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패션 아트 선구자 금기숙 작가의 기증 전에 다녀왔다. 금기숙이라는 이름도 생소하고 패션아트는 더 생소하다. 금시초문인 작가의 전시회를 알턱이 없지만 sns에 전시를 다녀온 글과 사진을 보고 가고 싶어졌다. 어두운 배경에 공중에 떠 있는 반짝이는 흰색 드레스가 뇌리에 박혀서 잊을만하면 떠오르고 떠오르다 내일이라고 정한 것이다.
영하 11도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우리 동네 서울셔틀을 타고 서울공예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 1층에 들어섰는데 후기에서 봤던 드레스가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물방울이 여러 개 보인다. 안내직원이 기증 전은 3층이고 2층과 3층은 상설전시라고 한다. 우리는 3층에서부터 관람을 하기로 하고 올라갔다.
3층 올라가니 입구에 있는 금기숙 작가의 대표작품인 순백의 드레스가 공간을 압도한다. 드레스의 입체적인 형태는 실제로 입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고급스러운 원단과 화려한 보석이나 레이스 하나 없이 흰색 철사와 리본과 비즈만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만들 수 있다니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철사의 촘촘한 꼬임과 연결만 있을 뿐인데 무도회가 생각나고, 결혼식이 떠오른다. 또 진분홍 드레스는 진달래 꽃이나 연기가 피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을 하나씩 지나갈수록 작가가 궁금해졌다. 어떤 분 일지 상상을 더해 갈 즈음 작품을 소개하는 영상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철사작업이라 화려하고 카리스마 있을 것 같았는데 단아하고 소박한 외모에 목소리도 차분하시다. 당시 한국은 패션 예술의 불모지였다고 한다. 입을 수도 없는 그런 걸 왜 마느냐는 따가운 시선과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고 패션 아트라 분야의 1세대라는 업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오늘 알게 된 사실은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피켓요원이 입었던 드레스가 이 분의 눈꽃 요정이라는 작품이었다.
작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작품의 영감을 얻게 되었는지 소개한다. 작품에 생명이 있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전통 혼례식에서 신부 머리의 족두리 끝의 철사에 매달린 구슬을 보고 착안하게 된다. 흔들리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생각에 작품에 철사 끝의 구슬의 흔들림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아침에 거미줄에 달려 있는 물방울에 작은 무지개가 생기는 것을 보고 철사에 구슬을 넣었다고 한다. 아무리 위대한 작품도 시작은 일상에서 비롯되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술가는 삶의 사소한 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이다. 작품활동은 수면 위에 불총새가 순식간에 물속으로 들어가 먹이를 낚아채듯이 순간을 건져 올리는 일이다.
어떻게 보면 글쓰기와 닮았다. 일상 속에서 글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핸드폰을 열어 한 줄이라도 남긴다. 그마저도 어려우면 한 줄을 잊지 않으려고 머릿속에 계속 반복한다. 하루가 끝나갈 때쯤 적어 놓은 한 줄에는 뼈대가 생기고 살이 붙어 한 편의 글로 탄생한다. 금기숙 작가와 작품을 보면서 글 쓰는 작업이 오버랩되었다.
금기숙 작가는 패션 아트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 어릴 때의 감꽃을 엮어 놀던 기억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니 상상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알게 된다. 어떤 예술작품 못지않게 글도 활자를 넘어 상상력을 불어넣는 힘이 있는데 이제는 소설을 도전해 봐야 할까 싶다