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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 Apr 22. 2019

진상과 호갱 사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7년 차가 되었다 (아, 물론 중간중간 쉬긴 했지만). 대학생 때 몇 번 안 해본 아르바이트의 경험이 전부 손님을 응대하는 일이었고, 결국 나는 첫 사회생활을 매장 관리자로 일을 하였다. 그 후 이직한 회사에서도 서비스 운영관리를 했고 고객님들을 응대하는 일들과는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일을 했다.

아르바이트할 때에도 기억은 안 나지만 진상 손님 때문에 울음을 멈출 수 없어 조기 퇴근했던 기억도 있고, 캐나다에서 일할 때 미국 관광객한테 인종차별도 당해봤고, 전화로 고막이 터지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욕하던 아저씨도 만났었다. 전부 나에게는 아픈 기억들이고, 많이 울기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손님일 때, 오히려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사람들을 배려하기 시작했고, 충분히 참을 수 있는 불편은 참기도 하였다. 종종 매장에 시정이 되었으면 하는 사항들이 있으면 계산을 하거나 자리를 떠날 때 살짝 귀띔을 해주기도 하였다. 친구들을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답답하다고 할 때도 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착한 고객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독립출판을 준비하며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소규모 인쇄를 맡아주는 가장 큰 업체이자 가성비가 좋은 S사에 내 작업물을 맡겼다. 나름 큰돈이 들어가는 개인적인 프로젝트라 먼저 가제본을 했는데 결과물이 꽤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주문을 했는데, 전화가 오길 내가 원하는 크기로 제작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제가 가제본 했을 때는 작업을 해주셨는데요?라고 하자 그건 수량이 적어서 억지로 해줬다고 하는 것이다. 업체 측은 최소 크기가 있으니 맞춰서 작업을 해달라고 했고,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들의 요구사항에 맞춰서 밤새 재 작업을 하였다. 일단 여기까지는 그래도 순탄한 편이었고, 나는 며칠 동안 나의 따끈따끈한 책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택배로 받기엔 배송되는 기간을 기다려야 하니 직접 출고를 하겠다고 하였고, 출고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자마자 신나서 바로 달려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집에 와서 책을 확인해보니 사선으로 재단이 되어, 직사각형이 여야 할 책의 모양이 사다리꼴 모양으로 완성이 되어있었다. 내 눈을 의심하며 몇 번이고 보았지만 책 재단이 이상했고, 책 등의 글씨도 정렬이 맞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나서 업체에 연락했고, 사진을 확인하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재작업을 진행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에게 재작업을 위해서 00동 사무실에서 출고하셨으니 직접 다시 가지고 오시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화가 났지만, 나는 지금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더니 그럼 착불 택배로 보내 달라고 하였다. 나는 무거운 책들을 다시 포장하고, 낑낑거리며 편의점 택배에 맡겼다.

이틀 뒤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고객님 15권만 파본인데 왜 다 보내셨어요?라고 하길래, 죄송하지만 책등(책 제목이 보이는 부분)의 정렬도 안 맞고 전체적으로 확인해주세요.라고 부탁했더니 “당연히 오차는 있을 수 있는 건데요? 사선 제본만 처리할게요.”라고 되받아치는 직원의 태도가 또다시 화를 불렀다. 다투기 싫어서 “아, 네.”라고 짧게 대답하고 또다시 출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작업물이 출고되었다는 메시지가 왔고, 재배송에 대하여 담당자랑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배송이 되는지 고객센터에 전화했더니 택배 배송으로 처리가 될 예정이라고 하길래 최대한 빨리 받을 수 있도록 담당자에게 전달해달라고 하였다.

몇 분 후,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고 담당자는 “고객님께서 직접 출고를 하셨기 때문에 재작업 건도 직접 방문하셔서 가지고 가셔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근데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내 잘못도 아니고 업체의 실수로 인하여 재작업을 진행한 것이고, 생각했던 계획들이 있었는데 조금 연기가 되어서 이미 기분이 상한 상태였다. 그다음 말이 나를 결국 폭발하게 하였는데 “고객님께서 택배비를 이 전에 지급하셨으면, 저희가 택배로 다시 보내드리는데 택배비를 지불하신 적이 없으셔서 저희가 택배 처리는 못 해 드려요.” 하는 것이다. 나는 직접 출고를 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그곳까지 일부러 시간 내서 간 것이었는데 실제로 그들에게 지급한 돈만 계산하는 것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저는 직접 출고하러 가는데 교통비 들었는데, 그럼 그 돈을 저에게 주시면 제가 직접 찾으러 갈게요. 제가 대가를 지급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충분한 이용 대가를 지불하였는데도 이렇게 하시니 기분이 나쁘네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랬더니 마지못한 뉘앙스를 풍기며 그 담당자라는 사람은 택배로 보내드릴게요 라고 하였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엄청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예민해서 이런 것에 화가 나는지, 택배로 책을 받는 일은 당연한 것이 아닌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들이 나에게 당연히 해줘야 하는 일은 어느 선까지 일까? 사실 아직도 정답을 잘 모르겠다. 근데 나는 적어도 여태껏 내가 한 실수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고 고객들에게 성의껏 지급한 대가 이상으로 보상을 해주었다. 근데 나는 큰 보상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것은 택배로 재작업 물을 받는 것인데, 왜 담당자와 내가 언성을 높여가며 짜증 섞인 말투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에 내가 아무 말 없이 직접 출고를 했더라면 나는 그들의 호갱이었겠지, 그렇지만 나는 택배로 받기로 했고 그들이 진상 고객이 되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시점부터 많은 생각들로 우울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진상과 호갱 사이 어떤 것이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일일까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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