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윤희 선배

20091202 Victoria, Canada

by 베리

(이 글은 10년 전 저의 일기임을 미리 밝힙니다.)


밴쿠버 도착하고 일주일 동안은 유스호스텔에서 지냈다. 매일 저녁 유스호스텔의 주방은 세계 각국 젊은이들의 요리 경연대회가 열렸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닭 다리 요리부터 파스타까지. 다들 요리사인가 착각할 정도였다. 할 줄 아는 요리가 손에 꼽히던 나는 첫날에는 우유와 시리얼을 먹었다. 시리얼이 화근이 될 줄 그땐 미처 몰랐다. 시차 적응을 유달리 심하게 했던 나는 평소보다 몸 상태가 안 좋았는데, 시리얼을 먹은 뒤로 급격히 악화하여 그 날 밤 2층 침대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드나들어야 했고, 침대에 누워있으니 속이 울렁거려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멍하니 앉아 있으니 한국 생각이 났다.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면 괜찮아질 것 같았지만 앞으로 일 년간은 혼자 타국에서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밴쿠버에서의 둘째 날이 지나고 이대로 지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날이 밝자마자 그 전날 본 상점을 찾아갔다. 막상 상점에 도착하니 살만한 것이 없어 과일만 왕창 집어왔다. 그래도 아무것도 먹지 않는것 보다는 나을 것 같은 마음에 과일을 씻어 먹으려는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나보다 먼저 밴쿠버에 와있던 윤희 선배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선배는 유스호스텔 생활은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것 이외에는 다 괜찮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선배가 당장 만나자고 하였다. 지도를 들고 선배를 만나기로 한 곳으로 찾아갔다. 선배는 한인 마트 안에 있는 푸드코트로 나를 데리고 갔다. 저녁을 사줄 테니 먹고 싶은 것을 먹으라고 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뜨거운 순두부찌개를 한 숟갈 떠먹었다. 며칠 동안 끙끙 앓았던 내 몸과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사실 나는 한식이 너무나 먹고 싶기도 했지만,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이 필요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혼자 잘 먹었는데 타국에 오니 외로운 마음이 너무 커져 버려서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밥을 먹는 유스호스텔의 저녁 시간에 혼자 밥 먹기는 생각보다 너무 외로운 일이었다. 나는 밴쿠버에서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함께 할 수 있는 윤희 선배가 밴쿠버에 있다는 사실에 힘이 불끈 솟았다. 그리고 선배는 홈스테이에서 지내고 있어 저녁을 집에서 먹을 수 있었지만 나를 위해서 같이 밥을 먹어주고 사준 이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사정을 다 아는데, 선배는 나를 위하여 많은 것을 배려해주었다. 내가 선배의 후배인 것이 참으로 감사한 순간이었고, 머나먼 나라까지 와서 만날 수 있는 이 인연이 참 신기했다. 이 마음은 평생 간직하고 갚아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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