설명을 듣고 솔방울 정원을 거쳐, 여러 조각상이 모여 있는 곳을 구경하고 여러 개의 방을 거쳐서 시스티나 대성당으로 향하였습니다. 가는 길에 본 작품들도 정말 멋있고, 좋았지만 사실 저는 시스티나 성당을 가장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방의 끝에 복도에서 드디어 시스티나 성당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우와!” 성당 안에서 나지막이 저도 모르게 감탄을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읽던 창세기가 내 눈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빛과 어둠을 분리하는 모습, 영화 ET의 모티브가 되었다던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숨결을 불어넣으시는 모습과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가 알몸을 부끄러워하는 모습, 노아의 방주 등등 눈은 그림을 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성서 구절이 자막처럼 떠올랐습니다. 성서공부를 한 것을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는 회화 작업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요청으로 혼자서 4년 동안 이 그림을 다 그렸고(적어도 하루에 12시간 정도는 그려야지 4년 안에 완성할 수 있는 크기라고 함), 이 그림을 다 그리고 난 후에는 목, 허리, 어깨, 눈 등 성한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관람객들이 너무 많아서 저도 고작 15분 정도 고개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쳐다보는데 4년 동안 그림 그린 미켈란젤로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의 열정과 주님을 향한 마음에 저절로 박수가 나왔습니다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천지창조라고 합니다. 일본을 통하여 우리에게 잘못 전해져 온 것이라,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로 정정하여 불렀으면 좋겠다고 가이드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는 천장화가 그리고 앞면 벽 쪽에는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 그림에서 미켈란젤로는 천국과 지옥 그리고 연옥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사실 천장화를 너무 열심히 보느라 ‘최후의 심판'에는 관심이 덜 쏠렸습니다. 그래도 조각만 하고 싶어 했던 미켈란젤로가 교황님의 요청으로 신심을 다하여 작품 활동을 펼친 것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경건하게 시스티나 예배당에서의 관람을 마치고, 바티칸 투어의 가장 하이라이트인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웅장한 성 같은 모습의 대성당에서는 주님의 은총을 한가득 몸으로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처음으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게 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으로 인해서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 작품이 너무 완벽하여 사람들은 천사가 밤에 조각했다, 그 당시 유명한 조각가가 만들었다는 등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아서 화가 난 무명의 미켈란젤로는 성모님의 옷깃에 자신의 서명을 조각했다고 합니다.

무명의 조각가가 이렇게 아름다운 조각을 한 것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피에타는 예수님이 주인공인데 너무 성모님이 크게 조각이 되었다, 예수님이 너무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모습인 것 같다, 성모님은 얼굴과 비교하면 어깨가 너무 넓다는 등등 비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맹비난을 받자, 미켈란젤로는 주님의 시선에서 보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는데, 위에서 쳐다본 피에타 조각상은 사람들의 비난이 무색하게 성모님은 왜소하고 다소곳하게 예수님을 안아 모시고 있었으며, 예수님은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조각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 쓰는 편지가 바티칸 이야기인지 미켈란젤로 찬양가인지 많이 헷갈릴 것 같습니다. 저는 그동안 미켈란젤로라는 예술가에 대해서 이름과 다비드상만 알고 있을 뿐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티칸에 와보니 그의 작품들은 모두 주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조각가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뜻을 전파하기 위하여 천장화를 그리고, 주님께 보일 수 있도록 피에타를 조각했습니다. 그러한 미켈란젤로를 보면서 천재이기 전에 주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사람, 자신의 인생에서 주님밖에 모르던 예술가라고 느껴졌습니다.

저 자신은 천주교 신자로서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따르고 있는지, 평소의 저의 생활에서 그분들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반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겉으로만 가톨릭 신자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미켈란젤로처럼 주님을 위하여 오롯이 제 마음을 바치고 싶었고,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짧고 횡설수설한 저의 바티칸 여행기의 기운이 자매님께도 전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타향살이 지치고 마음이 갈팡질팡할 때, 주님만을 따르던 미켈란젤로를 생각하며 자매님도 모든 것을 그분들께 맡기시고 평안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한국은 벌써 여름이 다가와서 매우 더운 날씨입니다. 자매님께서 계신 그곳 날씨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항상 식사 잘 챙겨 드시고,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건강하세요. 언제나 주님의 은총이 자매님과 함께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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